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격 담합 독·과점, 할당관세 편법이용 수입기업 등
국세청, 연말연시 조사 휴지기 통례 깨고 2차 민생침해 탈세조사
안덕수 조사국장 "시장 불공정 행위는 매점매석과 동일…엄정 대응"
고환율에 따른 시장 불안을 틈타 가격담합 등 불공정행위로 물가 불안을 부추켜 민생경제를 어지럽힌 시장교란행위 탈세자를 대상으로 국세청 세무조사가 착수됐다.
이번 민생침해 탈세조사는 지난 9월 가공식품 제조·판매 업체 등 생활물가 밀접 업종 탈세자 55명에 대한 1차 조사 이후 3개월만으로, 국세청이 연말연시 기간에는 전국단위 민생침해 분야 세무조사를 자중해 온 통례를 깬 사례다.
국세청이 세무조사 착수 통례를 깬 배경으로는 연평균 환율이 올해 최초로 1천400원대 돌파가 예상되는 등 고환율 흐름과 무관치 않다.
우리 경제는 완만한 회복세를 보이고 있으나 고환율에 연동된 물가상승 압력 등 시장 불안 요인이 상존하며, 수입의존도가 높은 우리나라는 상대적으로 환율이 물가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
실제로 고환율이 지속되면서 농·축·수산물(5.6%)과 석유류(5.9%) 등 수입 비중이 높은 품목을 중심으로 가격 오르세가 두드러지고 있다.

안덕수 국세청 조사국장은 “시장 불안정성이 커지는 국면에서 일부 기업들은 겉으로는 원자재 가격상승, 원화 약세 등 외부요인을 가격인상 명분으로 내세우고 있다”며, “그러나 가격담합이나 시장우월적 지위 남용 등을 통해 원가 상승폭을 상회하는 수준으로 판매가격을 인위적으로 조정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안 국장은 “이같은 불공정 행위는 수요와 공급의 원칙에 따라 가격이 결정된다는 시장원리를 훼손한다는 점에서 일종의 매점매석에 비유할 수 있다”며 “이외에도 편법적으로 외화를 유출해 환율 변동성을 키우는 등 경제 불안정성을 확대시키는 다양한 시장 교란행위가 발생하고 있어 엄정한 대응이 필요하다”고 이번 세무조사 착수 배경을 밝혔다.
국세청이 이번에 착수하는 민생침해 탈세혐의 조사 대상자는 △가격담합 등 독·과점 7개 기업 △할당관세 편법 이용 4개 수입기업 △슈링크플레이션(용량 등을 줄여 가격 인상 효과) 9개 프랜차이즈 △외환 부당유출로 환율 불안을 유발한 11개 기업 등 총 31개 업체다.
이들이 받는 탈루혐의 금액만 약 1조원대에 달하며, 국세청은 경제·산업동향, 언론보도, 유관기관 정보를 종합적으로 검토하고 원가 신고내용 및 유통과정 등을 정밀하게 분석해 조사 대상을 선정했다.
조사 대상 첫 유형으로 선정된 독·과점 기업 7곳은 서민경제의 어려움은 뒤로한 채, 가격담합과 시장지배력 등 비(非)시장적 수단을 이용해 수요와 공급에 따른 정상가격을 뛰어넘는 수준으로 가격을 부풀려 동종업계 대비 높은 초과이윤을 챙긴 혐의를 받고 있다.
이들은 일부 업계의 고질적 병폐로 자리잡은 가격담합을 통해 시장의 자율적 가격결정 기능을 무력화하고, 시장경제 근간을 흔든 것으로 드러났다.
조사대상 업체 가운데는 담합업체들과 사다리 타기·제비뽑기 등을 통해 낙찰순번을 정하는 등 ‘나눠먹기식 수주’를 하면서, 들러리 업체에게 입찰포기 반대급부로 공사 계약금액의 10%에 상당하는 금액을 담합사례금으로 지급하고 거짓 세금계산서를 수취했으며, 회사 비용으로 처리했다.
수년 간 가격담합으로 제재를 받은 한 업체는 수도권에 소재한 호텔을 운영하면서 사주 자녀가 최대주주로 있는 특수관계법인에게 시가보다 낮은 가격으로 건물을 임대하는 방식으로 이익을 분여하는 등 시장질서를 훼손하면서 오로지 사익만을 추구한 정황이 밝혀졌다.
국세청은 해당 사례에 대한 조사에서 담합사례금 등을 단순히 비용 부인해 경제적 불이익을 주는 데 그치지 않고, 거짓세금계산서 수수 등 범죄행위 확인시 조세범처벌법에 따라 고발해 형사처벌까지 받도록 엄정 대응할 계획이다.
글로벌 공급망 불안정을 이유로 할당관세를 적용받아 원재료를 저렴하게 수입하는 혜택을 누리면서도 정작 판매가격에는 반영하지 않고 이익을 극대화한 할당관세 편법이용 수입기업 4곳도 민생침해 탈세 혐의자로 선정됐다.
조사대상 업체들은 사주의 자녀가 운영하는 특수관계법인을 유통과정 중간에 끼어넣고, 관세 감면을 받은 원재료를 저가에 공급하는 등 부당하게 이익을 분여했으며, 특수관계법인에게 할당관세 적용품목 수입과 관련된 선적·물류·통관 등 업무를 대신해 주면서 관련 수입대행용역을 과세가 아닌 면세로 신고해 부가가치세를 탈루했다.
또 다른 업체는 할당된 물량을 초과해 재화를 수입할 경우 부과되는 고율의 관세를 회피하기 위해 협력업체 명의를 빌려 재화를 수입한 후, 실제로는 조사대상 업체가 해당 재화를 직접 가져가면서도 마치 협력업체로부터 재화를 매입한 것처럼 거짓 세금계산서를 수취한 것으로 드러났다.
치킨과 빵 등 서민들의 지출 비중이 높은 외식분야에서 가격은 그대로 둔 채 은근슬쩍 중량만 줄이는 ‘용량꼼수’를 이용하는 등 편법적인 방법으로 사적 이익을 추구한 슈링크플레이션 프랜차이즈 9곳도 이번 조사대상에 선정됐다.
꼼수 프랜차이즈들은 소비자가 인지하기 어려운 방법으로 실질가격을 높이는 ‘숨은 가격상승’ 행위로 서민들의 밥상물가를 지속적으로 상승시킨 주범으로 꼽힌다.
이들은 원재료·부재료 판매업체와 직거래가 가능함에도 계열법인을 거래단계 중간에 끼워넣어 시가 대비 고가로 매입하는 한편, 사주일가가 소유하고 있는 가맹점을 인수하면서 권리금을 과다하게 지급해 이익을 분여했으며, 그 결과 불투명한 유통과정 속에서 부풀려진 원가는 결국 가격인상으로 이어져 국민들의 부담이 됐다.
또 다른 업체는 대표이사가 점주로 있는 가맹점의 가맹비와 인테리어 등 창업 관련 비용을 회사가 대신 부담하기도 했으며, 법인의 신용카드를 사용해 골프장 이용·명품구입 등 호화생활을 누리면서도 이를 비용으로 처리해 소득을 줄였다.
법인자금을 편법으로 유출해 고가의 해외자산 등을 취득하는 과정에서 불필요한 외환 수요를 증가시키거나, 외화자금의 원활한 유치 목적으로 도입된 대외계정을 이용해 국외로 외환을 부당하게 빼돌린 외환 부당유출 기업 11곳도 세무조사를 받는다.
이들은 법인자금을 사용해 자녀를 해외에 유학 보내는 것을 넘어, 가족 전체를 이주시키고 고액 부동산·고급 콘도·호화요트 취득 등 국민 눈높이에 맞지 않는 사치생활을 영위한 것으로 밝혀졌다.
특히 이들 가운데 일부는 100% 자회사인 해외 현지법인에게 지급보증용역을 무상 제공해 국내은행에서 거액의 외화를 차입할 수 있도록 하고, 해당 차입금으로 수백억원에 달하는 골프장을 인수하는 등 법인의 외화자금을 업무와 무관한 고가의 자산을 취득하는데 사용한 것으로 드러났다.
또 다른 조사대상 업체는 외국 국적을 보유한 이른바 ‘검은머리 외국인’들로, 수출대금 등 사업활동에 대한 대가를 외국인 지위를 이용해 개설한 대외계정을 통해 수취하고 개인소득세 신고를 누락했다.
더 나아가 과소신고한 소득이 노출되지 않도록 자신이 대표로 있는 법인에게 수십억원의 자금을 대여한 후, 법인 명의로 고가의 펜트하우스를 취득해 사주일가 전체가 거주하고, 내부 인테리어·가구가전 구입 비용등은 법인 경비로 처리하는 등 법인을 사주일가의 사적인 소비 통로로 이용해 왔다.
안덕수 조사국장은 “물가·환율 상방압력을 유발하는 등 시장 불안정성을 키우면서 부당하게 이득을 취한 시장 교란행위 탈세자들을 철저히 검증하겠다”며, “이를 통해 시장지배력 남용 등 변칙적 수법으로 시장질서를 훼손하는 행위는 더 이상 용납되지 않는다는 확고한 인식을 심어주겠다”고 강조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