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용직 직원들 월급 줘야하니 3000만원 인출해주세요."
지난달 30일 오후 2시30분께 서울 노원구 공릉동 농협 태릉지점이었다. 이모(55)씨가 은행 직원 김수현(28·여) 주임에게 거액 인출을 요청했다.
10년차 은행원인 김 주임은 이씨의 입출금 내역을 살폈다. 일반적인 입출금 내역만 있는 통장에 3000만원이라는 거액이 찍혀있었다.
김 주임은 전화금융사기(보이스피싱)임을 직감했다. 김 주임은 평소 공사장 인부들에게 줄 월급을 찾으러 오는 고객들을 본 적이 있었다. 그들은 모두 이전 월급 출금 내역이 있었기에 이씨가 더 수상해보였다.
김 주임은 시간을 끌기 위해 질문을 던졌다. "거액을 인출하면 국세청 신고 대상인데 괜찮은가", "보이스피싱 관련해서 들어보셨나. 통장 빌려주면 본인도 처벌 받는다" 등의 말을 건넸다.
이씨는 "나는 직원들 임금을 꺼내려고 하는 것 뿐이니 보이스피싱과 관계 없다"며 계속해서 인출을 해달라고 다그쳤다.
김 주임은 이씨가 태연한 태도를 보이자 은행 모니터링 시스템에 이씨의 통장을 조회했다. 고액을 인출한 내역이 없는 고객이 고액 인출을 요구하면 자동지급정지가 되는 시스템이다. 조회를 하자 이씨의 통장 역시 지급정지가 됐다.
김 주임은 "고액 인출이라 확인할 게 있으니 조그만 기다려달라"고 말하고 사내 메신저로 팀장과 본사에 연락을 취했다. 본사에서는 이씨 통장으로 3000만원을 입금한 대구은행 측에 연락을 취해 보이스피싱 피해자를 찾아냈다. 김 주임의 팀장은 112에 신고를 했다.
이씨가 인출을 요구한 지 30여분만에 김 주임과 동료들의 기지로 이씨는 현장에서 경찰에 체포됐다.
서울 노원경찰서는 김 주임에게 보이스피싱을 예방한 공로로 감사장과 신고 포상금 30만원을 전달했다고 7일 밝혔다.
김 주임은 "항상 보이스피싱 관련해서 얘기만 듣고 교육을 받았지만 실제 상황에 닥치니 긴장도 되고 놀라기도 했다"며 "그래도 이번 기회에 많이 배웠고 실제 피해도 예방돼 뿌듯하다. 신고 포상금으로 회식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경찰은 보이스피싱 인출책 이씨를 사기방조 혐의로 불구속 입건했다.
김씨는 경찰 조사에서 "대출을 받기 위해서 한 것"이라며 "대출업자가 금융거래 실적을 만들기 위해 3000만원을 넣었으니 인출해서 가져다주면 3000만원 중 1000만원을 준다고 했다"고 진술했다.
김준철 노원경찰서장은 "금융기관의 적극적인 대처로 주민의 소중한 재산을 지킬 수 있었다"며 "농협 태릉지점의 범죄 예방 사례를 널리 알리고 금융기관과의 협업을 통해 관내에서 보이스피싱 피해가 더 이상 발생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