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검색

구독하기 2025.06.20. (금)

기타

'아들 여친 살해사건' 경찰 "홀린 것처럼 착각"…'늑장 대처' 논란

평소 교제를 반대해 온 아들의 여자친구를 흉기로 찔러 숨지게 한 60대 여성이 경찰에 붙잡혔다.

경찰은 신고를 받고도 마치 무엇에 홀린 것처럼 다른 사건과 이 사건을 착각, 신고 접수 이후 30분이 지나서야 현장에 도착했다.

신고자와 신고자 연락처, 신고 내용 등이 다른데도 단순히 두 사건이 발생한 지점이 가깝다는 이유로 '동일 사건'이라는 섣부른 결론을 내린 것이다.

경찰의 '늑장 대처'와 '초동 대응 부실' 논란이 거세게 일 것으로 예상된다.

서울 용산경찰서는 아들의 여자친구를 흉기로 찔러 살해한 혐의로 박모(64·여)씨를 검거해 조사 중이라고 13일 밝혔다.

경찰에 따르면 박씨는 전날(12일) 오후 9시42분께 서울 용산구 자신의 집 앞에서 아들 이모(34)씨의 여자친구 이모(34·여)씨의 가슴 부분을 한 차례 흉기로 찔러 숨지게 한 혐의를 받고 있다.

숨진 이씨는 박씨의 아들과 5년 정도 교제했으며 박씨는 두 사람의 교제를 반대했던 것으로 조사됐다.

사건 당일에도 박씨는 숨진 이씨와 전화통화를 하면서 말다툼을 하던 중 화를 참지 못하고 집에 있던 흉기를 미리 준비한 뒤 범행을 저질렀다고 경찰은 전했다.

박씨는 경찰 조사에서 "(숨진)이씨가 손가방을 얼굴에 던져 화가 났다"며 "겁을 주려고 했을 뿐 살해하려는 의도는 없었다"는 취지로 진술한 것으로 전해졌다.

한편 경찰은 박씨 아들의 최초 신고를 받고도 30분 뒤에야 현장에 도착한 것으로 드러났다.

경찰에 따르면 박씨 아들은 12일 오후 9시12분께 112신고를 통해 "어머니가 여자친구와 전화로 다툰 뒤 집으로 찾아오는 여자친구를 칼을 가지고 기다리고 있다"고 신고했다.

신고를 접수한 서울경찰청 112 상황실은 곧바로 이 내용을 용산경찰서와 한남파출소에 전달했다.

하지만 사건 현장을 관할하는 한남파출소 현장 근무자들은 순찰차 내비게이션에 뜨는 신고 내용을 자세히 확인하지 않고 9시2분께 발생한 별도의 가정 폭력 신고 사건과 이 사건을 같은 사건으로 취급했다. 두 사건의 발생 지점 주소가 비슷하다는 이유에서다.

박씨의 아들은 최초 신고 이후에도 경찰이 나타나지 않자 오후 9시27분께 다시 한 번 112신고를 통해 현장 출동을 독촉했다.

그런데도 현장 인근에 있던 순찰차 2대는 모두 가정 폭력 신고 사건에만 매달렸다. 심지어 순찰차 1대(순42호 차량)는 가정 폭력 사건 현장으로 다시 돌아가기도 했다. 다른 순찰차(순43호 차량) 역시 또 다른 택시요금 시비 사건을 접수받아 그 사건을 처리 중이었다.

용산경찰서 지령실은 오후 9시13분과 오후 9시29분 두 차례에 걸쳐 현장 순찰차와 한남파출소에 "가정 폭력 신고 사건과 다른 사건으로 추정되니 확인할 것"을 지시했으나 현장 순찰 인력과 한남파출소 근무자들은 이를 제대로 확인하지 않았다.

이후 가정 폭력 신고 사건을 처리했던 순42호 순찰차 근무자는 오후 9시37분에야 내비게이션을 뒤늦게 확인, 또 다른 사건이 접수됐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인지한 뒤 현장으로 출발했다. 그마저도 차량 정체 등으로 도착하지 못했다.

순43호 순찰차가 오후 9시42분에 현장에 도착했지만 이씨는 이미 박씨의 흉기에 찔린 뒤였다. 박씨 아들의 최초 신고 이후 30분 만에야 경찰이 현장에 도착한 것으로, 살인 사건을 막을 수 있었던 시간을 날려버린 셈이다.

결국 이씨는 신고 접수 이후 43분이 지난 오후 9시55분께 병원에 도착했지만, 오후 10시25분 치료를 받던 중 숨을 거뒀다.

이에 대해 이충호 용산경찰서장은 "현장 근무자들이 마치 무엇에 홀린 것처럼 두 사건을 동일한 사건으로 오인한 부분에 대해 안타깝게 생각하고 유명을 달리한 피해자의 명복을 빈다"며 "초동 신고 접수 단계부터 현장 도착 단계까지의 잘못된 부분에 대해 당시 무전 내용의 녹취록을 바탕으로 철저하게 조사하겠다"고 해명했다.

이 서장은 "신고 접수부터 시간대별로 상황을 재연하고 다시 구성해서 왜 그런 판단을 내렸고 그런 식으로 조치가 됐는지 밝히겠다"며 "책임져야 할 사람들이 누군지 등에 대해서는 상급청에서 조사를 할 수도 있고 용산서 차원에서 감찰 조사를 할 수도 있다"고 덧붙였다.

한편 경찰은 박씨에 대해서는 살인 혐의로 구속영장을 신청할 방침이다. 박씨는 평소 우울증이 심해 정신병 약을 복용해 온 것으로 조사됐다.




배너



배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