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는 어느 때보다 달콤했고, 중국에는 어느 때보다 쓰라린 한 판이었다. 슈틸리케호가 여러 악재들을 넘고 중국에 '공한증'의 악몽을 선사했다.
울리 슈틸리케(61독일) 감독이 이끈 한국 축구대표팀은 2일 오후 10시(한국시간) 중국 우한 스포츠센터에서 열린 동아시아축구연맹(EAFF) 동아시안컵 중국와의 경기에서 2-0 승리를 거뒀다.
중국만 만나면 없던 힘도 발휘하던 한국이었지만 이번만큼은 쉽지 않은 승부가 예상됐다.
일단 선수단 구성의 차이가 컸다. 동아시안컵이 국제축구연맹(FIFA)의 주관 대회가 아닌 탓에 대표팀 주축들인 유럽파를 불러 모으지 못한 한국과는 달리 핵심 멤버 대다수가 자국리그에서 뛰는 중국은 전원 구미에 맞는 선수들로 팀을 꾸릴 수 있었다.
슈틸리케 감독은 베테랑들을 모두 배제한 채 가능성을 갖춘 신예들로 선수단을 채웠다. 23명 중 7명이나 A매치 경험이 전무했다. 반면 중국은 35세의 정쯔(광저우 에버그란데)까지 불러들이면서 트로피에 대한 강한 의지를 보였다.
그라운드 밖 분위기도 중국의 편이었다. 경기가 열린 우한은 오후 10시가 넘어서까지 무더위가 지속됐다. 홈팀 중국 선수들은 그나마 익숙했지만 한국 선수들 대다수는 처음 경험하는 더위였다. 열정적이기로 유명한 중국팬들의 응원도 한국 선수들에게는 부담스러운 존재였다.
하지만 소소한 조건들로는 수십 년간 지속된 '공한증'을 무너뜨릴 수 없었다. 태극전사들은 "한 발 더 뛰면서 상대를 제압하겠다"는 출사표대로 부지런히 그라운드를 누볐다. 전반 초반부터 계속된 한국의 전방 압박에 중국은 수차례 패스 실수를 범하면서 완전히 페이스를 잃었다.
내용에서 우위를 점해도 득점이 나지 않는다면 이길 수 없는 것이 축구다. 이날 A매치 데뷔전을 치른 신예들이 마침표를 찍었다.
김승대(24·포항)는 전반 45분 이재성(23·전북)의 패스를 받아 감각적인 오른발 슛으로 골망을 흔들었다. 후반 12분에는 이재성-김승대-이종호(23전남)로 이어지는 삼각편대가 추가골을 합작했다.
김승대와 이종호는 A매치 데뷔전에서 골맛을 보는 기쁨을 누렸다. 두 선수는 데뷔전에서 골을 터뜨린 29, 30번째 태극전사가 됐다.
신예들의 활약 속에 한국은 중국에 강한 면모를 이어갈 수 있게 됐다. 1978년 12월 방콕아시안게임 1-0 승리를 시작으로 5년 전 동아시안컵에서 0-3으로 패하기 전까지 한국은 30년 가량 한 번도 지지 않았다.
중국은 자신들의 안방에서 반전을 꾀했지만 오히려 더 큰 충격을 받게 됐다. 한국은 역대 전적 17승12무1패의 압도적인 우위를 유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