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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독하기 2024.04.30. (화)

[연재]세법·세정·세무 분야의 남기고 싶은 이야기(4)

세무회계 실무계의 자질향상과 학문으로서의 조세법학 위기론

 

한국세정신문은 창간 58주년을 맞아 조세법학계 거목에게 세법세정세무에 대한 후일담을 듣는 시간을 마련합니다.

대학 세무학과의 출범, 종합소득세제 및 부가가치세제 뒷얘기, 국립세무대학 출범과 폐지, 자료상, 세제발전심의위원회, 세무사시험제도, 상증세, 세무행정, 지방세, 변호사와 회계사·세무사 등 조세 역사 주요 사건에 얽힌 뒷얘기를 반추하며 세법·세정·세무에 대한 지향점을 모색해 보고자 합니다.

이에 우리나라 세무회계학 및 조세법학의 발전에 선구자적 역할을 다한 송쌍종 서울시립대 명예교수로부터 '세법·세정·세무 분야에 남기고 싶은 이야기를 듣습니다. <편집자 주>

 

2023년 현재 우리 대한민국의 위상은 여러 가지 면을 종합하여 가히 선진국이라 할 만하다고 보는 견해가 있다. 간혹 2% 정도 미흡하다는 얘기도 나온다. 한마디로 선진국의 문턱에 다달아 있지만, 아직은 그 문턱을 완전히 넘지는 못하고 있다는 평가가 온당할 듯도 하다. 이 점은 우리만의 자부심이 아니라 세계가 인정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라 보여진다. 세법과 세정 및 세무(실무) 분야도 이 점은 같다고 볼 수 있다. 세법의 수준은 아시아권 국가들 가운데 일본을 제하고는 우리를 능가하지 못한다고들 꽤 오래 전부터 얘기되어 왔다. 세정에 관하여는 전산세정의 수준에 비추어 세계 어느 나라와도 겨룰 만하다고들 한다. 오히려 전산강국답게 전산세무행정과 재야의 전산세무실무는 선두를 달린다고 자부하기도 한다.


이상과는 달리 반세기 전인 1970년대의 상황은 현재와는 사뭇 다른 후진국 양상이었다. 이 점과 관련하여 필자가 실제로 경험한 사례 하나를 들고자 한다. 그 내용은 법인기업이 해당 사업연도의 소득 중 법이 정하는 일정수준 이상의 금액을 주주 등 출자자에게 배당하지 않고 사내에 유보하는 경우에 그 일정수준(즉 적정유보소득)을 초과하여 유보한 소득을 실제로 배당한 것으로 간주하여 해당 개인주주에게 종합소득세를 부과하는 이른바 지상배당소득세제도(紙上配當所得稅制度)에 관한 것이다. 여기에서 ‘지상’은 종이 위라는 말로 '서류상으로'라는 뜻이다. 이 제도는 당시에 대단히 중요한 세간의 화두였다.


상법논문으로 석사학위를 받은 필자는 대학의 시간강사로 상법을 강의하는 두 세 대학의 강사료만으로는 생활이 어려워 경리학원의 세무사시험반에서 아침저녁으로 강의를 하고 있었다. 1970년이라 기억되는데, 재정학과 회계학의 두 과목이던 세무사 시험과목이 재정학과 세법 및 회계학으로 늘어났다. 그래도 여전히 전과목을 혼자 강의했다. 공부를 넓고 깊게 하고 싶은 욕심에서였다. 그러던 어느날 지상배당세 또는 지배세라고도 불리는 이 제도(1967년~1985/1986년 시행)를 설명하면서 이는 법인의 개인출자자에게만 소득세로 과세되며, 법인출자자(예 법인주주)에게는 법인세로 과세되지 않는다고 했다. 그러자 수강생들은 그 이유에 대하여 궁금증을 나타냈다. 실제로 헷갈리기 쉬운 대목이기도 했다.


강의에서 설명했던 논리는 다음과 같다. 정확하게 말하면 소득세법은 ‘개인소득세법’이며, 법인세법은 ‘법인소득세법’이다. 우리가 말하는 소득세와 법인세라는 용어가 미국에서는 ‘individual income tax’와 ‘corporate income tax’로 구별되고 있다는 사실로 미루어 보더라도 알 수 있다. 이들 두 법의 규정내용이 서로 구분되는 이론적 논거는 소득주체가 개인인가 혹은 법인인가에 따라 구체적인 법규가 두 법률로 나누어진다는 데에 있다. 그런데 소득세법에는 지상배당에 관한 규정이 들어 있지만, 법인세법에는 이것이 없었다. 따라서 어느 특정의 주식회사에서는 법규에 따라 전체 지상배당소득을 계산한 전체금액에 각 개인주주별로 그 소유지분율을 곱하여 개인별 지상배당소득을 일일이 계산하여 원천징수 대상의 소득세로 다루되, 법인주주분은 이를 없는 것으로 취급하면 된다고 설명했다.


강의가 끝난 다음에 수강생 한 분이 차나 한 잔 하자고 했다. 얘기를 들은 바에 의하면 자기네 회사는 법인주주 7개가 있을 뿐 개인주주는 하나도 없는데, 지난 몇 년간 지상배당소득세를 원천징수하고서 그 징수액을 관할세무서에 자진납부하여 왔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 납부세액은 모두 법적 근거가 없는 부당납부세액이 아니겠는가 하는 얘기이다. 그렇다고 대답했음은 물론이다. 그 경리과장은 그것이 자기가 최근에 새로 입사하기 전의 일이라 선임자의 처지를 고려하지 않을 수 없으므로, 필자더러 그것을 환급받아 내는 일의 뒤처리를 대신 맡아달라는 부탁이었다. 필자는 그 무렵 지방에서 퇴사 후 상경하여 강의를 듣고 준비하여 세무사시험에 합격한 어느 자격취득자가 혼자 사무실을 열 용기가 없으니까 명의를 얹어달라는 부탁을 들어준 다음이었으므로, 이 일에 선뜻 응낙을 했다.


한국세무사회의 규정을 알아보니까, 환급받는 돈의 20%를 보수로 받을 수 있었다. 이 사건을 수임한 후 관할세무서의 담당자를 찾아갔다. 그는 선뜻 당연하다는 듯이 환급절차를 일러주었다. 얼마 후 그를 다시 방문했다. 이제는 얘기가 어려워진다. 우물우물하면서 ‘절반 정도는.......’ 하고 말한다. 나는 좋다고 했다. 다시 만난 자리에서 견해차가 너무 크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나는 위 20%의 절반으로 알아들었고, 그는 환급액 전부의 절반으로 말하여 서로 격차가 크게 벌어진 것이다. 화가 난 나는 서장실로 갔다. 그 서장은 제발로 걸어와서 낸 세금을 내줄 필요가 있느냐는 식이다. 필자는 상법학으로 논문을 작성한 법학석사자는 자동으로 자격을 인정받을 수 있다는 당시의 세무사법을 근거로 쉽게 자격증을 받은 세무사로서 첫번째 수임사건에서 절망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반년 정도 시간을 허비하고서 하는 수 없다 싶어 상당한 거액을 벌 수 있는 해당 사건을 그 회사에 반납하고 말았다. 시쳇말로 ‘협상’의 경험이 전무한 필자는 세무사업무를 전업으로 하기에는 소질이 모자란다고 판단한 결과였다. 지금 생각하면 필자가 대학교수의 길로 나가도록 강력한 동기 부여를 해 준 당시의 담당공무원 서 아무개씨에게 감사하고 싶은 심경이다. 그렇지만 나중에 지방국세청장의 지위에까지 올랐던 그 김 아무개 세무서장을 놓고서는 그 시절 국세공무원의 성향을 가늠하게 되므로, 뒷맛이 씁쓸함을 느끼기도 한다.


위 경험담의 피력에 관하여 독자 중에는 이제 와서 굳이 이러한 묵은 얘기를 꺼낼 필요가 있느냐 하는 비난(?)이 있을 수 있다고 생각된다. 하지만 그 때의 세무행정 수준과 정황을 문헌으로 정확히 남기는 것이 시대조류의 흐름을 파악하려는 후진들에게 결코 많지 않는 어두운 면에 관한 참고자료 중의 일부가 될 수 있다고 보아 소개할 뿐이라고 말하고 싶다. 강조하건대 더 보태거나 과장한 내용은 없으므로, 필자의 뜻을 선의로 받아주시기를 빈다. 그리고 이와 같은 사례로 미루어 당시만이 아니라 오늘날에도 세법규정의 해석에 관한 세무당국자들의 지식수준은 많이 부족하다고 볼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직시하기 바랄 따름이다.


이 점과 관련하여 세무공무원(내국세공무원과 관세공무원 및 지방세공무원)이건 민간사회의 자유직업인인 세무사와 관세사 및 공인회계사는 물론이고 기업의 회계담당자들의 기초지식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는 아무리 강조하여도 지나치지 않는다는 사실을 지적하고 싶다. 이는 운동선수들의 기본기 훈련이 절대적으로 중요하다는 점과 꼭 같다고 보아야 한다. 여기에서 이해를 돕기 위하여 우리의 축구영웅 손흥민 선수의 기본기훈련이 어떠했는지에 관하여 인터넷에서 검색되는 소개의 글 일부를 원문 그대로 인용하기로 한다.


“손흥민의 득점 장면을 보면 도저히 골이 안 터질 곳 같은 사각지대에서 골이 나온다. 신기한 것은 이런 '손흥민 존'이 페널티 지역 양쪽에 다 있다는 것이다. 그가 왼발 오른발을 다 잘 쓰는 '양발잡이'이기 때문이다. 수비하는 입장에선 어느 쪽을 막아야 할지 혼란스러울 수밖에 없다. 유럽 선수들은 어려서부터 한쪽 발을 집중 연마한다. 이 같은 손흥민의 재능을 이야기할 때 아버지 손웅정씨를 빼놓을 수 없다. 프로축구 선수 출신인 손씨는 아들이 중학교 2학년이 되도록 학교 축구부에 보내지 않았다. 우리나라 학교 축구에선 승부에 집착해 기본기를 소홀히 한다고 생각한 것이다. 손흥민은 다양한 각도에서 오른발, 왼발, 헤딩 슈팅을 하루에도 수백, 수천번씩 반복했다. 그는 서울 동북고 축구부에 진학했다가 석 달 만에 독일로 떠나 함부르크 유소년팀에서 축구를 익혔다. 한국 선수인데 한국 학교에서 축구를 배운 적이 거의 없다.” 여기에 덧붙일 설명은 불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누구나 알 수 있는 얘기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우리에게는 세무공무원이나 자유직업인은 물론 기업의 회계담당자들이 기초지식을 제대로 쌓을 수 있는 제도개혁이 필요하다고 판단된다. 이를 위한 정부당국의 정책변화가 절실한 상황이다. 세무공무원의 충원에서부터 교육훈련까지 종래와는 다른 획기적인 종합계획의 추진이 필요하다고 본다. 자유직업인의 자질향상에 관하여는 현재의 국가시험제도가 큰폭으로 개선되어야 한다. 그리고 회계담당자의 수준향상을 위하여 실업계 고등학교와 각 대학교 교과과정의 전면 개편이 필요하다. 이러한 거대작업은 우리나라를 진정한 선진국으로 도약시키기 위한 원대한 비전(vision)을 전제로 하여 추진되어야 할 과제이다.


세무공무원의 경우에는 거국적인 개혁이 전제되어야 하므로, 막대한 투자자금이 필요한 부문이다. 그렇지만 자유직업인의 경우에는 국가시험제도의 개혁만으로도 상당한 성과를 기대할 수 있다는 특징이 있다. 그리고 회계담당자들의 경우에는 실업계 고등학교와 각 대학의 교과과정의 개편만으로도 상당한 수준의 목적달성이 가능하다고 할 수 있다. 다만 이러한 작업은 진정한 선진국으로 발돋움하는 거대 국가발전시책의 하나로 추진되어야 한다. 그렇다면 종래처럼 정부당국자들에게만 맡겨두어서 될 일이 아니다. 그렇다고 해서 민간연구소 등에 용역을 발주하여서 될 일도 아니다. 우선 이것들에 연계되는 연구논문이 생산되어야 하며, 공청회 등을 거쳐야 하고, 민관학(民官學)의 합동작전으로 추진되어야 할 일이다.


끝으로 위와 같은 세 부류의 전문가 내지 전문인이 배출되는 토양은 재정학과 법학 및 회계학 등 세 분야의 연계작전으로 조성되어야 한다는 특징을 지닌다. 그러므로 일차적으로는 위 세 분야의 인재가 각각 양성된 다음에 그들이 다른 분야의 기본지식을 겸하여 터득하는 이차적인 지식습득의 기회가 제공되어야 한다는 어려움이 있다. 필자의 경우는 먹고 사는 문제로 이것들을 모두 섭렵할 기회가 생겼다. 여기에는 다분히 운명적인 측면이 있음을 부인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거국적인 차원에서 종합적인 제도 구상이 필수적이라 할 것이다.


여기에서 군더더기 말로 덧붙이고 싶은 것은 ‘법학전문대학원’(law school)의 출범과 더불어 조세법학의 연구풍토가 크게 훼손되어 있다는 점을 상기시키고 싶다. 물론 조세법학만이 아니라 일반법학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노무현정부 때에 고등법원이 있는 도시(서울, 부산, 대구, 대전, 광주 등)에 이 대학원을 설립하되(서울만은 2개 정도), 그 도시에 있는 대학의 법학과 교수들이 컨소시엄(consortium) 형태로 운영하고 강의하는 것으로 하자는 당초의 안을 버리고 현재와 같이 큰 대학 중심으로 인가하는 방식을 취하면서 학부의 법학과를 없애는 절충안을 택하였다. 그 결과 우수한 법학도가 대학 학부에서 양성되지 못하고 있는 현실에서 우수한 조세법학 연구자의 배출도 크나큰 영향을 받고 있는 것이 문제이다. 이에 관하여 합당한 제도 개선이 시급하다고 본다.

 

※외부 기고는 본지 편집 방향과 무관함을 알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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