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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독하기 2026.01.02. (금)

오문성 교수의 '라이프 Pick'

나는 아침에 죽음을 생각한다

죽음은 인생의 네 가지 고통, 즉 생(生)·노(老)·병(病)·사(死) 가운데 맨 마지막에 놓인 고통으로 언급된다. 사람들은 죽음에 대한 얘기를 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죽음이란 이별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가만히 생각해보면, 우리는 매일 한 번씩 죽는다. 밤에 잠이 들고, 아침이 되어 다시 눈을 뜨는 일. 만약 그 ‘깨어남’이 다시 찾아오지 않는다면 그것이 바로 죽음일 것이다. 연세 지긋한 분들이 긴 생을 살고, 큰 고통 없이 잠들 듯 생을 마감하는 일을 우리는 흔히 ‘호상(好喪)’이라 부른다. 긴 생을 충분히 누렸고, 병의 고통 없이 생을 마쳤다는 의미에서다.

 

그래서 나는 아침에 눈을 뜨면 가끔 죽음을 떠올린다. 이상하게도 죽음을 생각하면 마음의 걱정들이 조용히 가라앉는다. 산란하던 감정이 정리되고, 마음속에서 정말 중요한 것들이 또렷하게 떠오른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참 많은 걱정을 만들어낸다. 내일 새벽 약속에 늦을까 봐 두세 개의 알람을 맞추고, 별일 아닌 상황에도 마음을 졸인다. 아직 일어나지도 않은 일을 ‘혹시나’라는 이름으로 불안해 한다. 그래서 나는 작은 걱정에 사로잡힌 이에게 가끔 이렇게 묻는다.

 

“사소한 걱정에서 벗어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 무엇인지 아세요?”

 

대부분은 솔깃한 표정으로 알려달라고 한다.

 

나는 잠시 침묵한 뒤 이렇게 말한다.

 

“아주 큰 걱정이 이미 현실이 되었다고 상상해 보세요.”

 

삶의 본질을 뒤흔드는 큰 사건 앞에서는 작은 걱정들이 모두 사라진다. 역설적이지만, 작은 걱정을 계속 하고 있다는 것은 지금 내 삶이 큰 걱정에서 멀리 떨어져 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죽음을 떠올리는 순간 마음이 단단해지는 것은, 그 생각이 나를 삶의 본질로 데려다 놓기 때문일 것이다.

 

독자들에게도 한 가지 상상을 권하고 싶다. “만약 내일이 내 마지막 날이라면, 나는 오늘 무엇을 할까?”

 

이 질문은 삶을 포기하라는 신호가 아니라, 삶을 더 깊고 충만하게 바라보라는 초대에 가깝다. 이 상상만으로도 하루의 풍경이 달라진다. 직장에서의 급한 일들이 우선순위에서 밀려나고, 사랑하는 사람의 얼굴이 제일 먼저 떠오른다. 오래 미루어둔 말 한마디가 마음속에서 천천히 올라온다. 증오, 질투, 비교, 금전적 손익 같은 것들은 희미해지고, 대신 지금 곁에 있는 사람과 지금의 나를 오롯이 바라보게 된다.

 

아침에 깨어난다는 것은 어제의 작은 죽음을 무사히 지나왔다는 뜻이다. 그래서 죽음을 생각하면 오히려 감사가 밀려온다. 아직 걸을 수 있는 다리가 있고, 오늘 하루를 함께 나눌 사람이 있으며, 사랑할 수 있는 시간이 남아 있다는 사실이 새삼스레 마음을 환하게 만든다.

 

사람들은 멀리서 행복을 찾으려고 발버둥 치지만, 행복은 늘 가까운 자리에서 우리를 기다린다. 반복되는 일상, 익숙한 얼굴들, 고단하지만 무너지지 않는 일상의 골격. 이 평범함 속에 삶의 가장 깊은 속삭임이 숨어 있다. 죽음은 누구에게나 예외 없이 찾아오는 손님이다. 하지만 그 손님이 언제 올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 불확실함 때문에 삶은 더욱 값지고, 하루는 더욱 귀하다. 그래서 죽음을 떠올리는 일은 마음을 어둡게 하지 않는다. 오히려 마음을 맑게 비워주고, 지금 이 순간을 더 단단하게 붙잡도록 도와준다. 죽음은 삶의 반대편에 서 있는 그림자가 아니라, 삶의 방향을 비추는 조용한 등불 같은 존재다.

 

메멘토 모리(Memento Mori), 카르페 디엠(Carpe Diem), 욜로(YOLO), 그리고 ‘지금(Now)·이곳(Here)’. 표현은 서로 다르지만 결국 하나의 메시지로 수렴한다. 지금 이 순간을 의식하며, 살아 있는 시간을 충실히 누리라는 뜻이다. 죽음을 의식하는 일은 이 메시지를 잊지 않도록 해주는 작은 의식이다. 습관처럼 흘러가는 일상 속에서 나를 깨우고, 나를 현재로 데려오는 방식이다.

 

그래서 나는 조용히 권하고 싶다. 아침에는 죽음을 생각하라고.

 

죽음을 떠올리는 순간, 우리는 살아 있음이라는 기적을 더욱 선명하게 느끼게 된다. 그리고 그 깨달음은 하루를 더 따뜻하고, 더 단단하며, 더 충만하게 만들어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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