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6월 21일 백용호 공정거래위원장이 국세청장에 내정됐다. 국세동우회의 '국세청개편 반대 건의서를 받아 본 이명박 대통령은 최측근 백용호카드를 국세청장 기용에 빼 든 것이다. 그는 국세행정과는 전혀 인연이 없는 데다 장관급인 공정거래위원장을 차관급인 국세청장에 기용한 것이어서 쉽게 납득 안됐지만, 그만큼 당시 국세청 상황은 위중했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이명박 대통령은 기재부와 청와대국정기획실이 성안한 '국세청개혁안'을 시행직전에 전격 보류하는 대신 자신의 '심복(心腹)'으로 하여금 국세청을 제대로 파악하고 처방을 제시하도록 즉, 백용호에게 '특명'을 내린 것이다. 국세청을 잘 들여다 보고 안되겠다 싶으면 그때는 진짜 개편한다는 메시지가 담긴 셈이다. 이는 국세동우회가 건의 했던 내용 중 '훌륭한 경륜과 사명감이 투철한 새 청장이 임명되면 흐트러진 조직을 빠른 시일 안에 쇄신하여 대통령님이 기대하는 훌륭한 조직으로 다시 발전할 것입니다'를 대통령이 유념한 것으로 해석 된다.
백용호 18대 국세청장은 그 해 7월16일 개최 된 취임식에서 '작지만 효율적인 국세청'을 천명했다. 그로부터 한달 뒤인 8월14일 열린 취임 후 첫 전국세무관서장회의에서 '국세청조직개편은 없다'고 공언했다. 이로써 국세인은 물론 관가의 최대 관심사였던 '국세청 조직개편'이 공식적으로 소멸됐다.
백용호 국세청장은 이현동 서울청장을 국세청 차장에, 채경수 조사국장을 서울청장에 각각 보임하는 등 국세청 고위직 진용을 새로 짰다. 수평적 성실납세제도의 적용 기업을 확대함과 동시에 외형 5천억 원 이상 법인은 4년마다 세무조사를 단행 할 것과, 재산가들의 변칙상속 증여 행위, 대법인의 편법 우회상장에 대한 중점관리 등 고유 세정집행에 박차를 가했다.
백용호 청장의 국세청은 빠르게 안정을 찾아갔다. 청장 대행체제 장기화(177일)에 따른 유격현상도 해소됐다. 국세청은 9월 3일자로 '국세행정위원회'를 출범시키는 한편, 기업들과는 '성실납세이행협약'을 체결 하는 등 국세행정에 자신감과 탄력이 붙었다. 백용호 청장은 부조리제거와 공직기강확립, 업무활성화에 총력을 경주할 것을 강력지시하고, 그 연장선에서 주요보직국장을 외부에서 유입했다. 문승호 감사원 혁신담당관 출신을 본청 감사관으로, 전산정보관리관과 납세자보호관에 임수경 민간 전산전문가와 이지수 변호사를 각각 영입한 것이다.
백용호 국세청장은 가끔 일선 관리자들에게 불쑥 전화해 업무현황을 물어보면서 세정현장의 애로점이 무엇인 지를 살폈다. 본청 간부들에게는 소신과 책임행정을 각별히 강조했다.
그 해 11월 어느날 강만수 청와대국가경쟁력강화위원장이 느닷없이 국세청을 찾았다. 청와대 고위인사가 공식행사가 아닌 일로 국세청을 찾은 것은 전례가 없는 일이었기에 억측이 무성했다. 일각에선 강만수 위원장이 기재부장관 때 주도 했던 '국세청개혁안'에 대해 계속 미련을 못 버리고 있는 것으로 인식됐다. '백용호가 아니었으면 강만수플랜을 막아내기 힘들었을 것'이라는 말이 강만수 위원장 국세청 방문으로 인해 신빙성을 더 했다. <계속>
서채규 주간 <seo@taxtime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