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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독하기 2025.06.24. (화)

기타



장재철(張在鐵)
本紙 논설위원, 시인

이웃나라 일본에 `냄새나는 곳에는 뚜껑을 덥고 긴(長) 것에는 휘감기랴'는 은유에 가득찬 아주 재미있는 속담이 있다.

즉 아무리 냄새나는 더러운 것이라도 그냥 뚜껑이나 덮어서 우선 당장의 곤욕이나 면하도록 할일이지 그것을 애써 치우려 하지 말 것이며 긴 것(부당한 권력같은 ……)에는 그것에 반항하거나 배제하려 들지 말고 못이기는 척 적당히 迎合하라는 것이다.

세상을 되는 대로 살아가며 제자신의 인간적인 자존심과 영혼까지를 송두리째 남에게 내맡기고 그 대신 安樂이라는 티켓이나 손에 쥐려는 어물쩍 苟生人間들에게는 이보다도 더 좋은 處世訓도 좀처럼 없을 것이다.

곰곰이 생각하면 현대사회는 유약한 `다중형적 인간'들의 양산에도 그 특색이 있는 것 같다.

그때 그때의 상황에 따라 여러 가지로 아무렇게나 적응되는 인간……. 생각도 기질도 심지어는 그 얼굴까지도 편리하게 고쳐지는 `카멜레온 인간형'이 많아지는 세상에서 정의와 眞善에의 집착은 일종의 탈락이며 자기보존상 불리한 경우가 적지 않다.

모든 것을 긍정하고 사는 홀가분한(?) 생활 태도가 약하디 약한 우리 보통 인간의 어느 因子(意義)를 크게 확대 해석할 것이 아니라 어설프고 같잖은 것으로 줄여 생각하는 것이 얼마나 편리하고 거뜬한가?

그런데 그같은 方便的 人間觀을 그냥 옳다고 할 수 만은 없으니, 만일 이런 類의 `해파리공장 인간'들만 우글거리고 있다면 이 인류사회는 장차 어떻게 될 것인가. 우리나라에 3·1 독립운동도 없었을 것이고 따라서 8·15의 광복인들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정의와 질서에 충실했던, 그래서 오늘의 발전을 가져온 우리의 인류역사에 난장판 암흑시대가 찾아들 것이 너무도 명백하다.

자기 주변에 惡과 비리가 판을 쳐도 그것을 모르는 척 눈앞에 自己利慾 추구에만 전념하는 육체적 원시성만이 범람하는 인류사회에서 어떻게 밝은 미래를 기대할 수가 있겠는가.

결국 정의와 선에 대한 무관심은 `惡에 대한 봉사'를 뜻하는 인간 최대의 타락이며 그 악과 비리는 인간의 무지와 이기심을 기食하고 크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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