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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독하기 2025.06.21. (토)

내국세

[연재]‘또다른 봄 여름 가을 겨울을 꿈꾸며’

-'나는 평생 세금쟁이'-(43)

“서장님! 우리도 봄, 여름, 가을 그리고 겨울을….”

 

 

 

필자가 그 무렵 아버지 학교에 다녀오면서부터 가족을 보는 눈이 많이 달라졌다. 그래서 함께 근무하고 있는 직원들에게 아버지 학교를 꼭 다녀보라고 강권했었다. 심지어 희망하는 직원들에게는 등록금(10만원)도 대신 내주겠다고까지 했다.

 

왜냐하면 각 가정마다 크고 작은 문제들이 다 있다는데 그 원인이 자녀나 아내에게 있는 게 아니라 남편이나 아버지에게 있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었다.

 

또 자기 집안이 평안해야 평소 상대하는 납세자나 민원인들에게도 좋은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도 알았다.

 

그 때 내 이야기를 들은 상당수의 직원들이 아버지 학교에 다녀왔으며 특별히 그 중 몇몇은 내가 등록금까지도 대준 것으로 기억된다.

 

그 즈음에 밥퍼나눔운동본부(대표‧최일도) 홍보대사로 활동하고 있는 연극인 윤석화로부터 한 통의 전화를 받았다.

 

서초구 서초동에 있는 예술의 전당에서 자기가 열연하고 있는 ‘봄, 여름, 가을 그리고 겨울…’이라는 연극이 절찬리에 공연되고 있다고 하면서 영등포세무서 과장들 부부와 함께 관람할 수 있는 커플석을 마련해 놓았으니 꼭 자리를 빛내 달라는 것이었다.

 

필자는 큰맘 먹고 그동안 모아둔 업무추진비로 고생하고 있는 과장들과 아내들을 초청하여 함께 관람하기로 했다.

 

정해진 토요일 저녁, 설레는 마음으로 서초동에 있는 예술의 전당 부부 커플석을 점령(?)한 우리 일행들은 모처럼 편안한 마음으로 연극도 관람하고 인근 식당에서 늦은 저녁식사까지 함께 하고 헤어졌다.

 

그런데 그 다음주 첫날부터 과장들의 표정이 완전히 달라 보였다. 생기가 돌았다. 그러면서 지난 주말에 자기 집에서 일어났던 일들을 자랑삼아 이야기하는데 모두들 신이 난 듯 했다.

 

또 한사람의 관리자가 달라지니 사무실 직원들도 달라지더라는 것이었다. 몇개월간 그런 분위기는 지속되었다.

 

그러다가 그 해 연말에 필자는 다시 다른 곳으로 자리를 옮기게 되어 그 과장들의 가정 분위기는 알 수가 없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십여년이 지난 최근까지도 그 때 우리가 함께 본 연극 한편의 약발(?)은 계속 이어지고 있어 매우 놀랐다.

 

작년 10월경, 그 때 그 과장들 몇몇 부부와 함께 모처럼 저녁 식사를 하게 되었는데 그 때 참석한 아내들의 이야기가

 

“조 서장님! 그 때 우리가 남편과 함께 관람했던 연극 ‘봄, 여름, 가을 그리고 겨울…’을 얼마나 감동있게 봤던지…. 지금도 잊지 않고 있답니다. 십여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는 데도 왜 잊을 수가 없을까요?”

 

그때 필자는 가슴이 찡했다. 십수년이 흘렀음에도 왜 잊지 않고 있었을까?

 

이 쯤에서 우리 세금쟁이들이여! 스스로 한번 반성해 보자. 사랑하는 집안 식구 특히, 아내에 대해서 얼마나 많은 걸 알고 있을까요?

 

그녀들도 다른 사람들과 똑같은 심성과 감정을 가진 여성들인데 왜 우리들만 이렇게 무관심했을까요? 그 놈(?)의 세금쟁이란 신분 때문이 아닐까요?

 

필자라고 예외는 아니다. 어떻게 보면 더 심했는지도 모른다. 아무것도 내세울 것 없는 힘없고 빽 없는 말단 9급에서 오로지 성공해 보겠다는 한마음으로 하루하루를 남들을 의식하며 살아오다 보니 운좋게 이제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은 세금을 거두어 들이는 영등포세무서장 자리에까지 오게 되었지만 그렇게 되기까지 내 사랑하는 가족들이 얼마나 많은 희생을 치루었는지?

 

오랜 시간이 흐른 지금 이 시간에 생각해 보니 내 자신이 참으로 어리석게(?) 살아온 것 같았다. 그렇다고 지금 후회해 본들 무슨 소용이 있겠냐마는, 그런 삶이 잘못된 삶이라는 것을 늦게나마 깨달았다는 게 그저 감사할 뿐이다.

 

“사랑하는 후배들이여! 현직 때는 긴장하라. 그것도 바짝 긴장하라. 그러면서도 사랑하는 가족들과는 당당하게 살아라. 신명나게 살아라. 멋있게 살아라. 비록 힘들겠지만….”

 

아울러 이 시간을 빌어 그때 필자와 함께 고생해 준 사랑하는 우리 과장들 한 사람 한 사람을 축복해주고 싶다.

 

“우리나라 최고 명문 S대 경제과 재학 당시 누나 뻘 되는 선배를 졸라 어렵게(?) 결혼하여 예쁜 딸과 함께 행복한 가정을 잘 꾸려가고 있는 막내 이상우 과장(현 국세청 징세과장)을 비롯해 지금도 곳곳에서 현직 세무사로 아내와 더불어 행복하게 살아가고 있는 그때 만난 후배 과장들과 아내들이여…. 부디 건강과 행운을 빈다네.

 

그리고 불원간 또다른 ‘봄, 여름, 가을 그리고 겨울…’을 함께 관람할 수 있는 행복한 시간을 꿈꾸며….

 

진심으로 사랑합니다. 그리고 축복합니다. God bless you.”

 

<계속>-매주 水·金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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