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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독하기 2025.06.20. (금)

내국세

[연재]밥퍼 20년, 착한 세금쟁이들과 봉사

-'나는 평생 세금쟁이'- (77)

밥퍼 나눔운동 본부장되다

 

 

 

어느 날 최일도 목사가 무겁게 가라앉은 목소리로 전화를 걸어왔다.

 

“조 과장님! 시간 되시면 저를 좀 만나주실 수 있겠습니까?

 

평소와 다른 분위기에 압도된 나는 한걸음에 최 목사를 찾아갔다. 최 목사는 나를 보자마자 다짜고짜 손을 잡고 다일 무료 천사병원으로 들어가 어느 환자의 병실로 나를 안내했다. 병실 한쪽 구석 침대에는 오랜 투병생활로 몸이 수척해진 한 중년 여성이 누워 있었다.

 

“이 여인의 이름은 ‘하자’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라는 뜻이지요.”

 

나는 아무 말 없이 ‘하자’라는 여인을 쳐다보면서도 최 목사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이분은 출가한 비구니입니다. 어느 날 중병에 걸린 몸으로 저희 병원을 찾아왔습니다. 소속이 어딘지, 이름이 무엇인지 물었지만 아무것도 알려주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제가 직접 이 무료 천사병원에 입원을 시키고 새로운 이름을 지어 주었습니다.”

 

최 목사의 말이 이어지는 동안 ‘하자’라는 비구니는 적의에 가득 찬 눈으로 나를 노려보았다. 그러나 그녀의 독기어린 표정 이면에는 말 못할 두려움이 숨어 있는 것 같았다.

 

얼떨결에 나는 거죽만 남은 그녀의 손을 붙잡고 기도했다. 가련한 이 여인의 삶을 불쌍히 여겨 달라고….

 

그런데 이상하게도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났다. 또 흘러 내리는 눈물이 그녀가 누워 있는 침대 시트에 떨어졌다. 그때부터 그녀의 표정이 서서히 평온해지더니, 금세 울음이 가득한 얼굴로 변해가는 게 아닌가.

 

이제는 서로가 말하지 않아도, 마음과 마음의 언어가 전해지고 있었다. 내가 흘리는 눈물 앞에서 그녀는 진심으로 위로받는 듯한 포근한 감정을 느끼는 것 같아 보였다. 정말이지 하나님의 사랑이 아니면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잠시 후 병실을 나오면서 나는 지갑을 꺼내 손에 잡히는 대로 모두를 그녀의 손에 쥐어 주었다.

 

“하자님, 어서 병상에서 일어나 우리 함께 어려운 사람을 도와주는 일에 함께 할 수 있었으면 합니다. 기도할게요.”

 

말없는 그녀 역시 내 말에 화답이라도 하는 듯이 환한 표정을 지으면서 힘겹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로부터 며칠후 최 목사에게서 급하게 연락이 왔다. 왠지 좋지 않은 예감이 들어 휴대폰 받기가 망설여졌다. 그러나 계속 울리는 휴대폰 소리를 외면할 수 없어 받아 보았다.

 

“조 과장님, 그 비구니 자매가 끝내 병을 이기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습니다.”

 

“아….”

 

탄식 소리가 절로 새어 나왔다. 며칠전 병실 문을 나서는 나를 향해 환하게 웃던 그 여윈 얼굴이 떠오르자 안타까운 마음이 가슴 전체를 적셨다.

 

“그런데 마지막 순간에 과장님께서 그 비구니의 마음을 움직이셨습니다. 그녀는 과장님께서 그날 주시고 간 용돈 전부를 내놓으면서 어려운데 써달라고 하길래 병원 교회에 모두 드렸답니다. 그러면서 자기가 이 세상에 와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좋은 일 한번 하게 되었다고 좋아하더랍니다. 정말 기적 같은 일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조용근 이사장은 매달 한차례이상 밥퍼행사에 참여, 나눔을 실천하고 있다<2007.11.12 밥퍼봉사를 하고 있는 조용근 이사장>

그때 나는 느꼈다. 그녀를 감동시키고, 그녀의 마음을 움직인 건 내가 준 용돈이 아니고 진심으로 불쌍히 여기고 위로하면서 흘린 내 눈물에 대한 화답이라는 것을…. 그런데 정작 한 영혼을 온 천하보다 귀하게 여기고 사랑한다면 눈물쯤이야 당연한 것 아닐까?

 

그때 그 일을 계기로 나는 다일복지재단과는 뗄래야 뗄 수 없는 관계를 맺게 되었다. 10년 가까이 지난 2007년부터는 ‘밥퍼명예본부장’이라는 소중한 직책까지 맡아 100% 자원봉사하는 마음으로 지금까지 정성껏 섬겨주고 있다. 얼마나 감사한지 모르겠다.

 

그러면서 그동안 이런저런 인연으로 친형제같이 지내는 사랑하는 국세청 후배들과 한국세무사회 회원들과 직원들, 심지어 세무법인 석성 직원들까지 함께 매월 한차례씩 정기적으로 ‘밥퍼나눔운동’에 직접 참여해 왔었다.

 

그런데 ‘밥퍼나눔운동본부’ 주위에서 보면 흔히들 내노라 하는 사람들은 그저 이름만 걸쳐 놓고 1년에 한번쯤 얼굴 비치는 정도인데 외람되게도 나는 매달 한차례 이상씩 현장으로 달려가서 직접 반찬을 만들어 주기도 하고 밥도 퍼주고 있다. 그 때마다 나는 외친다. 누가 우리 세금쟁이들에게 자기밖에 모르는 철면피들이라고 손가락질하는가? 

 

 

 

<계속>-매주 水·金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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