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장(兵長) 출신이 대장(大將)들 울렸네”
필자는 지금껏 5년이 넘도록 천안함 재단 이사장으로 있으면서 과거에는 감히 생각치도 못한 생소한 일들을 많이 접해 보았다.
대부분이 해군과 관련된 일들로 천안함 46용사들의 유족을 돕는 일을 비롯해서 58명 생존장병들의 완전한 사회 복귀와 열악한 해군 현역들의 병영문화를 바꾸어 주는 일들과 심지어 우리 국민들의 안보의식을 다잡아 주는 일들도 있었다.
그런데 이런 일들은 내가 늘상 다루고 있는 세금 일하고는 전혀 관계가 없는 일들이었다.
사실 이런 일들은 해군에서 직접 챙겨야 할 것인데 필자를 비롯한 몇몇 민간인들이 재단을 만들어서 이런 일들을 대신 해주다 보니 무엇보다 해군에서 고마워했다.
그래서인지는 몰라도 해군 지휘부에서는 그런 고마운 뜻을 해군 전 장병들에게 알리고 싶어 필자로 하여금 특강을 통해 천안함 재단 설립배경과 과정들을 설명해 주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그런 이야기들이야 내가 처음부터 직접 관여해 왔기 때문에 자신있게 이야기해 줄 수 있지만, 나라 안보에 대해서는 전혀 문외한이 아닌가?
더구나 부대마다 갓 스무살 넘은 사병들을 비롯해서 30대의 부사관과 위관급, 여기에다 40대 영관급과 50대 별자리까지 다양한 연령층들이 한꺼번에 모여 있다 보니 어디에다 초점을 맞춰야 하는지 매우 혼란스러웠다. 그렇다고 그것을 핑계삼아 거절할 수도 없었다.
그런데 다행히도 필자는 과거 국세청에서 실무자로 있을 때 양도소득세를 비롯한 상속‧증여세만을 전담하는 기획부서 한자리에서만 12년동안 근무한 적이 있었다. 그런 연고로 그 분야에서는 자타가 인정하는 최고의 전문가가 될 수 있었다.
그렇다 보니 여기저기서 강의 요청들이 참 많았다. 국세청 공무원교육원을 비롯해서 각종 상공인단체나 기업체들 심지어 KBS 생방송 ‘무엇이든지 물어보세요’에도 자주 출연했었다.
필자는 그런 경험들을 통해 내 나름대로의 맞춤형 강의기법을 터득했었다. 그것을 무기삼아 지난 5년 동안 해군부대 웬만한 곳은 다 다니면서 별 무리없이 특강을 해주었다.
지금 생각해 보니 그 수많은 특강 중에서 필자 머리에 남아 있는 특강(?) 하나가 있다. 아마도 죽을 때까지 잊지 못할 것이다.
지금 육‧해‧공군본부가 위치하고 있는 대전 계룡대에서는 해마다 한차례씩 육‧해‧공군 참모총장들이 모여 ‘계룡대 합동아카데미’라는 이름으로 각 군의 핵심 간부들에게 특별 정신교육을 해주는 과정 하나가 있다. 육‧해‧공군이 매년 돌아가면서 그 과정을 주관하고 있었는데 강사 초빙도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2013년도에는 해군 주관이었는데 당시 최윤희 해군참모총장(최근까지 합참의장으로 재직)께서 여러모로 부족한 필자를 추천해 주셨다.
거듭 이야기하지만 일개 육군 병장 출신이 감히 대한민국 최고의 장군들이나 해군 제독들 앞에서 안보특강을 하게 되다니…. 삼척동자도 웃을 일이었다. 필자는 며칠간 고민 고민 끝에 승낙했다. 강의 당일 필자는 ‘부국강병(富國强兵)은 근자열(近者悅)로부터’라는 제목으로 한시간 반동안 정신 없이 목청을 높였다.
나라 안보를 책임지고 있는 최고의 리더십(leadership)들에게 우선적으로 꼭 갖춰야 할 덕목이 있다면 그것은 가까이 있는 사람들을 기쁘게 해 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여기서 ‘가까이 있는 사람들’이란 자신의 가족은 물론이고 늘상 자주 대하는 부하들이다. 그리고 그 ‘감동(感動)’이란 어렵게 생각할 것 없이 부하들의 마음 상태를 있는 그대로 알아주라는 것이다. 그렇게만 된다면 자연스럽게 튀어 나오는 대화 한마디가 있다. 끝마디가 “~구나~구나” 아니면 ”~군요~군요”로 끝나는 대화가 바로 그것이다.
비록 지금 나와 대화하는 부하와 내 생각이 다르더라도 “김 대위! 자네 그렇게 생각했구나” 또는 “군수참모! 자네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구나”
그런데 대부분의 지휘관들은 부하들의 생각이 자기와 다를 때는 무조건 “무슨 소리야! 내 시키는 대로 해”라고 목청 돋우고 있지는 않는가?
그럴 때 부하들의 마음은 어떨까? 아무리 군대라 하더라도 한번쯤 생각해 보아야 할 대목이다.
비록 부하들의 생각이 나와 다르더라도 ‘그들의 생각이 틀린 것이 아니라 다르구나’라는 사실을 반드시 알아야 한다.
우리 대한민국의 안보를 책임지고 있는 참모총장들부터 가정에서나 병영에서나 늘 이런 대화를 주고받게 된다면 아마도 큰 변화가 있을 것이다.
특히나 이런 ‘구나’ 문화가 전군(全軍)으로 확산된다면 우리 국민 모두가 우려하는 일부 병사들의 총기사고와 같은 병영 사고들은 사라질 것이다.
또 여기에서 우리 모두는 ‘다름은 틀림이 아니다’라는 진리까지 깨닫게 될 것이다라고 강하게 외쳐 보았다.
그러면서 사이사이에 필자가 실패했던 과거 경험담들을 함께 들려 주었다.
이렇게 정신없이 목청을 돋우다 보니 금새 한시간반이나 흘렀다.
그런데 강의를 다 들은 그들의 반응들은 어땠을까? 예상외로 모두들 공감하는 분위기였다. 심지어 어떤 장군들이나 제독들은 눈물까지 흘렸다고 하는 것을 보면 얼마나 다행인지. 지금도 두고두고 잊지 못할 감동의 순간들이었다.
더 놀라운 것은 그 다음날 어느 신문에서는 “육군병장 출신이 대장들 울렸네!!”라는 기사 제목으로….
<계속>-매주 水·金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