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원 살인사건'의 범인으로 지목된 미국인 아더 존 패터슨(36)에 대한 재판에서 사건 당시 패터슨과 함께 있었던 한국계 미국인 에드워드 리(36)가 증인으로 법정에 서게 된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7부(부장판사 심규홍)는 22일 열린 패터슨에 대한 살인 혐의 2차 공판준비기일에서 "오는 11월4일 열리는 재판에서 리를 증인으로 부르겠다"고 밝혔다.
이날 옅은 하늘색 수의를 입고 법정에 모습을 드러낸 패터슨은 재판부의 쟁점 정리, 증거 채택 여부 등에 대한 설명을 듣던 중 "증인(리)은 무죄로 인정된 살인자인가"라고 직접 질문했다. 이에 재판부는 "리도 증인으로 신청돼 있다"며 "리가 이 사건 목격자라면 진술의 신빙성 여부가 관건이 된다"고 말했다.
재판부는 이어 "종전에는 리가 진범으로 기소가 됐었고, 패터슨의 목격 진술 신빙성이 인정됐다"며 "이번에는 거꾸로 패터슨이 진범으로 기소가 됐고, 리가 목격자가 됐다"고 말했다.
재판부는 그러면서 "리나 패터슨으로부터 진술을 전해들은 사람 모두 증인으로 소환해야 한다"며 "검찰은 이들의 소재를 파악하고 소환을 위한 노력을 서둘러 달라"고 요청했다.
이 사건 재판에서 검찰과 변호인 양측이 신청한 증인은 31명에 달한다. 신청된 증인들 중에는 리와 패터슨의 지인, 당시 부검의, 혈흔 형태 분석가, 도검 전문가 등이 포함돼 있다.
패터슨 측 변호인은 '이태원 살인사건' 발생 당시 수사를 담당했던 박재오 전 검사(57·사법연수원 22기, 현 변호사)를 증인으로 신청했다. 다만 재판부는 "추후 판단하도록 하겠다"며 채택 여부는 보류했다.
한편 이날 열린 2차 공판준비기일에서 검찰과 변호인 양측은 일사부재리 원칙, 공소시효 등을 두고 공방을 벌였다.
변호인은 "검찰은 법적 기본 요건을 갖추지 않은 채 패터슨을 기소했다"며 공소시효가 도과됐음을 주장했다. 이에 검찰은 "형사소송법 규정에 반(反)하는 근거없는 주장"이라고 반박했다.
검찰은 아울러 재판부에 당시 범행 현장을 재현한 검증 절차를 신청했다. 이에 대해 변호인은 "리도 함께 검증해야 된다"는 조건으로 동의했다.
패터슨은 이날 재판에서 "이번 사건이 종전 사건과 다르다는 주장이 이해가 안 된다"며 "이미 재판을 받은 사건인데도, 다른 사건이라는 것이 이해가 되지 않는다"며 재판부에 직접 질문하기도 했다.
이에 대해 재판부는 "어떤 한 사실에 대해 두 번 재판할 수 없는 것은 미국이나 한국 모두 마찬가지다"라면서도 "사실의 범위를 어떻게 볼 것인지에 대해 재판 쟁점으로 두고 심리하겠다"고 답했다.
패터슨은 또 "수감된 상태에서 아무런 치료를 받지 못해 상태가 악화됐다"며 "구치소에서는 진통제만 준다"며 허리 통증 등을 호소하기도 했다. 이에 재판부는 "관련 규정에 따라 치료 조치를 받을 수 있도록 하라"고 말했다.
패터슨은 아울러 "매우 오래된 사건을 다시 심리하게 되면서 저를 포함한 피해자 유족 모두 고통을 느낄 것이라 생각한다"며 "현명한 재판을 해주기를 진심으로 바란다"고 덧붙였다.
패터슨은 1997년 4월3일 오후 10시께 서울 이태원 소재 한 햄버거 가게 화장실에서 한국계 미국인 리와 함께 대학생 조모(당시 22세)씨를 흉기로 수차례 찔러 숨지게 한 혐의로 기소됐다. 패터슨은 지난 8일 열린 첫 재판에서 "범인은 에드워드 리"라며 혐의를 부인한 바 있다.
이 사건 쟁점은 사건 당시 함께 있었던 한국계 미국인 리가 범인이라는 패터슨의 주장이 인정되는지, 검찰이 재판부에 제시한 증거가 받아들여지는지, 일사부재리 원칙이 인정되는지 여부 등이다.
검찰은 지난 2011년 '이태원 살인사건' 수사 및 기소를 맡았던 박철완 부장검사(43·27기)를 공소유지를 맡은 서울중앙지검 형사3부(부장검사 이철희)와 함께 재판에 투입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