땀과 눈물로 얻어진 귀한 자리에서 8개월
모시고 있던 국장께서 1년 가까이나 병석에 누워 계시는 가운데 필자는 국장의 업무 대행을 하면서 100여명 가까운 조사요원들을 직접 챙겨야 했다.
거기에 설상가상으로 몇개월에 걸친 감사원의 특별감사까지도 받았으며, 무엇보다 윗분들이 걱정하고 계시는 직원들의 복무 기강까지도 책임져야 했으니 그 고통이 오죽했으랴.
그러나 결과적으로 우려했던 것과는 정반대로 모든 것이 아무런 문제없이 1년을 잘 마무리하게 되었다.
그 덕택에 그 해 연말에 있었던 간부들의 정기 인사이동때 필자는 서울지방국세청 조사1국 조사관리과장 자리로 발탁되었다.
당시 많은 사람들은 “이번 인사에서 가장 눈에 띄는 인사”라고 평가해 주었다. 그 공적은 분명 내가 잘 나서가 아니고 능력이 뛰어나서도 아니었다. 당시 안정남 청장(작고)께서도 이런 점들을 높이 평가해 주셔서 부족한 나를 그 자리로 발탁해 주신 것이었다. 필자는 이 지면을 빌어 하늘나라에 계시는 그 분께 다시 한번 고개 숙여 깊이 감사드린다.
참고로 당시 서울지방국세청 조사국은 1국과 2국으로 나뉘어져 있었는데 조사1국에서는 대기업 정기 세무조사 위주로 했으며, 조사2국은 특별 세무조사와 주식이동조사를 주로 해 왔었다.
따라서 대부분의 조사요원들은 조사2국보다는 조사1국을 더 선호하는 분위기였다.
또 내가 맡고 있는 조사1국 조사관리과에서는 직접적인 세무조사보다는 직세국(법인세과) 등에서 매년 선정하여 통보되는 조사대상 법인을 조사담당관실에 배정하는 일과 또 조사담당관실에서 조사를 잘 할 수 있도록 각종 여건을 지원해 주는 일들이었다.
또 과장 개인으로서는 대외 유관기관 간부들과의 잦은 교류를 통해 세원 정보를 수집하는 업무도 빼놓을 수 없는 업무 중 하나였다.
이런 귀하고 중차대한 자리에 아무런 연고가 없는 나를 발탁해 주셨으니 조직을 위해 더 열심히 헌신해야겠다는 마음의 각오도 더욱 다지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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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당발' 로 유명한 조용근 천안함재단 이사장은 조세계 뿐만 아니라 언론계, 기관·단체장 등 각계 인사와 튼튼한 인맥을 맺고 있다. 이 광범위한 인맥은 그의 성실하고도 진정성 있는 자세에서 기인한 것이라는 평이다.<사진은 2008.06.21 강신호 당시 전경련회장과 사랑의 밥퍼운동을 펼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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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국세청장실로부터 호출이 온 것이다.
안정남 국세청장께서 느닷없이 “조용근 과장! 야, 이 친구야. 직원 관리 좀 똑바로 해!”
“무슨 말씀이십니까?”
구체적인 사연은 이러했다. 얼마 전에 있었던 초급 간부 인사이동때 필자 밑으로 오게 된 한 친구가 정보기관 사람들과 만나서 국세청장을 음해하고 다닌다는 것이었다.
그 때 필자는 그것이 사실이든 아니든 간에 몇번이나 거듭 사죄를 드리고 국세청장실을 빠져 왔다. 진땀이 났다. 그리고 사무실로 돌아와 직원들을 모아 특별히 당부했다.
“우리는 정권이 어떻게 바뀌었든, 또 어떤 분이 국세청 최고 책임자로 왔든 그 일은 중요치 않다. 또 국세청이라는 조직은 영원하다. 그러니 우리 모두는 국세청의 한 사람으로써 조직에 손해가 되는 일은 하지 말고, 말도 특별히 조심하자. 또 사무실에서 일어난 일들은 집에 가서 아내에게도 이야기하지 말자”라고 이야기했다.
또 “새로운 정부가 들어서자마자 어려운 이 IMF 외환위기 사태로 온 국민이 발벗고 나서서 심지어 집안 장롱 안에 모아둔 금 모으기 운동까지 전개해 가면서 나라의 어려움을 극복해 나가는 마당에 우리도 모두 한마음 한뜻이 되어 이 어려움을 극복하는데 앞장서자. 그리고 절대로 다른 목소리를 내지 말자. 지금 우리 국세청에서는 제2의 개청까지 준비하고 있는 마당인 만큼 더더욱 우리는 국세청 핵심요원들로서 한목소리를 내야 된다”라고 주지시켰다.
또 필자가 평소에 자주 보는 성경 말씀 중 ‘네가 남으로부터 비난을 받지 아니하려거든, 절대로 남을 비난하지 말라’라는 귀한 말씀도 함께 들려주면서 각자의 마음판에 새겨 보라고 했다.
나 또한 내 마음판에 새겨보려고 노력했다. 그런데도 나 자신도 매우 나약한 사람이다 보니 그것이 뜻대로 잘 되지 않았다. 틈만 나면 남을 험담하기 좋아하고, 옆에 있는 동료가 불행해지면 왠지 모르게 내가 행복해지는 기분이었다. 그 때마다 느낀 것은 그토록 노력하는 데도 왜 실천이 안 되는지를 내 자신도 알 수가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금이나마 다행스러운 것은 지금도 그런 경향이 있지만 당시 내가 자주 사귀는 사람들을 면면히 살펴보면 내 고향 출신 인사들보다는 오히려 다른 지역 출신 인사들이 더 많다는 것이다.
그 이유는 일부러 내가 의도적으로 그렇게 한 것이 아니라 내 생각과 코드가 같은 사람들과 자주 만나 마음을 통하다 보니 지역이나 계층에 관계없이 자연히 그런 인맥이 형성되어 왔을 뿐이다.
지금 생각해 보니 당시 이러한 나의 오픈(?)된 성격 때문인지는 몰라도 1~2년후 ‘23개 전국 중앙언론사’에 대한 특별 세무조사때 국세청 공보담당관이라는 참으로 견디기 어려운 자리로 발탁되어 가게 되는 하나의 계기가 되지 않았나 생각이 든다.
아무튼 그 때 국세청 제2의 개청을 앞둔 어려웠던 상황에서 8개월간의 서울지방국세청 조사1국 조사관리과장 직책을 무사히 잘 마치게 되어 참으로 다행스럽게 생각한다.
<계속>-매주 水·金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