막걸리 한되 앞에 놓고 장모와 주거니 받거니 하면서 그동안 있었던 이야기와 살아가는 일상의 대화를 나누었다. 장모께서는 올해 일흔 여덟이시다. 하지만 일하시는 것을 보면 아직 젊은 사람 못지않게 부지런하시다. 팔십평생 하루라도 그냥 일을 안하고 못 배기시는 분이다. 하루종일 남의 밭에 나가 일당 3만원씩 받고 일해주고 집에 와서는 늦게까지 아니면 꼭두새벽에 집안일과 농사를 지으시고, 일을 못하는 비오는 날에는 손수 지은 깻잎, 콩 잎파리, 고구마 줄기, 생고추, 애호박, 부추, 무, 콩, 산나물 등 밭이나 산에서 나오는 먹을 수 있는 것은 무조건 시장에 내다 팔아 돈을 만든다. 물론 그렇게 힘들게 한푼 두푼 모은 것은 당신 자신을 위해서는 하나도 안 쓰고 명절 때나 큰 일이 있을 때면 손자·손녀들의 용돈주는 재미로 억척같이 일하시고, 돈을 저축하는 것 같았다.
며칠전에는 장에 가셨는데, 2천500원(깻잎 10단 1천원, 생고추 1천원, 호박 2개 500원) 벌어 오셨다고 좋아하시기에 "버스비는 얼마 들었습니까" 물어보니 '왕복 1천600원'이라 하셨다. "점심은 뭘 드셨는데요?", '1천500원주고 국수 한그릇 사먹었지'. "그럼 600원 손해보셨네요" 했더니 아니란다. 2천500원 벌었다고 하셨다. 더군다나 장모님 지론은 "돈을 쓴 것이 아니라 상대방이 그 돈을 벌어 갔으니 지도(버스기사, 국수 파는 아주머니) 벌고 나도 벌었는데, 왜 무슨 손해냐"고 하셨다. 무언가 띵하고 가슴이 아렸다. 좀 배웠다고 자부하며 유식한 척 사물의 이치와 삶의 방법은 단순히 더하기와 빼기로 이해타산만 따지며 살아왔지, 나누기와 곱하기는 할 줄 모르고 살아온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가장 기초적인, 더불어 살아가는 시장경제원리를 깨우치게 해주는, 곰곰이 생각해 보니 진리의 말씀같았다.
저녁 늦게 돌아오는 길에 장모께서는 봉지 봉지마다 온갖 채소와 반찬거리, 그리고 하루종일 딴 고추 몇포대를 차에 실으셨다. 가서 이웃과 골고루 나눠먹으라는 소리와 함께….
오래간만에 흙과, 자연에서, 하루종일 힘든 노동을 했는데도 피곤한 줄 몰랐다. 아마도 어린 시절로 되돌아가 외할머니의 정을 듬뿍 받고 돌아오는 신나는 귀가길 때문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