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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독하기 2025.06.21.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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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만 기다려달라" 보이스피싱 직감하고 인출책 잡은 은행원

"일용직 직원들 월급 줘야하니 3000만원 인출해주세요."

지난달 30일 오후 2시30분께 서울 노원구 공릉동 농협 태릉지점이었다. 이모(55)씨가 은행 직원 김수현(28·여) 주임에게 거액 인출을 요청했다.

10년차 은행원인 김 주임은 이씨의 입출금 내역을 살폈다. 일반적인 입출금 내역만 있는 통장에 3000만원이라는 거액이 찍혀있었다.

김 주임은 전화금융사기(보이스피싱)임을 직감했다. 김 주임은 평소 공사장 인부들에게 줄 월급을 찾으러 오는 고객들을 본 적이 있었다. 그들은 모두 이전 월급 출금 내역이 있었기에 이씨가 더 수상해보였다.

김 주임은 시간을 끌기 위해 질문을 던졌다. "거액을 인출하면 국세청 신고 대상인데 괜찮은가", "보이스피싱 관련해서 들어보셨나. 통장 빌려주면 본인도 처벌 받는다" 등의 말을 건넸다.

이씨는 "나는 직원들 임금을 꺼내려고 하는 것 뿐이니 보이스피싱과 관계 없다"며 계속해서 인출을 해달라고 다그쳤다.

김 주임은 이씨가 태연한 태도를 보이자 은행 모니터링 시스템에 이씨의 통장을 조회했다. 고액을 인출한 내역이 없는 고객이 고액 인출을 요구하면 자동지급정지가 되는 시스템이다. 조회를 하자 이씨의 통장 역시 지급정지가 됐다.

김 주임은 "고액 인출이라 확인할 게 있으니 조그만 기다려달라"고 말하고 사내 메신저로 팀장과 본사에 연락을 취했다. 본사에서는 이씨 통장으로 3000만원을 입금한 대구은행 측에 연락을 취해 보이스피싱 피해자를 찾아냈다. 김 주임의 팀장은 112에 신고를 했다.

이씨가 인출을 요구한 지 30여분만에 김 주임과 동료들의 기지로 이씨는 현장에서 경찰에 체포됐다.

서울 노원경찰서는 김 주임에게 보이스피싱을 예방한 공로로 감사장과 신고 포상금 30만원을 전달했다고 7일 밝혔다.

김 주임은 "항상 보이스피싱 관련해서 얘기만 듣고 교육을 받았지만 실제 상황에 닥치니 긴장도 되고 놀라기도 했다"며 "그래도 이번 기회에 많이 배웠고 실제 피해도 예방돼 뿌듯하다. 신고 포상금으로 회식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경찰은 보이스피싱 인출책 이씨를 사기방조 혐의로 불구속 입건했다.

김씨는 경찰 조사에서 "대출을 받기 위해서 한 것"이라며 "대출업자가 금융거래 실적을 만들기 위해 3000만원을 넣었으니 인출해서 가져다주면 3000만원 중 1000만원을 준다고 했다"고 진술했다.

김준철 노원경찰서장은 "금융기관의 적극적인 대처로 주민의 소중한 재산을 지킬 수 있었다"며 "농협 태릉지점의 범죄 예방 사례를 널리 알리고 금융기관과의 협업을 통해 관내에서 보이스피싱 피해가 더 이상 발생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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