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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독하기 2025.06.22.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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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 부르는 '데이트폭력'…사회 문제 대두

연인에게 폭력을 행사하는 ‘데이트 폭력’이 사회 문제로 떠오르고 있다. 연인 관계에 있는 사람으로부터 신체, 정신, 언어 폭행을 당한 피해자는 연간 7000명에 달하고, 이 중 목숨을 잃는 사람도 50명이 넘고 있다. 데이트폭력은 남녀 교제 과정, 이별 과정에서 발생하는 육체적, 언어적, 정신적 폭력을 말한다.

일각에서는 가해자 처벌이 쉽지 않고 피해자를 보호할 만한 제도적 장치가 미흡한 만큼 실효성 있는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5년간 3만여 명, 데이트폭력 시달려

경찰청에 따르면 지난 6월 기준으로 최근 5년간 애인 관계에 있는 사람으로부터 육체적, 언어적, 정신적 폭행을 당한 사람은 3만6362명으로 집계됐다. 이중 폭행치사 등으로 목숨을 잃은 사람도 290명에 달했다.

특히 애인에게 강제추행이나 성폭행을 당하는 경우는 2010년 371명, 2011년 388명, 2012년 407명, 2013년 533명 2014년 678명으로 5년 새 2배 가까이 증가했다.

실제 데이트 폭력 피해자 수는 경찰 통계보다 훨씬 더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상대의 가해 행위가 명확할 경우 그나마 현행법으로 처벌할 수 있지만 정신적 피해에 대해서는 명확한 증거가 없거나 보복이 두려워 신고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지난해 12월 대구에서 한 남성이 전 여자친구를 수시로 찾아가 "다시 만나주지 않으면 불을 지르겠다"며 행패를 부렸다. 6차례에 걸친 신고로 현장에 출동한 경찰관이 남성을 파출소로 임의동행하고 설득 등을 통해 위험상황을 일시 해소했으나 며칠 뒤 남성은 또다시 여성을 찾아가 흉기로 살해했다.

또 30대 여성 정모씨는 1년 넘게 남자친구에게 욕설과 인신공격성 발언 등 심각한 언어폭력을 겪어 현재 우울증과 정신분열에 시달리고 있다.

이처럼 데이트 폭력으로 인한 피해는 갈수록 늘고 있지만 이를 막을 제도적 장치는 미흡한 실정이다.

성폭력이나 가정폭력의 경우 성폭력방지특별법과 가정폭력방지법으로 각각 제재할 수 있는 장치가 있지만 데이트폭력을 담당하고 있는 수사기관과 처벌 조항이 별도로 없어 통상적인 폭력 범죄로 분류하고 있다.

이마저도 신체적인 폭력, 성폭력 등 물리적 폭력이 있을 경우에만 처벌이 가능할 뿐 협박이나 정신적 폭력의 경우 사실 입증이 어려워 처벌이 쉽지 않은 상황이다.

지속적인 괴롭힘(스토킹)의 경우 2010년 '경범죄처벌법' 시행령이 개정돼 처벌 근거가 만들어졌지만, 실제 처벌된 경우는 2년간 503명에 불과하다. 1인당 범칙금도 8만원밖에 되지 않는다. 사실상 범죄 억제효과가 미미하다는 얘기다.

경찰 관계자는 "연인 간 폭력은 처벌 조항이 따로 없어 폭력 범죄와 동일한 수준에서 (처벌이) 이뤄지고 있다"면서 "욕설, 협박 등 정신적 폭력을 당한 피해자는 녹취하거나 메시지 등 객관적 증거를 수집해야 법적인 보호를 받을 수 있다"고 밝혔다.

◇경찰, 직무집행법 개정 추진…대안 될까?

경찰은 현장에서 경찰 판단으로 신체 자유를 제한할 수 있는 내용으로 '경찰관 직무집행법(경직법)' 개정을 추진하고 있다. 경찰은 가정폭력, 데이트폭력 등 관계 내 폭력에 소극적인 모습을 보일 수밖에 없는 현행 법제도 문제 개선을 이유로 내세우고 있다.

지난달 26일 서울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경직법 개정안' 토론회에서 이동환 경찰청 생활안전과장(총경)은 "경직법 개정안은 범죄 이전단계에서 약자에 대한 실효적 보호수단을 확보하고, 가해 우려자 입장에서도 평생 씻지 못할 과오를 범하는 것을 사전에 막을 수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경직법 개정안에 대해 '경찰의 자의적 공권력 남용에 대한 우려'와 '인권침해' 등을 우려하는 시각도 있다.

참여연대 박주민 변호사는 "경찰의 포괄적이고 추상적인 권한과 업무방식을 규율하는 경찰관 직무집행법을 개정한다면 권한의 남용과 자의적 사용이 우려된다"며 "관계 내 폭력을 예방하려면 기존의 개별법을 손봐서 특정 범죄에 대한 대응을 합리적이고 효율적으로 할 수 있도록 하거나 개별 입법을 통해야 한다"며 지적했다.

이와 달리 외국에서는 데이트 폭력 피해자를 위한 각종 보호장치를 마련하는 등 범죄 방지에 주력, 우리나라와 대조적인 모습을 보인다.

영국은 지난해 3월 전 남자친구에게 살해당한 피해자 이름을 따 데이트 상대의 전과를 조회할 수 있는 '클레어법'을 시행하고 있다. 또 미국은 1994년부터 여성폭력방지법에 데이트 폭력을 포함해 가해자를 '의무 체포'한 뒤 피해자와 격리하는 방법을 쓰도록 하고, 매년 2월 '데이트 폭력 근절의 달'로 지정하는 등 데이트 폭력을 줄이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는 "피해자는 가해자와 정서적으로 가까운 관계인 만큼 폭력이라고 인지하기 쉽지 않다"며 "비슷한 행위가 지속해서 반복되면 이는 사랑이 아닌 범죄라는 사실을 깨닫고 주변에 도움을 요청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변신원 한국양성평등교육진흥원 교수는 "여전히 데이트폭력 피해자에게 문제가 있다는 부정적인 인식이 강해 피해자가 침묵하는 경우가 많다"면서 "데이트폭력은 명백한 범죄이고, 가해자는 처벌받아 마땅하다는 올바른 인식을 갖는 사회적 문화가 조성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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