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에 앞서 임채주 국세청장은 1997년 1월 일선 민원실 직원들에게 큰 선물을 안겼다.
연말연시를 맞아 전국 178개 세무관서 민원실에 10만원씩 격려금을 준 것이다. 비록 금액은 크다고 할 수 없었지만 민원실 직원들은 ‘위에서 우리를 알아주고 있다’는 것 하나로 큰 위안을 받았다.
이미 강남세무서와 강진세무서에서 팀제를 시범운영하는 한편, 본·지방청 6급 7급 직원 20%를 일선에 배치했을 정도로 일선 기능을 강화한 국세청은 일선에서도 최전선인 민원실을 꼼꼼히 챙긴 것이다.
같은 해 3월 국립세무대학 4년제 개편론이 나왔다.
정재룡 세무대학장이 ‘강경식 재경원장이 동의했고, 교육부와 일정을 협의 중에 있다’면서 한 공식석상에서 ‘세무대학 4년제 개편’을 공언했다.
곧 학계의 찬반 논란이 거세게 일었다. 같은 해 7월 전국 대학교수 61명이 연명으로 세무대학 4년제 반대를 선언하는 등 극심한 반대에 부딪쳤다.
결국 ‘우수 세무 전문인력의 산실’이라는 세간의 호평에도 불구하고, 정부 기구축소 구조조정과 세무인력의 특정대 출신 독점, 기회균등 상실, 세경(稅經) 유착을 가져 올 수 있다는 등의 부정적인 기류에 밀려 제19회 졸업생을 끝으로 2001년 2월 폐교되고 말았다.
이때 일각에서는 ‘국세청 존재감이 강했더라면 충분히 상황을 반전시킬 수도 있었을 것’이라는 아쉬움을 바탕에 깐 ‘무력한 국세청’론이 회자되기도 했다.
국세청은 1997년7월1일을 기해 ‘납세자 권리장전’을 공표 했다.
납세자의 권리를 명문화한 권리장전은 납세자에 대한 권익을 국세행정이 적극적으로 보장해 주겠다는 의미를 담았지만 법적인 구속력을 갖지 못해 시행과정에서 ‘있으나마나 하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그러나 국세청이 스스로 상대적 약자인 납세자 권리를 생각했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평가가 많았다.
같은 해 12월 3일 IMF 긴급구제금융이 신청됐다. 전대미문의 이 사태는 국세행정에도 많은 변화를 불러왔다. 세금을 부과하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세금을 어떻게 하면 잘 받아낼 수 있을까가 국세행정의 초점이 됐다.
또 소위 안정적인 직업군에 속하는 사(士)자와 전문인적 용역에 대해서는 징세가 강화됐다. 면세대상이었던 변호사, 세무사, 회계사, 학원계 등에 부가세가 과세 된 것인데, 이는 IMF구제금융협상과정에서 IMF가 우리 정부에 과세를 요구했기 때문이다.
1998년2월25일 김대중 제15대 대통령이 취임했다.
‘완전한 정권 교체’-‘평화적 정권교체’로 평가받은 김대중 대통령은 모든 정책분야에서 ‘위민(爲民’)을 최우선했다. 과거 정권에 대해 ‘억압과 탄압, 독재정권’이라고까지 몰아 붙였던 이른바 민주세력들은 김대중정부에 대해 기대와 격려를 아끼지 않았지만, 일각에서는 지나친 보상을 요구하는 행태도 불거져 나와 뜻있는 사람들의 빈축을 사는 일도 없지 않았다.
4대 권력기관 중 하나로 꼽히는 국세청에도 정권교체 여파가 거세게 몰아쳤다. 우선 '누가 국세청장이 될 것인가'에 대해 이목이 집중됐다.
특히 ‘호남 출신이 국세청장이 되지 않겠냐’는 일반적인 견해와 정권 초기에는 비호남 출신을 국세청장에 기용할 것’이라는 설이 팽팽히 맞섰다. <계속>
서채규 주간 <seo@taxtime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