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은행이 부실·방만 경영으로 벼랑 끝에 내몰렸다가 정책자금으로 정상화된 기업에 대해 적정 수준의 '보상'을 하도록 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혈세 투입으로 회사가 살아났는데도 나중에 그 이익은 고수란히 대주주에 돌아가는 도덕 불감증 행태를 바로잡기 위한 조치로 풀이된다.
19일 금융권에 따르면 산은이 저리로 지원받은 자금에 대해 정상화 이후 이자를 추가로 받아 내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이와 함께 해당 회사가 발행하는 신주인수권부사채(BW)나 전환사채(CB)에 대해 우선 매수권을 확보하는 방안도 고려하고 있다.
산은 고위 관계자는 "산은이 정책금융기관이지만 정부지원을 받는 데 한계가 있는 만큼, 자체 수익원을 발굴해야 혈세 부담을 줄일 수 있다"며 "투입된 자금 회수를 위해 정상화된 기업이 CB나 BW를 발행하게 될 경우 산은이 우선권을 받는 방안을 논의 중"이라고 말했다.
CB나 BW의 경우 해당 회사의 주식으로 전환하거나, 신주를 사들일 수 있어 회사가 정상화할 경우 산업은행으로서는 상당한 이익을 회수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와 함께 해당기업이 어려웠을 때 특혜 금리를 받은 부분을 정상 금리로 환산, 순차적으로 갚도록 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
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 등 정책금융기관은 설립근거법에 따라 이익적립금으로 손실을 보전할 수 없을 때 정부에서 세금으로 부족액을 지원해 주도록 하고 있다.
산은 관계자는 "국민의 세금이 쓰인 만큼 돌려받는 것이 당연한 것이며, 정부도 세수부족에 시달리는 상황이기 때문에 유예된 채무에 대한 이자는 받아 내는 쪽이 맞다"며 "회사 돈이 쓰였다고 하면 기업의 오너는 무슨 일이 있어도 받아내려고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문제는 밀린 이자와 함께 CB나 BW 등의 형태로 자금 회수 조건을 걸고 구조조정 대상 기업을 매각할 경우 인수자가 나타나지 않을 가능성이 있다는 점이다.
때문에 산은은 모든 회생 회사를 상대로 이 방안을 추진하지 않고, 회사를 위기로 몰고 간 오너나 경영진이 회사를 다시 인수할 경우 이 방안 적용을 고려하고 있다.
산은 관계자는 "제3자가 인수할 때 '혜택을 받은 만큼의 이자를 내야 한다'는 조건이 들어갈 경우 인수 작업이 원활하게 진행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며 "도입되기까지 시간이 필요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재계의 반발도 만만치 않다.
재계 관계자는 "만일 이런 조치를 시행한다면 정책금융의 역할과 책임에 어울리지 않는 것"이라며 "회사가 정상화 되자마자 자금 환수에 나설 경우 다시 위기에 빠질 것"이라고 지적했다.
건설사 관계자는 "기업이 위기에 처했을 때 모두 받아낼 생각으로 자금을 지원하는 것은 상업은행이 할 일"이라며 "정책금융은 이에 맞는 역할이 있기 때문에 존재하는 것이 아닌가"라고 반문했다.
유통업계 관계자도 "너무 정상화에만 초점을 맞춰 실패했을 경우에 대한 책임은 피해 가려는 듯한 인상"이라며 "기껏 정상화 된 회사가 밀렸던 이자 내느라 다시 위기를 겪을 수 있을 것"이라고 우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