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후 또다시 날 찾아온 그들에게 “자네들의 뜻이 진정 그렇다면 임기 2년에 연연하지 않고 무보수 자원봉사를 전제조건으로 한번 출마해 보겠네. 그렇게 해야만 3선 출마에 대한 명분이 설 것 같네”라고 했다.
그런데도 당장 1만1천여명의 유권자 회원들을 현실적으로 어떻게 설득시킬 것인가?
아마도 나의 이런 진심을 모르는 대다수의 회원들은 내가 노욕(老慾)을 부린다고까지 비아냥될 것이다. 그래도 이제는 선전포고(?)까지 해버렸으니 어쩔 수가 없었다.
출마를 공식선언하고 나서도 나는 계속 안절부절했다. 어떤 때는 하루에도 몇번씩이나 출마를 번복하고 싶었다. 무엇보다 몇년간이나 세무사회와는 인연을 끊고 살아 왔는데 또다시 전혀 마음에도 없던 3선에 도전한다는 것은 내 자신 스스로 생각해 봐도 쉽게 설득이 되지 않을 정도니….
그런데도 막상 세무사회 돌아가는 꼴을 보니 차마 내 뜻을 되돌릴 수가 없었다. 현(現) 회장과 집행부 임원들은 관세청장을 그만둔 후보를 1년전부터 온갖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목숨을 내놓을 정도로 지원해 주고 있으니…. 한마디로 그들은 그 후보를 당선시키는 게 지상 목표였던 것 같아 보였다.
무엇보다 국세청 업무와 99% 직접적인 연관이 있는 세무사회장을 관세청장 출신에게 주는 것은 절대로 막아야 한다는 일념이 내 마음속에서 계속 용솟음쳤다. 특히 세무사회장을 '관세인'에게 줄 수 없다는 뜻 있는 세무사들의 강권을 외면할 수는 더더욱 없었다. 모든 정황으로 봤을때 비록 승산은 없지만 세무사의 자존심이 걸린 문제인데 국세청과 정통세무사들의 기개는 보여 줘야 되지 않겠냐는 지인들의 고언은 나를 더 이상 망설이지 않게했다. 만약 국세청 출신이나 기존 정통세무사계인사로서 '유력한 대항마'가 있었다면 나는 맹세컨대 절대 출마하지 않았을 것이다.
어쨌거나 최고의 악조건 속에서도 필자는 약 한달간의 그 황당한 선거전에서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 보았다. 그러나 한마디로 ‘계란으로 바위를 치는 격’이었다.
지금도 그런 생각이지만 그 때 필자는 내 생전에 가장 황당한 선거를 경험해 보았다. 나중에 안 사실이었지만 그 선거기간 중에도 당사자인 나도 모르게 선거 관리 규정들을 자기들 유리한데로 바꾸기도 하고 자기 캠프에서 저지른 큰 비리는 괜찮고, 우리 캠프에서 일어난 사소한 문제는 절대 용납이 안되는 정말 불공정한 선거였다는 것을….
심지어 이런 일도 있었다. 6일간에 걸친 전국순회 투표를 모두 마친 상태에서 느닷없이 ‘후보자 자격 박탈’이라는 해괴망측한 결정 통지를 받기도 했다.
필자가 알기로는 일반 선거에서는 ‘후보자 자격 박탈’이란 말은 후보자 등록과정에서 일어나는 문제로 일단 후보자로 등록이 돼 투표까지 모두 마쳤으면 개표를 한 후에 ‘후보자 자격 박탈’이 아니라 ‘당선자 무효처분’을 내려야 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런데도 필자의 경우에는 6일간의 전국순회투표 마지막 지역인 대전에서 투표를 모두 끝내고 집으로 돌아와 잠을 자고 있는데 그날 밤 자정(子正) 1분 전(前)인 밤 11시59분에 세무사회 선거관리위원회로부터 “조용근 후보는 회장 후보자 자격이 박탈되었음을 알려드립니다”라는 휴대폰 문자 메세지를 받은 것이다.
그리고 그 이튿날인 토요일에 아무도 출근하지 않은 필자의 선거캠프 사무실 입구에 왠 봉투 하나를 던져놓고 가버린 것이다. 나중에 그 봉투를 뜯어 봤더니 역시 ‘회장후보자격 박탈결정 통지’와 함께 ‘2일’ 이내에 이의신청을 할 수 있다는 내용까지 같이 언급돼 있었다. 그 이틀이란 필자가 아무런 조치를 취할 수 없는 토요일과 일요일까지였다. 정말 상식적으로 이해가 되지 않는 짓거리였다.
너무나 황당해서 전문 법조인들에게 물어 봤더니 이런 경우는 우리나라를 막론하고 세계에서 처음 있는 사건이라는 것이란다.
필자가 지금 이 순간 본 지면을 빌어 이런 사실을 공개적으로 거론하는 것은 다시는 우리 세무사업계에서 이런 비열한 일이 일어나서는 안되겠다는 것과 또 이를 반면 교사로 삼았으면 하는 바램 때문이다.
비록 필자는 그 선거에서 회장으로 당선은 되지 않았지만 당시 필자의 마음은 한없이 서글펐다. 우리 세무사회 수준이 왜 이것밖에 안되는지….
그 때 만약 내가 1등을 했다 하더라도 나는 이미 회장 후보로 자격이 박탈된 상태였기 때문에 갖은 소송과 갈등으로 이어지게 되는 것은 불 보듯 뻔했을 것이다. 그렇게 되면 오랜 소송과정을 지켜보면서 많은 사람들이 나도 그들과 똑같은 사람으로 취급했을 것이라고 생각하니 정말 천만다행이었다. 비록 30%에 가까운 득표로 2등을 했지만 나는 내 할 일은 다 했다고 생각하고 선거가 끝난 뒤에도 두발 뻗고 편히 잠을 잘 수가 있었다.
무엇보다 필자가 그렇게 무리하게 3선 출마하게 된 명분을 100% 살렸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필자의 갑작스런 출마선언이 있자마자 얼마 후 현(現) 회장이 다시는 세무사회장에 나서지 않겠다고 모든 회원들 앞에 공언(公言)을 했으며, 여기에다 임기 4년짜리인 ‘세무사 공익재단 이사장’ 자리도 후임 회장에게 내놓겠다고까지 선언했으니 말이다.
그러면서 또다른 한편으로는 그때 정말 그 어려운 가운데서도 필자의 순수한 마음을 알고 뜨겁게 지지해 준 다수의 뜻있는 유권자 회원들에게 다시 한번 이 자리를 빌어 진정 어린 고마운 마음을 전하고 싶다.
“진심으로 고맙습니다. 장한 그대들이여!”
<계속>-매주 水·金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