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그러하듯 구구절절 사연 없는 사람이 없다.
나 또한 많은 사연을 품고 아픔을 승화시키며 살아가고 있으나 자꾸 초심을 잃는 것 같아 무척 당황스럽다. 처음에는 5년 주기로 위기가 찾아 왔지만 이제는 3년에서 1년, 다시 6개월에서 1달 미만으로 계속 짧아지는 것 같다. 그때마다 온갖 공상과 잡념으로 뒤척뒤척 잠 못 들다 새벽녘에야 겨우 잠이 들고 난 후 핸드폰 알람과 자명종 소리 덕분에 부랴부랴 지각을 면해 왔다. 이젠 더이상 버틸 힘도 없을 정도로 지쳤을 따름이다.
나이가 들면 들수록 나의 꿈인 ‘육해공 사계절 가족쉼터’(바다에서 고기를 잡고, 소를 키우며, 농작물을 키우면서 나물을 캐는 삶. 이하 ‘가족쉼터’라 한다)가 그립고 또한 그 꿈을 하루 빨리 이루기 위해서 더 이상 여기에 계속 안주하면 안된다는 조급함이 밀려온다. 물론, 20여년간 사전에 준비해 온 것은 아무것도 없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모아둔 돈은커녕 오히려 빚만 안고 있다. 연금은 10년후에나 받을 수 있고 명퇴수당으로 빚을 갚고 나면 세우회로부터 받는 돈 기천만원밖에 없는 실정인데 이래 가지고는 어딜 가나 옳은 땅 한떼기 살 수 없고, 변변한 배 한척 사기도 어렵다. 게다가 구체적으로 정착할 어촌이나 농촌, 산촌을 콕 찍어두지도 못했다. 그렇다고 어촌에서, 농촌에서, 산촌에서 살아갈 기본적인 기술도 갖추지 못했다. 다만, 어릴 적부터 촌에서 농사짓고 나무하고 소 키우고 살았던 과거 경험만이 큰 자신감으로 남아있어 무엇이든 잘 할 수 있을 것 같고, 또 잘 이겨낼 수 있을 것 같다.
솔직히 어렴풋이 점찍어 놓은 곳이 바닷가 두어곳 있긴 하나 이곳들도 외지인들의 부동산 투기 덕분에 가격이 폭등하여 내가 가진 돈으로는 도저히 엄두도 못내는 실정이다. 연금을 포기하고 일시불로 수령한다고 해도 턱없이 모자라는 수준이다. 단지, 더이상 늦어지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불안감과 초조함에 그저 하루빨리 칼을 뽑고 싶은 심정뿐이다.
결론은 비만 피하고 바람만 막을 수 있는 소박한 오두막에서 소 한 마리부터, 닭 한 마리부터, 나무 한 그루부터 시작하면 되는 것이다. 수많은 밤을 지새우며 이렇게 내린 결론이 ‘잊혀진 퍼즐을 찾아서’ 라는 졸시를 탄생시켰다.
욕심과 집착, 두려움과 불신
고뇌와 번뇌의 화신
그대 이름은 퍼즐
마음을 비우고 집착을 버리니
두려움은 연기처럼
신뢰는 태산처럼
볼품 있는 먼지를 떠나,
하찮은 공기를 벗 삼으니
두 고개의 강산만이 독야청정
어이하야 이제 왔소
이에라도 자리오소
쌍수로 맞이하고
있는 힘껏 미소 지메
반겨주어 고맙구료
품어주어 함께하리.
10여년 고뇌 끝에 내린 결론이기는 하나, 이 또한 현실적으로 만만치가 않고 녹록치가 않다. 끝없는 욕심과 집착, 두려움과 불신이 오늘도 어김없이 나의 발목을 붙잡는다. 한줌의 먼지와 한 뼘의 연기에 휩싸인 채 무언가에 이끌려 도저히 헤어 나올 수가 없다. 이러면 이럴수록 내 자신이 그저 한심하기 짝이 없을 지경이다.
21년 하고도 8개월, 짧으면 짧고 길다면 길다고 할 수 있는 세월을 한 우물을 파면서 보내왔다. 요즘 부쩍 스쳐온 지난 날들이 자주 떠오른다.
악질 상속 체납자를 ‘상속으로 인한 대위등기 촉탁’과 함께 ‘확정전보전압류’로 공권력의 지엄함을 깨닫게 해 줬던 일, 끈질긴 추적 끝에 명의대여 건설업체의 면허를 취소하고 세액을 추징했던 일, 주경야독과 생즉사 사즉생의 심정으로 1년간 사해행위취소 소송한 결과 승소했던 일, 위조사건으로 경찰서 담당 형사와 직접 뛰어다녔던 일, 요즘 말로 치면 잠복 했던 일, 남녀 혼성사기단을 일망타진했던 일, 참신한 아이디어와 혁신적 발상으로 ‘혁신최우수상’을 받았던 일, 냉철한 분석과 특출한 감각으로 조세정의를 실현하고 조직의 권위, 위상을 높였던 일, 각종 매뉴얼과 길라잡이를 만들었던 일, 소통문화 정착을 위하여 다양한 글을 올렸던 일… 등등
이젠 모두 잊고 싶다.
모두 내려놓고 싶다.
그저 쉬고 싶다.
그저 바람에 날려 정처 없이 떠돌다 가라.
초가삼간 구름나그네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