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가 10여명의 순진한 세금쟁이들과 함께 마태모임 문을 처음으로 열 때쯤인 2003년 3월말경, 손영래 국세청장이 물러나고 후임으로 세제전문가인 이용섭 관세청장이 신임 국세청장으로 영전해 오셨다.
성실한 납세자는 우대하되, 탈세자는 엄정하게 다스리겠다는 반듯한 세정을 유난히도 강조하셨던 정말 반듯한 리더십을 갖춘 공직자였다.
취임후 특별히 필자를 불러 현직 공보관은 아니지만 언론 업무를 뒤에서 계속 챙겨 달라는 것과 국세청 조직을 위해 대외 업무에도 관심을 가져 달라고 당부의 말을 전하셨다.
그래서 필자는 내부업무는 주로 과장들에게 맡기고 외부활동에 치중했다. 또 휴일에는 나눔의 헌신자 부부들과 함께 불우한 이웃을 나누고 섬기는 일에 열심히 했었다. 이런 일들에 빠져 나름대로 삶을 즐기다 보니 세월이 흘러 어느덧 새로운 한해를 맞이하게 되었다.
아마도 새로운 그 2004년은 필자에게 참으로 중요한 한해였다. 내 삶의 전반전과 후반전이 갈라지는 정말 의미있는 한해였다.
그해 여름에는 2년 임기였던 개방직 서울청 납세지원국장 자리를 마감하고 다른 자리로 옮겨야 했다. 그때쯤 필자는 세금쟁이로서 현직을 어떻게 잘 마무리할 것인가와 새롭게 개척해 나갈 후반전의 삶을 어떻게 열어갈 것인가가 가장 큰 고민거리였다.
지금 이 시간을 빌어 후배 여러분께 그 때 필자가 가졌던 헛된 욕심(?) 하나를 고백해 볼까 한다.
그 해 2월경 갑자기 필자의 고향(진주)를 관할하는 부산지방국세청장 자리가 비게 되었다. 그래서 필자는 마지막을 그 연고지에서 끝냈으면 하는 바람으로 요로(要路)를 통해 알아보니 지역 연고자는 필자 밖에 없으니 가능하다는 것이었다. 어떻게 작전을 세워 볼까 궁리만 거듭하며 우물쭈물하고 있는 동안 연고가 없는 어떤 서울청 국장이 내정돼 있다는 소식을 접했다. 그때 필자는 적극적으로 나서지도 않았지만 한편으로는 다소 서운한 생각도 들었다.
그런데 지금 생각해 보니 오히려 그때 물결치는 대로 내 운명을 맡겨본 것이 더 잘된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한때나마 잠시 서운한 감정도 들었지만 필자는 곧 잊어버리고 평소에 하던 일을 계속 하다 보니 또 몇개월이 흘러 한여름이 되었는데 드디어 국세청 고위직 정기 인사 때가 온 것이다.
필자도 2년의 임기를 마칠 때가 되다 보니 이제 현직생활의 마지막을 잘 선택해야겠다고 생각하고 당당하게 요로를 통해 대구지방국세청장 자리를 희망해 보았다. 왜냐하면 어릴 때 진주에서 이곳으로 이사와서 초‧중‧고등학교를 거쳤으니 마지막으로 금의환향을 하게 되면 얼마나 좋을까 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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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근 이사장이 2004년7월26일 이용섭 국세청장에게 대전지방국세청장 임명장을 수여받고 있다. |
그렇게 깊이 고민을 하고 있는 어느 날 수뇌부로부터 급한 전화가 왔다.
“조 국장님! 축하합니다. 대전지방국세청장으로 발령났습니다.”
전화를 받은 필자는 얼떨떨했다.
한편으로는 기쁘면서도 또 다른 한편으로는 ‘사실 내가 희망한 곳은 그 자리가 아니었는데…’ 하는 마음도 들었다,
그러면서 필자가 희망한 대구로 왜 안 되었는지 알아보니 당시 세종시 행정수도 건립 관계로 부동산 투기 바람이 불어오고 있어 이 문제를 다스릴 사람이 나밖에 없다는 것이었다. 또 세수 규모도 내가 희망하는 대구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였으며 특히 천안‧아산‧오송지역 등이 계속 개발되고 기업들도 수도권에서 속속 이 지역으로 옮겨 감에 따라 세원이 계속 늘어난다는 것이었다.
그런 이야기를 듣고 보니 비록 대전에는 전혀 연고가 없었지만 크게 감사했다. 무엇보다 나중에 깨달았지만 1년여전에 힘들게 내가 만든 마태모임은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한 나의 잘못된 생각에 크게 후회했다.
만약에 내가 원하는 대구쪽으로 발령받았다면 마태모임은 어떻게 됐을까? 아마도 곧바로 문을 닫았을 것이다. 그러나 대전은 KTX로 한 시간도 안 걸리는 위치에 있다 보니 모임 당일 저녁에는 서울시내에서 근무하고 있는 식구들과 같은 시간 내에 도착이 가능했다. 또 모임을 마치고 그 다음날 일찍이 정시 출근도 가능했다.
그 때 마태모임 식구들이 한결같이 고백하는 말이 있었다.
“큰 형님! 이것은 기적입니다. 아마도 우리 마태모임을 잘 이어가라는 하늘의 명령 아닐까요?”
그렇게 해서 필자는 현직 마지막 종착역에 도착해서 내 삶의 전반전을 잘 마무리하기 위한 작업들을 조용히 계획하고 있었다.
<계속>-매주 水·金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