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상 할아버지는 10시, 11시가 되어야 들어오시곤 했는데 들어오시면 거실 유리창 밖에서 서류봉투 하나를 꺼내들고 덩실덩실 춤을 추며 손자, 손녀와 춤을 추었다.
"와!! 하지(할아버지)왔다. 와!! 하지(할아버지)왔다."
하지 내 사탕 사왔어?
"아니" 사왔을까! 안 사왔을까!
응앙앙아아…
사왔다! 사왔다! 울지 마라! 그래 여지껏 잠을 안자고 기다렸니!!
한바탕 번갈아 안아주고 외투를 벗고 하시던 모습이 사라진 것이 사뭇 아쉽고, 손자, 손녀 신발을 사오시다 '음악회'를 갔다가 검은 봉다리에다 담아가서는 검문에 걸려 입구를 통과한 적도 있을 정도로 손자, 손녀, 며느리에 대한 사랑이 지극 정성이었다.
평생동안 살면서 밥을 한 적도 없으신 분이 며느리가 좋아하는 늙은 호박국을 끓여 놓았고, 제주도 여행에서 며느리 목걸이만을 사다주어서, 시어머니는 항상 애교 섞인 질투를 했다.
직장에서 가까운 병원이라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아 아버지 입원하신 병원에 도착했을 때, 침상은 창가 쪽에 있었고, 아버지는 머리를 빗고 어머니는 가만히 바라보고 계셨다.
해거름에 노을은 두분 앞에 서서 일렁거렸다. 두 분의 뒷모습을 보자 서러움이 울컥 올라와 입술을 깨물었다.
"이것이 황혼(黃昏)이란 말인가"!!
신문지에는 하나, 둘 빠져버린 머리카락이 수북하게 쌓였고, 무능한 자식의 한계를 절감하고 나니 심한 자괴감까지 끓어올랐다. 10 개월 전 췌장, 비장, 쓸개를 제거했는데 지금 또 癌세포가 다시 살아나는 것 같다. 먹는 음식까지 모두 못 먹게 토하도록 하면서 癌세포가 모든 장기를 휩쓸어 버리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