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5년11월1일 우리나라 최초의 조세전문지로 탄생한 ‘한국세정신문’의 발자취는 한국 세정사와 궤를 같이 한다.
혼란의 60년대 시대적 요구에 맞춰 창간
한국세정신문의 전신인 ‘한국세정신보’가 창간된 1965년 당시는 조세제도의 개혁과 세무행정의 강화, 1961년 세무사제도 창설 등으로 세법 및 세무행정이 급격하게 변화하던 시기였다.
이에 따라 많은 정보들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고 세무공무원 뿐만 아니라 납세자들 사이에서도 이를 신속‧정확히 전달해 줄 조세전문 분야의 전문지 발행에 대한 필요성이 대두됐다.
이러한 시대적 요구에 맞춰 한국세정신보의 창간 태동이 시작된다.
창간후 최초사업으로 6개 세법·령을 정리, 현재의 국세법령집을 발간해 당시 정가 300원에 판매했고, 당해 5월에 다시 개정된 세법·령 내용에 대한 1차 추록분을 발매하기 시작했다.
또한 ‘양조수첩’을 발간해 주류제조 및 판매자를 대상으로 배포하는 한편, 기존의 무료 세무상담실을 ‘부설 세정교실’로 발전시켜 세금문제에 대한 종합창구로 운영했다.
한국세정신보 창간 멤버들은 국세청 신설 추진에 대해 밀착취재를 해 매호마다 그 윤곽과 진척도, 문제점 등을 톱기사 및 주요 이슈로 다루며 개청전까지 조세전문지로서의 정보 제공역할을 톡톡히 했다.
1966년3월3일 국세청이 개청된 이후에는 대대적인 인사정보를 신속히 보도, 세무공무원과 기업인들로부터 큰 호평을 받았다.
그러나 뜻하지 않은 돌풍이 닥쳤다. 1966년 9월 공보부는 인쇄시설의 법정기준 미달을 이유로 당장 시설 개선을 하거나 아니면 발행을 중단하라는 명령을 통보했다. 한국세정신보는 창간이후 갖은 어려움을 극복하면서 꾸려 왔으나 자금 운용은 여의치 않은 상황이었다.
당시 주간신문계 현실은 영세한 시설로 발행하거나 일간지의 인쇄시설을 이용해 발행하고 있는 실정이었다. 일시에 막대한 자금을 투입해 정부 시설기준을 충족하기 힘들자 결국 신문 발행을 중단하게 된다.
조세뉴스를 다루는 유일한 조세전문지가 시설 미비로 ‘자진 휴간’이라는 위기에 봉착하자 독자들과 관련기관 및 단체들은 안타까움을 표시했고, 조세전문지가 폐간까지 가서는 안된다며 나름대로의 방안을 제각각 내놓기도 했다.
이처럼 독자들의 뜨거운 성원과 유관기관장들의 숨은 후원, 전국 지사장들의 재발간에 대한 열정을 바탕으로 이명헌씨를 새 사장으로 영입하고 12월19일 속간체제를 갖추게 됐으며, 1966년12월24일 한국세정신보 속간 1호가 발행됐다.
한국세정신보는 사세 확장과 함께 늘어나는 독자들의 세무정보 욕구 충족을 위해 1970년1월1일자부터 매호 8면이던 것을 10면으로 늘려 발행했으며, 증면된지 4개월만인 4월13일자부터는 12면으로 증면·단행했다.
부설 한국세정실무회계학원 개원
김재열 사장은 일본 조세계 시찰후 우리나라의 세무관리기술 발전과 세무회계 실무인력 양성의 중요성을 절감하고, 부설 한국세정실무회계학원 개원에 착수해 1971년6월1일 개원하게 된다.
학원 개설 등으로 하루가 다르게 사세가 확장되자 1972년5월28일 본사 사옥을 서대문구 북아현동에서 서대문구 정동 22-6 풍전2호 빌딩으로 이전했으며, 1975년에는 매주 2회 20면을 발행함으로써 외양과 내실을 갖춘 조세전문지로서의 위상을 높여 나가게 된다.
한국세정신보사는 또 문예분야와 학술분야에 조예가 깊은 독자들이 많은 점을 감안, 매년 신춘문예 논문 수기 작품 공모와 함께 1973년 2월부터는 모범 세무공무원과 모범납세자를 독자들의 투표로 뽑아 표창을 수여하기도 했다.
아울러 본지 사장배 쟁탈 전국관서 대항 바둑대회를 개최해 전국 세무공무원간의 교류의 장을 제공하며 화제를 모았다.
국내 유일무이한 조세전문신문으로 창간된지 9년을 맞은 1974년 한국세정신보는 전문 저널리즘의 경시 풍조에 아랑곳하지 않고 꿋꿋이 독자성과 고유 업무영역을 개척해 오며 일취월장하게 된다.
‘조세전문 매스컴센터’ 탄생
이어 창간 13주년을 맞은 1978년 11월에는 동교동 사옥 준공으로 명실상부한 ‘조세전문 매스컴센터’가 탄생하게 된다. 동교동 새 사옥 마련과 이전은 그 의미가 어느 때보다 달랐다. 지난 68년 창간 초기 내분과 혼란을 수습하고 경영권을 인수해 주식회사 법인으로 전환한지 꼭 10년이 되는 해였기 때문이다.
1980년 서울의 봄이 오는가 싶더니 신군부가 등장, 언론 통폐합 조치가 단행됐으며 주간신문도 예외는 아니었다.
당시 국보위 언론분과위는 각종 주간지에 대한 검열과 그 폐해에 대한 심사에 착수했으나, 한국세정신보에 대한 심사에서는 그 역할과 가치에 대해 모두 공감했고 정도경영을 하고 있다는 점에 어떠한 이의도 없었다.
1980년대 중반에 접어들면서 한국세정신보는 경제산업환경 발전 추세에 맞추고 독자 저변 확대를 위해 1984년5월24일 과감히 지면 증면을 단행하고 긍융·증권·보험면 신설‧발행에 들어가 매주 24면으로 지면을 늘리게 된다.
이때 한국세정신보는 제2창간의 각오를 다짐하며 ‘제호 변경’ 선언을 하게 된다.
1987년6월1일 현재의 한국세정신문으로 바뀌게 된다. 제호 변경은 ‘신문’이라는 의미를 깊이 새기며 언론으로서 더더욱 무거운 책무를 수행해야 한다는 경건함이 담겨 있다.
한국세정신문은 1997년 3월 인터넷 시대를 대비, 인터넷과 내부인트라넷 구축을 위해 정보화 사업팀을 발족해 시장 조사 및 시스템 구축을 위한 대비책에 나선다. 이후 1999년11월1일 창간 34주년을 기념해 인터넷 홈페이지를 개통해 자료신문으로 거듭나게 된다.
2000년 인터넷 시대 개막
2000년 1월부터는 당시 국내 전문지 중 유일하게 인터넷서비스를 자체 보유하며 세무뉴스를 제공하게 된다.
이후 한국세정신문은 2003년7월27일, 현재의 서울 마포구 동교동 세정빌딩으로 사옥을 이전하며 김정호 사장 체제로 도약을 이어가고 있다.
반세기를 달려온 한국세정신문은 조세발전의 구심점 역할을 자임하며 한국조세발전의 리더역을 담당해 왔고 단순히 보도에만 그치지 않고 언론의 사명인 비판과 대안 제시는 물론 발굴기사의 비중을 높여가고 있다.
한국세정신문은 지난 50년 격랑의 풍랑속에서도 이 땅에 조세언론의 존재가치와 역할을 각인시켰듯 100년 대계를 향해 전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