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현지법인 이용한 세금탈루 자산가 21명
고정사업장 은폐 다국적기업 13개
부당 내부거래 법인자금 유출 기업 10개 등 총 44명

해외에 꼭두각시 현지법인을 설립한 후 국제거래를 이용해 세금을 탈루해 온 대자산가들이 무더기로 세무조사를 받게 됐다.
일명 터널링(tunneling)으로 불리는 역외 비밀지갑을 활용해 막대한 세금을 탈루하다 세무조사 선상에 오른 21명의 대자산가 가운데는 500억원 이상 자산가를 포함해 평균 50억원 이상 재산을 축적한 이들만 9명에 달한 것으로 집계됐다.
국세청은 국제거래를 이용해 재산을 불리면서 세금은 내지 않은 자산가와 국내에서 사업장을 은폐하고 탈세한 다국적기업 등에 대한 집중점검 결과, 역외탈세 혐의자 44명을 확인한데 이어 세무조사에 착수했다고 22일 밝혔다.
이들은 해외에 꼭두각시 현지법인을 설립해 세금을 탈루하거나, 국내 고정사업장을 은폐해 사업소득을 탈루하는 등 국내·외를 가리지 않고 세금을 탈루한 혐의를 받고 있다.
이외에도 전통적인 세금탈루 수법인 불공정 자본거래 등을 통해 법인자금을 유출한 사례도 이번 조사대상에 포함됐다.
국세청이 이번 세무조사에서 21명을 선정한 ‘꼭두각시 현지법인을 이용한 부자탈세’의 경우 과거에도 일부 자산가들을 중심으로 해외 현지법인을 이용한 세금탈세가 종종 발생했으나, 이제는 다수의 자산가가 이용하는 등 새로운 역외탈세 통로로 고착화되고 있는 실정이다.

더욱이 최근 들어 인위적인 거래를 만들어 정상적인 법인으로 위장하는 등 수법이 정교해지고 은밀하게 진화되고 있다.
국세청 관계자는 “국제거래를 이용한 탈세는 상당한 경제력이 필요해 일반인들은 시도하기 어려운 탈세방법으로, 탈세 전 과정을 처음부터 철저하게 기획해 실행하는 전형적인 부자탈세”라고 지목했다.
이들은 해외에 꼭두각시 현지법인을 설립해 이익을 유보시킨 뒤 역외비밀지갑처럼 자금을 빼내 해외자산을 취득하거나 자녀에게 증여하는 등 코로나 상황 속에서도 오히려 부를 증식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국세청이 조사에 착수한 사례 가운데는 기업사주가 꼭두각시 현지법인을 세워 비자금을 조성 후 해외주식을 취득한 사례와 함께, 현지법인을 탈세통로로 활용해 자녀에게 해외 고가주택 취득자금을 증여한 사례 등이 포착됐다.
고정사업장 은폐를 통한 세금탈루 시도 혐의가 드러난 총 13개 다국적기업도 이번 조사대상에 선정됐다.
현재 우리나라는 세계 10위의 경제강국으로 많은 다국적기업이 국내에 진출해 있는 등 매년 1만여 개의 외국계 기업이 법인세를 신고하고 있다.
다만, 외국법인의 연락사무소 등 국내에 고정사업장이 없거나 수익사업을 영위하지 않은 경우에는 신고의무가 없으며, 다국적기업은 이같은 규정을 악용해 고정사업장 은닉을 통한 조세회피 시도에 나서고 있다.
이와 관련, OECD를 비롯한 국제사회에서는 BEPS 프로젝트 추진, 디지털세 도입 논의 등 다국적기업의 공격적인 조세회피에 대응하기 위해 노력 중이다.
국세청 또한 최근의 국제조세환경 변화를 반영해 반도체·물류·장비 등 호황산업을 영위하는 다국적기업을 대상으로 고정사업장 해당 여부를 집중 점검했으며, 이 결과 고정사업장 은폐 및 국내 귀속소득을 신고하지 않고 탈세한 13개 다국적기업을 적발해 조사에 착수했다.
이들 외국계기업은 국내 자회사에 임원을 파견해 실질적으로 국내사업장을 지배·통제하는 등 사실상 고정사업장에 해당하지만, 자회사와의 형식적 계약을 통해 자회사가 단순 업무지원 용역만 제공하는 것처럼 위장해 고정사업장을 은폐해 온 혐의를 받고 있다.
이외에도 국내에서 6개월 이상 건설공사를 수행하고 있음에도 설계·제작·설치·감독·A/S 등 계약을 쪼개 체결하는 등 누구도 중요기능을 수행하지 않은 것처럼 위장해 고정사업장을 은폐한 혐의가 드러났다.
세금 탈루의 전통적인 수법인 불공정 자본거래를 통해 법인자금을 유출한 10개 법인도 국세청의 이번 세무조사 칼날을 피하지 못했다.
국세청은 현지법인 청산 및 관계사 간 주식거래 등 내부 자본거래를 통한 법인자금 유출 여부를 정밀 검증한 결과, 투자금액 회수 전 현지법인 청산 및 관계사 주식 증여를 가장한 국내원천 유가증권 양도소득 회피 등 부당 내부거래를 통해 과세소득을 축소한 10개 법인을 포착해 세무조사에 전격 착수했다.
이들 가운데는 반도체 집적회로 등을 설계·제작하는 정보기술(IT) 기업으로 해외에 다수의 현지공장을 보유한 기업도 적발됐다. 이 기업은 실제로는 지분 매각을 진행하면서 현지법인을 청산한 것처럼 위장해 투자액을 전액 손실처리한 후 채권채무 재조정을 통해 채권을 임의로 포기하는 등 관계사에 이익을 부당하게 분여한 혐의를 받고 있다.
이외에도 다국적기업의 국내원천 사용료 소득에 대한 원천징수를 누락하거나, 해외사주(지배주주)에게 해외 우량 현지법인 지분을 헐값에 양도한 사례 등도 적출됐다.
국세청 관계자는 “역외탈세는 전 과정이 처음부터 치밀하게 기획되고 계획적으로 실행되는 반사회적 행위인 만큼 조사역량을 집중해서 끝까지 추적해 과세하겠다”며 “역외탈세가 새로운 탈세통로나 부의 대물림 창구가 되지 않도록 철저히 조사하겠다”고 각오를 밝혔다.
국세청은 국제사회에서 이어지고 있는 디지털세 논의 등 다국적기업의 조세회피 방지를 위한 노력에 적극 참여하는 한편, 탈루혐의 확인시에는 엄정한 세무조사를 실시하는 등 강력한 과세주권 행사에 나설 방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