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픔은 미국에서도…
-나의 주군(主君) 안정남 장관님!-
언론사 특별 세무조사가 한참 진행중이던 2001년 5월 어느 날 출입기자단 간사로부터 한가지 제안을 받았다. 매년 한차례씩 언론재단의 후원으로 출입기자들의 해외취재 기회가 있었는데 올해는 왜 없느냐며 빨리 언론재단과 상의해 보라는 것이었다.
태평로 프레스센터 건물에 있는 한국언론재단을 찾았다. 그리고 담당자와 상의한 결과 매년 몇개 부처를 정해 출입기자단에 해외취재 지원을 위해 얼마간의 재정을 지원해 준다는 것이었다.
문제는 국세청이나 경찰청과 같은 외청(外庁)에는 그 자금이 지원되지 않는다는 것이란다. 설사 되더라도 자금이 얼마 남지 않아 별 혜택이 없는 것이라는 이야기도 덧붙여 주었다.
그 때 필자는 지금 국세청에서는 언론사와의 전쟁아닌 전쟁을 치르고 있는 매우 어려운 상황에 있음을 설명드리고 우선 남아 있는 재원이라도 지원해 달라고 부탁했다.
그것이 어렵다면 감독관청인 문화체육부에 가서 설득을 하겠다고 했더니 꽤나 긍정적이었다.
그 때 마침 내 친구가 문화체육부 차관으로 재직하고 있었기에 곧바로 찾아가서 상의했다. 차관은 즉석에서 한국언론재단에 전화를 해 주었다. 그래서 10명 정도의 기자들이 일주일 동안 해외 취재하는데 소요되는 비용을 확보하게 되었다.
그런 내용들을 출입기자단 간사에게 알려 주었더니 꽤나 놀라워했다. 그러면서 자기들끼리 전체 회의를 열어 일주일 동안 미주지역의 세정현황과 주요 언론사를 취재하자는데 의견을 모았다.
언론사 특별 세무조사 결과가 발표되고 난 뒤라 매우 어수선한 분위기였음에도 8월 하순경 필자는 7〜8명의 기자들과 함께 먼저 2박3일간은 뉴욕에 있는 NBC 방송 등을 비롯해 주요 언론사를 견학했다. 다행히 당시 뉴욕은 9‧11 테러 사건이 일어나기 바로 직전 2주전이었으니 평온한 상태였다. 정말 다행이었다.
나중 2박3일간은 워싱턴 지역으로 가서 미국의 IRS(미국 국세청)의 세정 현황을 취재했다. 그리고 나머지 하루는 함께 간 출입기자들이 각자 자기 언론사에서 파견나간 워싱턴 특파원들과 자유롭게 하루를 보내도록 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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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군은 지난 2011.11.11 천안함 46용사 추모사업, 유가족 생활 지원, 생존 장병 사회복귀 지원, 해군 장병들을 위한 복지사업, 대국민 안보의식 고취 프로그램 진행 등에 대한 감사의 의미로 조용근 천안함재단 이사장을 명예해군으로 위촉했다.<사진은 명예해군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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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서 필자는 오랫동안 이 지역으로 이민와서 살고 있는 내 여동생 부부의 집에서 특별한 행사(?)를 준비하고 있었다.
그 해 봄 명동성당에서 결혼 예식을 가진 후 바로 미국으로 유학온 안정남 국세청장의 외아들 부부가 이곳 워싱턴 지역에서 어렵게 신혼생활을 하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이곳까지 온 김에 이들을 격려해 주고 싶었다. 물론 안정남 국세청장도 모르게 준비한 것이었다.
늦은 저녁에 워싱턴 시내에 있는 한국 식당에서 어렵게 만나 함께 식사를 했다. 그 때 필자는 그 신혼부부에게 불편한 것이 없느냐고 물었더니 갑자기 울먹이면서 미국에 온 지 몇달이 되었는데 외식(外食)은 처음이라고 했다.
나도 울컥했다. 그러면서 함께 한 내 여동생 내외를 소개해 주고 언제든지 필요한 일이 있으면 찾으라고 했다. 그리고 내가 가지고 있던 여비 중 일부를 꺼내 그들에게 건네 주었다. 또 함께 폴라로이드 즉석사진도 몇장 찍었다. 그리고 그들과 헤어졌다.
그렇게 해서 일주일간의 해외 출장을 마치고 귀국해서 월요일 아침 출근과 동시에 안정남 국세청장께 아들 부부의 사진과 함께 그들의 근황도 전해 드렸다.
그런데 그 다음날인 화요일 아침에 일찍 출근하신 안정남 청장께서 갑자기 나를 껴안으면서
“자네, 오늘부터 내 동생이네. 어제 자네가 건네준 사진들을 보고 우리 집사람이 얼마나 울었는지 모른다네. 또 미국에 있는 아들 내외도 자네와 헤어지고 난 후 얼마나 감동했는지 모른다네. 정말 고마웠네. 어렵게 마련한 이번 출장에 자네의 그런 깊은 뜻이 있었는지…. 자네 정말 대단하네.”
그 때 나는 말씀드렸다. 직속상관으로 모시고 있는 국세청장에 대한 최소한의 도리를 했을 뿐이라고…. 그로부터 일주일후 그 분께서는 갑자기 건설부장관으로 영전하게 되어 필자와 헤어졌다.
그동안 남들이야 그 분을 어떻게 생각하던 필자는 그 어려운 전쟁터에서 8개월간의 생사고락을 함께 한 주군(主君)으로 생각하면서 개인적으로는 의형제로 지낼려고 했는데 안타깝게도 2년전에 그만 우리 곁을 떠나셨다.
“나의 주군(主君) 되신 안정남 장관님! 정말 그립습니다!”
<계속>-매주 水·金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