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성·전군표 전·현직 국세청장 비리로 국세청의 고고한 전통인 기강과 중후한 공직자상이 하루아침에 날아가버릴 위기에 처했다. 특히 '국세청' 하면 '국가의 중추기관' '공직사회 모범조직' '범접할 수 없는 권력기관' '우수인재 집합소' 등 숱하게 따라 붙던 전통적인 수식어가 부끄럽게 돼버린 것이다. 국세청 선배들이 불모지에서 피와 땀으로 일궈 놓은 국세청 명예가 한 순간에 추락하는 것을 지켜 본 전·현직 국세인들은 가슴을 쳤다.
국세청 내부에서도 자성과 비판의 목소리가 빗발쳤다. 국세청장이라는 막중한 자리를 능력과 자질, 됨됨이를 제대로 보지않고 학연 지연 등 '연줄인사'가 가져 온 '업보'라는 비난이 쏟아졌다. 또 비리청장들을 가리켜 자질이 안되면서도 기를 쓰고 정상에 올랐지만 그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스스로 파멸한 대표적인 본보기로 회자했다. 국세청장 외부인 기용설도 나왔다. 정·관계, 학계. 시민단체 등을 중심으로 국세청장을 국세청사람들에 게 맡겨 둘 수 없다는 기류가 형성될 조짐을 보인 것이다.
전군표 청장 구속 24일만인 2007년 11월 30일 한상율 국세청 차장이 제 17대 국세청장에 취임했다.
'자질 안되면서 기를 쓰고 정상에 올았지만 그 무게를 못이기고 스스로 파멸'
한상률 청장은 취임식에서 '국민을 섬기는 국세청을 만들겠다'고 다짐했다. 다양한 세정실무경험을 가진 한상율 국세청장은 비리로 얼룩진 직전임 청장들을 의식, 주요업무와 인사에서 '공평'을 각별히 챙겼다.
그 해 12월 18일 제17대 대통령 선거에서 이명박 한나라당 후보가 당선됐다. 이명박 대통령은 2008년 2월 25일 거행된 취임식에서 '실용시대'를 선언했다. 정권이 교체된 상황에서 국세행정도 변혁이 예상됐다. 우선 국세청장 교체 여부가 세정가의 관심사가 됐으나 3월 7일 발표 된 새 정부 차관급 인사에서 한상률 국세청장은 유임됐다. 한상률 청장이 이명박 정부에서 유임 된 것은 전임 전군표 청장이 비리혐의로 갑자기 퇴임함에 따라 청장에 임명됐고, 청장 재임 3개월여 밖에 안 됐기 때문에 2대에 걸친 청장이라고 보기 어렵다.
국세행정은 새 대통령 국정운영에 맞춰 '실용'에 유의했다. 특히 이명박 대통령이 선거과정에서 '경제 대통령'을 내세우며, '내가 당선되면 1년내에 주가지수를 3000에 도달시킬 것'이라고 공약 했던만큼 모든 국가정책이 경제활성화에 모아졌다.
한상률 국세청장은 4월 초 세정투명성을 높이기 위해 세무조사 지휘라인을 수시로 교체하는 한편 지방청간 교차세무조사제를 도입한다고 발표했다. 또 6월들어서는 서울 강남합동청사에 국세청고객만족센터를 설치하는 등 국세행정을 국민 눈높이에 맞추려는 작업을 속속 전개했다.
그 해 11월 뇌물수수혐의로 검찰수사를 받던 이주성 전 국세청장이 끝내 구속됐다. 국회에 불려 나온 한상률 국세청장은 깊숙히 머리 숙이며 '앞으로 이런 일 절대 없을 것'이라고 다짐했으나, 이미 국세청은 이주성·전군표에 의해 큰 흠결이 난 상태여서 그 다짐은 신뢰를 얻지 못했다.
은인자중 숨죽이고 있는 2009년 벽두, 한상률 국세청장에 대한 악성루머가 나돌았다. 한 청장이 차장시절 인사청탁 그림로비를 했고, 2008년 초 '국세청장 연임을 위해 이상득 이명박 대통령 형하고 친분이 있는 새정부 실세들과 경주에서 골프를 쳤다는 소문이 파다하게 퍼진 것이다.
마침 2009년 1월11일 일본도쿄에서 열린OECD 조세관련회의에 참석하고 김포공항을 통해 돌아 온 한상률 국세청장은 공항에서 기자들에게 그림 및 골프로비에 대해 '절대 아니다'를 강변했다. 국세청 간부회의에서도 '(자신이 결백하다는)진실은 밝혀 질 것'이라고 호언했다.
그러나 불과 이틀 뒤인 1월15일 한상률 청장은 사표를 냈다. 국세청장 재임 1년 4개월 만이다. 세명의 청장이 연거푸 불명예퇴진한 데다, 갑자기 수장이 공석이 된 국세청은 공황상태에 빠졌다. 청장이 전격경질 됐기에 후임청장 인선은 없었고, 2009년 1월20일자로 허병익 차장이 국세청장직무를 대행했다. <계속>
서채규 주간 <seo@taxtime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