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해 10월19일, 노태우 전 대통령의 운명을 가른 비자금 관련 비밀문건 논란이 불거져 정가가 발칵 뒤집혔다. 민주당 소속 박계동 의원이 국회 본회의에서 예금통장 사본을 흔들면서 ‘노태우 비자금 4천억원’을 폭로한 것이다. 노태우 전 대통령은 그로부터 열흘만에 ‘돌팔매도 달게 받겠다’며 비자금 관련 대국민 사과문을 발표했으나 결국 11월16일 구속됐다.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이 거액의 비자금을 숨길 수 있었던 이유는 기업 자금이 정치권으로 흘러들어가도 제대로 검색되지 않는 것이 문제라는 지적이 정치권에서 급격히 부각됐다. 국세청이 이미 강력 추진하고 있는 세정전산화 작업이 그 가치와 필요성을 인정받는 계기가 됐다.
1995년12월20일 추경석 국세청장은 임채주 차장에게 국세청장 자리를 물려 주고 건교부 장관으로 영전했다.
국세청 말단 직원으로 입사해 이렇다 할 권력의 후견없이도 국세청 최고위직에 올랐으며, 2대(代)에 걸쳐 대통령으로부터 신임을 받았고, 직업공직자 최고의 영예인 내각에 입각한 추경석. 많은 사람들이 ‘공직자 추경석’을 높이 평가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여기서 ‘공직자 추경석’에 대해 잠시 짚어 본다.
우선 ‘군사정권’에서 ‘문민정부’로 넘어가는 숨가빴던 과정에서 슬기롭게 세정을 관리해 낸 발군의 행정능력을 높이 사는 사람이 많다. 만약 노태우 정권때 국세청이 순기능을 다하지 못했으면 ‘단명 국세청장’이 될 수도 있었는데 김영삼 정부에서까지 재신임을 받은 것은 순전히 ‘추경석의 역량’ 때문이라는 것이다.
또 그를 잘 아는 사람들은 ‘철두철미한 공직자’로 칭한다. 책임감이 강하고, 공직자로서의 자존심과 예리한 통찰력을 두루 갖췄다는 것이다.
특히 공직자로서의 사명감이 유난히 강한데, 거기에는 선친이 항일독립투사였을만큼 확고한 ‘가풍’에 영향을 받은 것으로 풀이하는 이도 있다.
김영기 세무법인 T&P 대표이사(전 국세청 조사국장)는 추경석 전 국세청장에 대해 “매사에 꼼꼼하지만 선이 굵고, 아무리 어려운 일도 쉽게 풀어내는 역량을 가졌다”면서 “직원들을 힘들지 않게 하면서도 성과는 다 거두는 비범한 리더십을 두루 겸비한 상사로 통했다”고 말한다.
그는 정치바람을 많이 타고, 기업들로부터 타깃이 되기 쉬우며, 경쟁이 가장 극심한 자리로 대표되는 국세청 조사국장을 3년6개월이나 역임했다. 이는 국세청 사상 아직까지 전무후무한 조사국장 장기봉직이다. 많은 사람들의 이목이 집중되는 것은 물론 질시도 있을 수 있는 조사국장을 그만큼 오래 역임할 수 있었던 비결로 그의 업무성실성과 철저한 자기관리를 꼽는 사람이 많다. 그는 조사국장 시절부터 ‘휴일에는 북한산에서 살다시피 했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자기관리에 철저했다.
또 지방국세청의 세무조사 내용 보고를 본청 조사국장 재가없이 지방청장들이 종결처리할 수 있도록 했다. 종전에는 지방청 조사분을 본청 조사국장에게 소위 ‘품신’이라는 이름을 붙여 본청에서 최종 재결했던 것을 지방청장에게 재결권을 넘겨 준 것이다. 욕심을 버리고 능률과 화합을 택한 것이다. 이에 대해 당시 일부 지방청장은 ‘과연 추경석이다’를 연발했다고 한다.
추경석 국세청장 재임 만 4년 동안 국세청에서 사무관 이상 직급에서 사법처리된 사건이 없었던 것도 전무후무한 일로 꼽힌다. 심지어 직원을 조사할 일이 있으면 검찰총장이 추 청장에게 전화로 양해를 구했을 정도로 타 기관들의 국세청에 대한 신뢰가 두터웠고 호의적이었다. 세정가 인사들은 추경석 국세청장 때가 국세청이 모든 면에서 가장 안정적이었으며, 위상도 높았다고 입을 모은다.
특히 간부급은 물론 직원들의 ‘인사 공정’을 지향한 점도 귀감으로 꼽힌다. 절벽 같았던 서울국세청장과 본청 총무과장, 서울청·중부청 조사국장 등 요직에 호남인을 임명하는 등 이른바 ‘탕평인사’를 실질적으로 실천해 주위를 놀라게 했다.
또 공직 퇴임 후에도 자기관리에 철저했다. 그 흔한 로펌행도 택하지 않았다. 다만 국가보훈가족을 남몰래 돕는 일(국가보훈처 자료)에 정성을 쏟았다. 친목단체 형식으로 명맥만 유지돼 오던 국세동우회(회장 3회 추대역임. 2004.11.5∼2010.12.31)를 회장 역임때 사단법인으로 출범시켜 전·현직 국세청 직원들의 위상 제고를 견인했다.
그는 특히 이명박 정부 출범 직후인 2008년 3월 조직과 기능 축소를 주내용으로 하는, 즉 ‘국세청 무력화’를 담은 ‘국세청 조직 개편’이 시행되기 직전, 국세인들의 중지를 한데 모아 ‘국세청 힘을 빼서는 안된다’는 구구절절 장문의 건의문을 대통령에게 넣어 국세청 조직 축소를 막았다. 이명박정부가 국세청 조직을 현행대로 유지키로 결심하는데 결정적인 참고자료를 제공한 것이다. <계속>
서채규 주간 <seo@taxtime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