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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독하기 2025.06.23.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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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예마당/寸鐵活仁]山위에서 찾는 그대의 殘像

-못난 思妻記


'秋夕에나…'하고 기다린 먼데 사는 딸이 그후 사흘이 지나도 영 소식이 없다. 계모만 있는 친정이 그처럼 서먹하고 멀어졌다는 말인가? 그애가 심은 옥매화 잎이 기다리다 지친 서러움처럼 시들어 있다.

다음날 오후 나는 죽은 아내의 무덤을 찾았다. 省墓라기에는 너무나 샛파란 젊은 女人(그렇게 갔다)의 무덤이다. 어린 딸만 셋을 두고 죽음의 豫感 앞에서 "저것들이 철이 들 때까지 조금만 더 살면 되는데…"하고 쓸쓸해 하던 사람.

나의 靑春을 장밋빛으로 물들이는 그러한 Art(기교)는 없어도 그저 몸에 잘 맞는 平常服처럼 편안함을 주는 그러한 女人이었다.

젊어서 내가 속을 썩이면 자기는 缺食으로 살강에 밥을 썩이는 것으로 항의를 하는 말하자면 愛情表示에 별로 心勞가 일없는 무던한 女子였다.

그래서 지금(死後)에 와서 그 滯拂愛情의 支拂을 要求받고 있는지도 모른다. 오랜만에 찾는 그녀의 무덤가에 朱黃色 산국화가 한그루 쓸쓸히 피어있다. 조그만 돌 사이에 수줍은 듯 고개를 내밀고 있는 哀憐한 모습이 그녀의 殘像을 되살리기에는 꼭 알맞는 작은 꽃….

가까이 열굴을 대보니 조그만 꽃몸에서 풍기는 매콤한 향기가 코속으로 스며든다.

조용히 귀를 기울이니 어디선가 귀뚜라미 우는 소리가 들린다. 오만한 樂士처럼 옆에서 조그만 雜音이 일어도 하던 演奏를 뚝 그치는 괴팍한 그놈이 地球 創造의 첫날과 같은 靜寂속에서 눈 내리는 날까지의 짧은 삶을 마음껏 謳歌하고 있는 것이다.

'조것들도 살아서 저처럼 삶을 즐기는데 왜 당신은 그렇게 빨리….'

내가 이렇게 怨嗟를 하면서 곁에 있는 어린 갈대꽃 하나를 손에 쥐었다. 아직은 보랏빛으로 젊고 싱싱하지만 곧 얼마 안가서 허리가 굽고 허연 白髮로 변할 것이다. 그리되면 中天에 뜬 달빛의 虛像을 머리에 이고도 허리를 휘는 老殘의 모습이 될 것이다. 우리 인간도 다를 것이 없다.

나는 펑 뚫린듯한 맑은 하늘위에 한가로이 흐르는 흰구름의 발길을 따라  갖가지 想念에 잠기다가 아내의 무덤에 등을 대고 그래로 잠이 들어 버렸다.

얼마나 잤을까? 벌써 석양인 듯 저멀리 높은 산마루에 분홍빛 彩雲이 걸쳐져 있다. 썰렁한 靜寂속에 산기슭로부터 천천히 어둠이 기어오른다. 呈狀을 잃은, 그러나 나에게는 젊음의 모든 思考의 原點이 되는 그 이름.

"이제 당신곁을 떠나야 할 시간이요. 실은 당신께 꼭 하고픈 말이 있었는데…" 내가 이렇게 중얼거리면서 일어서자 "막내딸아이가 안와서 당신 서운하시죠? 다 제탓이예요. 어린 저를 두고 떠난 절 무척 원망하고 있어요."

나는 이렇게 아내의 意中을 捏造便用(?)하면서 "곧 또 올께"하는 어설픈 다짐을 남기고 천천히 산을 내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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