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선실세' 최순실(61)씨가 각종 증거인멸까지 진두지휘한 정황이 공개됐다.
11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2부(김세윤 부장판사) 심리로 열린 '국정농단' 사건 2차 공판에서 검찰은 진술 조서 내용을 공개하면서 "(플레이그라운드 재무이사인) 장순호씨는 최씨로부터 연락을 받고 컴퓨터를 파기했고, 금고 안의 자료를 모두 분쇄기에 넣어 파쇄하라는 지시를 받은 적이 있다고 인정했다"고 말했다.
플레이그라운드는 차은택(48)씨와 최씨가 함께 설립한 광고대행사로, 검찰은 플레이그라운드도 사실상 최씨가 장악했던 것으로 보고 있다.
이어 검찰은 "신혜성씨는 김영수(전 포레카 대표)씨가 연락해 '최순실이 장순호에게는 연락했으니 더운트 사무실에 가서 남아있는 PC 등 자료들을 싹 정리하라'고 했다고 진술했다"고 밝혔다.
검찰에 따르면 신씨는 "장순호 이사가 더운트(최씨가 서울 삼성동의 한 빌딩에 세운 비밀회사)도 회장님이 만든 회사여서 시끄러워질 수 있으니 '자료 지우라'는 말을 하고 다음날 컴퓨터가 없어졌다"고 진술했다.
검찰은 "더운트에 있던 컴퓨터는 더블루케이 등 그 이전 자료까지 들어있는 상태였기 때문에 최씨가 (증거인멸을) 지시한 것이 확인된다"며 "장순호 역시 최씨로부터 컴퓨터를 파기하고 금고를 열어 안에 있는 자료를 다 파쇄하라는 지시를 받았음을 시인했다"고 설명했다.
신씨는 김 전 대표의 부인으로, 남편이 최씨에게 추천한 후 2016년 1월에 KT의 광고수주를 담당하는 부서에 입사했다.
모스코스, 플레이그라운드를 차례로 설립한 차씨가 광고수주를 위해 측근들을 대기업 광고업무 책임자로 채용시키는 계획에 동원된 인물 중 한 명인 셈이다.
안종범(57) 전 청와대 정책조정수석 측이 '박근혜 대통령을 지키기 위해' 허위진술 등을 지시했다는 내용도 공개됐다.
검찰은 "안 전 수석의 보좌관인 김건훈씨는 2016년 10월22일에 케이스포츠 재단 김필승 이사를 만난 사실이 있다고 인정했다"며 "김씨에게 김 이사를 상대로 한 허위진술 관련 지시 내용을 물으니 '그때는 VIP를 지키기 위해서 그랬습니다'라고 진술했다"고 밝혔다.
검찰은 "박 대통령을 지키기 위해 허위진술을 시키고 검찰조사 대응 문건을 만들어서 김 이사에게 줬다는 것"이라고 부연했다.
검찰에 따르면 최씨 측은 컴퓨터 등 관련 증거 파기를 지시했다가 해당 컴퓨터의 하드디스크를 다시 복구해보는 치밀함을 보이기도 했다.
만일 복구가 된다면 하드디스크를 아예 박살내려 했다는 것이다.
검찰에 따르면 최씨 측 인사 구모씨는 "당시 김영수씨가 자료를 폐기해야 한다고 지시했다"며 이들이 컴퓨터 폐기 당시 주고받은 문자 메시지, 망치로 폐기된 하드 디스크 사진을 공개했다.
문자에는 컴퓨터와 PC 하드를 폐기한 뒤 실제 수사기관이 복구시킬 때 복구되는지 확인하기 위해 폐기한 사람들이 다시 한 번 복구한다는 내용이 담겨있다.
검찰은 박 대통령이 미르·케이스포츠 재단에 기업들이 얼마씩 출연했는지 여부를 확인했다는 진술 내용도 전했다.
검찰에 따르면 김씨는 조사에서 "미르와 케이스포츠 재단과 관련해 VIP가 관심이 많아 2016년 1월 말께 양 재단의 기업별 출연규모를 부속실로 올려드린 사실이 있다"고 진술했다.
검찰은 "2015년 10월25일 일요일 밤 10시32분께 '재단법인 미르 설립 추진현황보고서'가 작성됐다. 보고서에는 문체부 인가와 관련해 26일 월요일 15시에 신청하고 27일 화요일 오전에 인가하는 것으로 기재가 돼 있다"며 "'기업 측 미비 서류 발생 시 선 인가 신청 후 서류보완 예정'이라고도 돼 있다. 이에 비춰볼 때 문체부와 전경련 등에선 이미 사전에 법인설립 인가 시기를 조율한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이어 "전경련에서는 문화재단 후속조치현황이란 보고서도 확인된다. 전경련에서는 미르재단 설립을 위해 임대차 계약금, 인테리어 대금 등 총 1억9500만원 상당을 대여를 해준다"며 "당시 재단을 설립하면서 아무런 준비도 없는 상태에서 전경련이 2억원 가까운 돈을 내가면서 재단을 급하게 설립한 정황이 확인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검찰은 "재단 설립 이후 전경련에서는 출연 기업들을 대상으로 공동사업단을 운영하는 것이 어떠냐는 의사를 타진한 적이 있다"며 "그런데 각 기업에서는 '내용 파악 후 판단' '상시 채널이 부담스러움' '구체적 내용 없어 판단 불가능' 등 답할 수 없다는 취지의 답변을 했다. 자기들이 출연한 재단이 무슨 사업을 하는지 내용도 몰랐던 것"이라고 지적했다.
즉, 기업들이 자발적으로 미르재단을 설립했다는 박 대통령 등의 주장은 전혀 사실과 다르다는 것이다.
검찰은 안 전 수석 측의 증거인멸 정황도 공개했다.
검찰은 김형수 전 미르재단 이사장의 진술서를 제시하면서 "김 전 이사장은 검찰에 출석하기 전에 안 전 수석의 보좌관인 김건훈씨를 플라자호텔서 직접 만났다고 진술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김 전 이사장은 김씨가 '이사장님, 안종범과 주고받은 통화내역을 조심해야 한다'고 주의를 줬다고 했다"며 "안 전 수석과 김씨로부터 '안 전 수석과 청와대가 관여하지 않은 것처럼 해달라'는 요청이 지속적으로 들어왔다. 안 전 수석 측의 요청으로 검찰에 출석하기 며칠 전에 휴대폰을 초기화했다고도 진술했다"고 전했다.
검찰에 따르면 김 전 이사장은 조사에서 "차은택(47) 전 창조경제추진단장에게 전경련에서 한국문화를 알리고 세계적 확산을 시키려하는 재단을 설립하려 하는데, 이사장을 맡을 의사가 있는지 묻는 전화가 왔다"며 "차 전 단장이 '전경련에서 저를 추천했다'고 언론에 말해줘야 한다는 이야기도 했다"고 진술했다.
또 검찰은 김 전 이사장의 컴퓨터 등에서 차 전 단장과 범행 은닉 문자를 주고받은 사실을 알게 됐다고 밝혔다.
검찰에 따르면 차 전 단장은 김 전 이사장에게 '재단설립에 BH가 관여했는가 아닌가가 가장 큰 이슈"라면서 "BH가 관여했다면 기업의 자발적 참여라고 보기 힘들다. 그래서 나는 '재단 일에는 관여하고 있다'라고 하면 안되는 거라서요"라고 말했다.
이에 김 전 이사장은 "그 점을 안다"면서 "안 전 수석께는 이성한(전 미르재단 사무총장)을 만나지 말라고 했다. (안 전 수석과) 전화와 문자를 계속하고 있다"고 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