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故)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의 '금고지기'인 한모(50) 전 경남기업 부사장이 수일간의 칩거 끝에 15일 모습을 드러냈다. 하지만 그는 끝내 성 전 회장의 사망과 이른바 '성완종 리스트'의 실체 등에 대해선 입을 굳게 닫았다.
한 전 부사장은 이날 오후 2시55분께 서울 성북구에 있는 자신의 아파트 현관에 모습을 드러냈다. 회색 정장에 뿔테 안경을 쓰고 깔끔한 차림으로 아내와 함께 집을 나서던 한 전 부사장은 1층 현관 앞에 대기하고 있던 취재진을 발견하자 서둘러 걸음을 재촉했다.
아파트 현관을 지나 지하주차장으로 내려가는 계단까지 30여m를 뛰다 시피 걷던 한 전 부사장은 '32억원의 용처를 아느냐'는 등의 질문에 눈길조차 주지 않고 걸었다. 입술을 꽉 깨문 탓에 입가에는 주름이 깊게 패였다.
한 전 부사장은 지하주차장으로 내려가는 계단에서도 질문이 계속되자 앞에 서 있던 취재진에게 손을 휘저으며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그의 아내 또한 "이러지 마세요"라며 취재진을 경계했다.
앞서 한 전 부사장의 다른 가족은 이날 오전 "(한 전 부사장이) 집에 없다"며 "며칠째 연락이 안된다"고 취재진에게 거짓말을 하기도 했다.
자신의 차량 앞에 도착한 한 부사장은 '검찰로 가는 거냐'는 취재진의 질문에도 답을 하지 않은 채 자신의 제네시스 차량에 올라 곧바로 시동을 걸고 주차장을 빠져나갔다. 현관을 나와 주차장을 빠져나가기까지 채 5분도 걸리지 않았다.
검찰에서 수차례 조사를 받은 한 전 부사장은 성 전 회장이 횡령한 250억원 중 32억원의 뭉칫돈에 대해선 출금자료를 일일히 뽑아 검찰에 건넨 장본인으로 알려져 있다. 그는 32억원 출금 자료를 검찰에 제출하면서 "현금 쓸 일이 있으니 가지고 오라고 해서 현장 전도금에서 마련해서 갖다 드렸다"고 진술한 것으로 전해진다.
다만, 한 전 부사장은 자신도 32억원의 사용처에 대해서는 모른다고 검찰에서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32억원은 지난 2007년 10월부터 2014년 10월까지 200여차례에 걸쳐 출금된 250억원 중 검찰이 사용처를 확인하지 못한 금액이다.
검찰 관계자는 "본인은 딱 그 정도 선에서만 처벌을 받겠다고 판단한 듯 보인다"며 "한 전 부사장 밑에서 일했던 직원의 경우 9500억원에 달하는 경남기업의 분식회계와 관련해서 분식회계 전후 자료를 뽑아서 검찰에 제출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결국 한 전 부사장은 검찰 수사 과정에서 성 전 회장과 오랜 관계를 청산한 듯 보인다. 성 전 회장도 검찰 조사 과정에서 "나는 32억원의 비자금이 어떻게 조성됐는지 모른다"며 한 전 부사장에게 책임을 돌린 것으로 알려졌다.
특별수사팀은 32억원이 '성완종 리스트'에 오른 친박계 핵심 인사 8명에게 흘러갔는지 여부를 밝히기 위해 수사를 진행 중이다. 리스트에 오른 이들이 받은 것으로 관측되는 금액만 해도 이미 16억원에 달한다.
한 전 부사장은 지난 1994년 11월부터 경남기업에서 상무로 일을 해왔으며 성 전 회장의 비자금 조성 등에 실질적으로 관여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