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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독하기 2025.06.19. (목)

내국세

[연재]해군장성 부인들 마음에 힐링쉼표 ‘콕’

-'나는 평생 세금쟁이'- (85)

 아내와 함께, 추억의 섬 저도(猪島)에서

 

  

 

그렇게 육‧해‧공군 합동 아카데미 특강을 성공적으로(?) 해주다 보니 해군 수뇌부에서는 필자를 보고 의아해 하는 눈치였다. 그러면서 “천안함 재단 이사장 자리는 아무나 하는 게 아니구나”하고 필자를 좋게 봐주는 듯 했다. 그로 인해 당시 최윤희 해군참모총장(나중에는 합참의장)과 더욱 친밀한 사이가 되었다.

 

그로부터 몇달이 지난 어느 무더운 여름날이었다.

 

“조 이사장님! 지난번 계룡대 특강 때 열강을 해 주셔서 제가 주위로부터 칭찬을 많이 받았습니다. 그래서 이번 휴가는 진해 앞바다 저도(猪島)에서 저희 부부와 함께 보내시면 어떨까요? 마침 VIP께서도 엊그저께 다녀가셔서 홀가분합니다.”
“네? 저도(猪島)라고요?”

 

VIP의 애틋한 추억들이 담긴 바로 그 저도(猪島)란 말인가? 필자는 가슴 설레지 않을 수 없었다. 몇날 몇밤을 보낸 후 부푼 꿈을 안고 아내와 내가 진해 해군기지에 도착했더니 이미 몇몇 다른 부부들도 와 있었다. 아마도 최윤희 총장께서 임기가 얼마 남지 않아 평소 가까이 지내는 지인들과 함께 휴가를 보내려고 하셨던 것 같았다.

 

아무튼 이들과 함께 해군에서 마련해 준 배를 타고 저도(猪島)로 향했다. 그 때 아내는 평생 처음 느껴보는 홀가분한 마음이라 날아갈 것 같이 기뻐했다. 그래서 필자는 비록 짧은 3일간이지만 정말 의미 있는 이곳에서 아내의 평생 한(?)을 풀어주고 싶었다.

 

사실 그동안 아내와 나는 휴가다운 휴가 한번 제대로 못 보내서 늘 미안한 마음뿐이었다. 그래서 이번 기회에 제대로 보답해 주고 싶었다.

 

그래서 도착하자마자 다정하게 손잡고 섬 전체를 두루 산책도 하고, 밤에는 뱃머리 부둣가에서 함께 낚시도 하고 또 유난히도 반짝이는 밤하늘의 별들을 바라보며 노래도 불러보는 등 정말 꿈만 같은 시간들을 보냈다.

 

그 때 느낀 필자의 허망한 희망이지만 이렇듯 행복한 시간에는 시계라도 머물러 주기를 바랬으나 야속하게도 그렇지 못했다.

 

그렇게 해서 꿈 같은 이틀을 그렇게 흘러 보내고 마지막 날 섬을 떠나기 직전 우리 일행들이 함께 점심식사를 하는 자리에서 참모총장 부인이 느닷없이 “며칠 후면 해군장성 부인들이 참석하는 세미나가 이 섬에서 열리게 됩니다. 그런데 오래 전부터 섭외해 놓은 유명 강사분이 갑자기 변고가 생겨 교육과정에 차질이 생겼는데 이사장님께서 대신 특강을 해주실 수 없을까요?”하는 것이 아닌가.

 

필자의 의사를 묻는 것이 아니라 일방적인 통보였다. 갑작스런 이야기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는데 옆에 있던 아내가 무언의 압력을 가해 와서 승락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아무튼 그렇게 해서 3일간의 꿈 같은 휴가를 마치고 아내와 나는 집으로 돌아왔으며 그 며칠 후 또다시 그 곳으로 향했다. 그런데 평소 같으면 사소한 일에도 피곤하다던 아내가 지치지도 않고 더 신이 나 보였다. 퍽이나 다행이었다.

 

예정된 시간에 그 섬에 도착해 보니 50여명의 해군장성(제독) 부인들이 강의실을 꽉 메웠다.

 

그런데 상대가 전부 여성들이다 보니 평소에는 느끼지 못하던 또다른 분위기가 필자를 엄습했다.

 

그 때 문득 필자의 머리에 한 장면이 떠올랐다. 이태전인가 서울 양재동에 있는 어느 교회에서 300여명의 목사 부인들을 상대로 특강을 한번 해 본 적이 있었다. 목사들의 아내와 장성들의 아내는 어떻게 다를까? 또 해군 장성(제독)들은 필자와 같은 일반 공직자들과는 어떻게 다를까?라는 의문을 가져 보았다.

 

생각건대 해군장성들도 목사들이나 일반 공직자들과 똑같이 공적인 일을 맡고 있는 공인(公人)들이다.

 

설령 다른 점이 있다면 목사들이나 일반 공직자들에 비해 근무지를 자주 옮겨 다녀야 하는 핸디캡(?)이 있을 것이다.

 

그래서 이번 특강을 통해 해군 장성(제독)의 아내들은 무엇보다 남편들이 마음 편하게 군무에 임할 수 있도록 뒤에서 소리 없는 내조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또 부하들의 아내를 마치 자기의 부하인 것처럼 부리는 것이 아니라 그녀들이 겪고 있는 갈등들을 직접 챙겨주는 것이 올바른 역할이 아닐까 생각했다.

 

그러면서 세무공무원으로 오로지 일밖에 모르고 지내온 필자와 수십년을 함께 살아오면서 내 아내가 겪었던 고통들과, 특히 삼수(三修)생 아들과 재수(再修)생 딸의 뒷바라지를 하면서 겪었던 마음의 상처들, 그 무엇보다 이혼 직전까지 간 아내와 마지막으로 ‘부부행복학교’를 다녀야 했던 서글픈 사연들을 들려주었다.

 

또 그동안 삐뚤어진 아들과의 관계를 회복하기 위해 그 바쁜 와중에 ‘아버지 학교’를 다니게 된 기막힌 사연들도 담담하게 들려주었다.

 

그러면서 나도 모르게 눈물을 흘렸더니 경청하던 그녀들도 함께 울어 주었다. 하나같이 내 이야기에 공감이 간다는 뜻이겠지….

 

한시간 반가량의 특강을 마치자 그녀들은 하나같이 나에게 정말 속 시원한 힐링 강의를 해주었다면서 고마워했다. 지금 생각건대 그때 무슨 능력으로 그녀들을 울렸는지?

 

그 이후로 필자는 ‘힐링의 명강사’로 알려져(사실 그렇지 않는 데도) 해군 이곳 저곳에 많이 불려 다녔다.

 

아무튼 그 해 여름 추억의 섬, 저도(猪島)에서 아내와 나는 잊을 수 없는 많은 추억들을 간직하게 되었다. 

 

 

 

<계속>-매주 水·金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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