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정청탁 및 금품 수수 금지 법률, 이른바 '김영란법'이 헌법에 위배되는지를 심리하기 위한 공개변론이 9일 헌법재판소에서 열렸다.
이날 공개변론에서는 언론인 및 사립학교 관계자 등을 김영란법의 적용대상으로 규정한 것은 언론의 자유 및 평등권과 기본권을 침해한다는 위헌 측의 주장과 공공성이 인정되기 때문에 합리적인 이유가 있다는 합헌 측이 서로 팽팽하게 맞섰다.
헌재 전원재판부(주심 강일원 재판관)는 이날 오후 2시 서울 종로구 재동 헌재 대심판정에서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 2조 1호 마목 등에 대한 위헌소원 사건의 공개변론을 열고 청구인 측과 이해관계인 및 참고인들의 입장을 들었다.
공개변론에서는 ▲언론인을 김영란법의 적용대상으로 규정한 것이 언론의 자유와 평등권 등을 침해하는지 ▲민간영역 중 언론과 교육 분야만을 김영란법 적용대상으로 규정한 것이 차별인지 ▲부정청탁 금지를 규정한 법 조항이 명확한지 ▲배우자에 대한 신고의무를 부과한 것이 양심의 자유 등을 침해하는지 등이 주요 쟁점으로 다뤄졌다.
청구인 측 대리인은 "김영란법에 사립학교 등을 적용대상으로 규정한 것은 학교에 불신과 감시를 근간으로 하는 법률을 적용한 것"이라며 "교육의 자주성 등을 제한한 것으로 사적 영역에 지나치게 간섭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배우자에 대한 신고의무를 부과한 것에 대해서는 "살인죄 등 범죄에 대해서도 신고에 대한 의무는 없다"며 "가정에 불신을 심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대한변협신문 편집인인 하창우(61·사법연수원 15기) 대한변호사협회 회장은 "당초 정부는 공직자의 대가성 없는 금품수수를 처벌하기 위해 법을 만들었다"며 "그런데 국회가 법안을 심의하는 과정에서 ‘공직자 이해충돌 방지 규정’을 빼 버리고, 민간 언론까지 적용대상에 포함시켰다"고 주장했다.
하 회장은 이어 "김영란법 조항에는 금지해야할 15가지 유형의 부정청탁이 규정돼 있다"며 "언론에 대해서는 부정청탁의 유형을 하나도 제시하지 못한 것은 죄형법정주의의 이론을 빌리지 않아도 부당하다"고 지적했다.
하 회장은 그러면서 "언론의 자유는 최대한 보장하는 것이 헌법의 기본원리"라며 "공공성이 이유라고 한다면 시민단체나 민간 의료계, 금융계 등 공공성이 큰 민간영역을 제쳐두고 언론만 포함시킬 이유가 없다"고 강조했다.
하 회장은 아울러 "김영란법에서 규정된 조항은 열거 규정인지 예시 규정인지도 모호한 상태"라며 "자의적인 법해석과 법집행이 가능하기 때문에 명확성 원칙에도 위반된다"고 덧붙였다.
반면 이해관계인인 국민권익위원회 측 대리인은 "우리나라 현재 상황에 비춰보면 특히 공공성이 요구되는 언론과 사립학교 등에 김영란법을 적용할 필요성이 있다"며 "중대한 공적 부분을 담당하고 있는 데 따른 책임을 명시한 것"이라고 반박했다.
국민권익위원회 측은 이어 "김영란법 조항은 언론인 및 사립학교 등으로 하여금 부정한 청탁을 받거나 금품 등을 수수하는 것을 금지할 뿐"이라며 "언론의 자유나 교육의 자유 등 기본권을 침해하는 것이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김영란법 조항은 부정청탁의 대상이 되는 업무를 구체적으로 열거하고 있으므로 어떤 유형의 행위가 부정청탁에 해당되는지 명확하게 명시하고 있다"며 "법령 및 사회상규 개념은 오랜 세월 동안 법리가 축적돼 있기 때문에 명확성이 없다고도 볼 수 없다"고 설명했다.
배우자에 대한 신고의무 부과에 대해서는 "신고의무를 부과한 것에 불과한 것이지, 양심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이 아니다"라며 "신고의무 주체 또한 본인이고 이에 대해 처벌하겠다는 것 뿐"이라고 밝혔다.
양측 변론을 귀 기울여 듣던 재판관들은 다양한 질문을 쏟아냈다. 박한철(62·13기) 헌법재판소장은 국민권익위원위 측에 "언론인과 사립학교의 경우 과도한 공권력 개입이라고 볼 수 있지 않는가"라고 질문했다.
이에 대해 국민권익위원회 측은 "위축효과가 현실적으로 나타난 것은 현재까지 없다"며 "민주화가 이뤄진 현재 사회에서 공권력을 남용해 언론 및 교육에 대한 자유를 침해하는 시대가 아니라고 판단된다"고 답했다.
김이수(62·9기) 재판관은 효율적인 집행의 문제를 지적했다. 이에 대해 국민권익위원회 측은 "법의 공백을 보완하는 것에 1차적인 목적이 있다"며 "김영란법을 통해 국민 의식의 변화를 유도할 수 있고, 이를 통해 사회 문화가 보다 발전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자 이 사건 주심인 강일원(56·14기) 재판관은 청구인 측에 "공공성이 큰 민간영역 전체를 규제 대상으로 해야한다는 취지인가"라고 되물었다.
이에 청구인 측은 "민간영역 자체를 포함시키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라며 "영국이나 싱가포르 등 해외 사례에 비춰 보더라도 김영란법처럼 직업군을 특정해서 규제하지 않는다"라고 설명했다.
이날 공개변론에서는 전삼현 숭실대학교 법학과 교수가 청구인 측 참고인으로, 최대권 서울대학교 법과대학 명예교수가 국민권익위원회 측 참고인으로 참석해 각각 양측 주장에 힘을 실었다.
전 교수는 "김영란법 시행으로 인해 국가기관에 대한 국민의 불안을 늘릴 위험성이 있다"며 "반사회성 정도에 근거하지 않고 일률적으로 언론·사립학교 등을 제재하는 것은 과잉금지원칙과 평등의 원칙에 위배돼 위헌의 여지가 있다"고 주장했다.
전 교수는 이어 "언론 등 민간 분야에 대해 국회의원 등 공무원보다 엄격하게 책임을 묻는 것은 적절치 않다"며 "구체적인 처벌 범위에 대해 명확치 않은 상태에서 포괄적으로 규제한다는 것은 죄형법정주의 원칙에도 위배된다"고 강조했다.
반면 최 교수는 "우리사회가 한 단계 발전하기 위해서는 언론사·사립학교 등에 대해 김영란법을 적용할 필요성이 있다"며 "해답이 충족치는 않다 할지라도 김영란법은 향후 사회 발전을 위한 발판으로서 좋다고 생각한다"고 주장했다.
언론의 자유를 침해한다는 의견과 관련, 최 교수는 "언론의 경우 공적 압력뿐만 아니라 사적 영역에서의 압력으로부터도 독립해야할 필요가 있다"며 "공적·사적 압력으로부터 보호하겠다는 취지의 김영란법은 결코 언론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이 아니다"라고 반박했다.
헌재의 심판대에 오른 김영란법은 공직자와 언론사 임직원, 사립학교와 유치원 임직원, 사학재단 이사진 등이 직무 관련성이나 대가성에 상관없이 100만원을 넘는 금품이나 향응을 받으면 형사 처벌하도록 한 법이다. 또 본인은 물론 금품을 받은 배우자를 신고하도록 의무화하고, 신고하지 않으면 처벌하는 규정도 포함됐다.
지난 3월 국회를 통과한 김영란법은 내년 9월 시행된다. 하지만 국회 통과 이전부터 위헌 논란이 일었고, 국회 통과 이틀 만에 헌법소원이 제기됐다.
앞서 대한변호사협회의 편집인 등은 지난 3월 5일 "언론인을 김영란법의 적용대상에 포함한 것은 헌법 제21조 언론의 자유와 헌법 제11조 제1항 평등권에 위배된다"며 헌법소원심판청구서를 헌재에 제출한 바 있다.
이후 언론인과 사립학교·유치원 관계자 등이 추가로 헌법소원심판청구를 냈고, 헌재는 총 4건의 헌법소원을 병합해 위헌 여부를 심리하고 있다.
한편 법조계에서는 내년 9월 법 시행 이전에 헌재의 최종 결론이 나올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헌재는 지난 3월 말 이 사건을 전원재판부에 회부해 심리를 진행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