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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독하기 2025.06.21. (토)

내국세

[연재]착한 세금쟁이들이 만든 ‘목야(木夜) 산악회’

-"나는 평생 세금쟁이”-(37)

 ‘큰어른 안 계신’ 재산세국, 산행으로 단결
-“그만하면 잘 했지예. 근데 그때 진짜 힘들었거든예”-

 

 

 

98년 1월 김대중 정부가 들어서자마자, 필자는 1년6개월간의 의성세무서장 근무를 끝내고 서울로 올라왔다.

 

국세청 재산세과에서 12년간 맡아온 부동산 투기업무 경력을 인정받아 서울지방국세청 재산세국 부동산 투기 조사 담당관으로 발령받았다.

 

이 곳은 100명 가까운 조사요원들이 양도소득세와 상속세, 증여세 조사를 비롯하여 비상장법인들의 주식이동조사까지 하는 나름대로 방대한 조사팀이었다. 참고로 이 조직이 1년후에는 지금의 서울지방국세청 조사3국으로 확대 개편됐다.

 

그 때 필자가 직속상관으로 모시게 된 분은 다름 아닌 권을선 국장(작고)이셨다. 이 분의 고향은 경북 안동이었는데 정말 인품도 훌륭하시고 지혜가 있으신 분이라 비록 짧은 기간이었지만 나는 많은 것을 배웠다.

 

그런데 얼마 안 있어 병원에 입원하시게 되었는데 불행히도 완쾌가 되지 않으셨던지 계속해서 자리를 비우게 되었다.

 

그래서 100명 가까운 조사요원들을 관리하기에는 턱없이 능력이 부족한 필자로서는 정말 불안했다. 일일이 조사대상자에 대한 조사 범위와 조사 방법까지도 함께 제시해 줘야 했으며 또 매주 한두차례씩 조사 진행상황까지도 보고받아야 했다.

 

참고로 우리가 담당하고 있는 세무조사 대부분이 거래 상대방을 포함해서 관련인 조사도 함께 해야 하다 보니 자칫하면 조사 대상자가 아닌 데도 세무조사를 하게 되는 경우가 더러 있었다. 그러다가 만에 하나 조사를 잘못하게 되면 납세자들의 민원을 비롯해 청탁도 자주 들어오게 되는 것이다.

 

그런 데다 조사요원들과 함께 근무하고 있는 필자의 사무실이 국세청 본관이 아닌 인근에 있는 연합뉴스 건물 내에 있다 보니 조사요원들의 근무기강에도 신경쓰지 않을 수가 없었다.

 

무엇보다 관리 책임자인 국장이 공석 중이다 보니 나 자신부터 몸조심을 하지 않을 수 없게 됐다.

 

 

 ‘근자열 원자래(近者悅 遠者來)는 강연을 자주 다니는 조용근 천안함재단 이사장의 단골 주제다. 가까이 있는 사람을 기쁘게 하면 멀리서도 사람이 찾아온다는 뜻으로, 조용근 이사장은 우리 사회가 추구해야 할 진정한 가치와 희망은 '나눔과 섬김'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여기에다 국세청장을 비롯한 서울청장에게 세무조사 진행상황을 보고하기 위해 하루에도 몇차례씩 국세청 본관 건물을 갔다 왔다 해야 했다.

 

설상가상으로 몇개월동안에 걸친 감사원의 특별감사도 받아야 했다.

 

지난 95년에 새로 제정된 ‘부동산 실소유자 명의 등기에 관한 법률’에 따라 그 해 7월부터는 실소유자 명의로 등기해야 하는데 그 법 시행 이전에 이미 다른 사람 명의로 명의신탁한 사람들에게는 1년간의 실명 전환기간(95년 7월~96년 6월)을 주어서 그 기간 내에 실명으로 전환하는 경우에는 세금에 혜택을 주겠다고 했었는데 혹시나 이 제도를 잘못 악용해서 세금을 빼먹은 위장사례가 없었는지에 대한 특별감사였다.

 

몇분의 감사관들이 국세청에 직접 나와서 특별감사를 하는데 필자가 수감 책임자로서 일일이 감사를 받아야 했다.

 

그 때 필자는 “나에게는 왜 이렇게 바쁘고 골치 아픈 일들만 늘 따라 다니는지?”라고 마음 속으로 불평하면서 가끔씩 국세청장과 서울지방국세청장께 필자가 겪고 있는 애로사항을 말씀드렸더니 조금만 더 기다려 보라고 하시면서 직원관리를 철저히 해 달라는 부탁말씀만 하셨다.

 

그래서 필자는 ‘어떻게 하면 이 어려운 난관을 극복할 수 있을까?’하고 깊이 고민하던 중 한가지 아이디어가 나왔다.

 

바로 직전 근무지였던 의성세무서에서 매주 한차례씩 50여명의 직원들과 함께 했던 야간산행모임이 생각났다.

 

그래서 함께 근무하고 있는 사무관들에게 매주 목요일마다 북한산으로 야간산행을 하면 어떻겠냐고 제안하면서 참가 회비는 예외 없이 1인당 1만원으로 하되 그 중 5천원은 식사대(도시락 구입비)로 하고, 나머지 5천원은 모아두었다가 어려운 청소년들을 돕는데 쓰자고 했더니 모두들 박수를 쳐 주었다.

 

또 서울지방국세청장에게 이런 내용을 보고드렸더니 흔쾌히 승락해 주시고 그 날만은 퇴근시간을 1시간 앞당기게 해 주셨다. 그랬더니 생각보다 많은 조사요원들이 동참해 주었다.

 

그래서 매주 목요일이면 저녁 5시30분 북한산 입구에서 출발하여 서너시간동안 산행을 하면서 산(山) 정상에서 함께 도시락으로 저녁 식사를 해 보았더니 정말 꿀맛이었다.

 

그렇게 목야(木夜) 산악회를 조직하여 가을까지 약 6개월정도 계속해 보았더니 무엇보다 직원들끼리 소통이 잘 되었다.

 

여기에다 절반의 회비를 모아 종로구청으로부터 통보받은 종로구 관내 불우한 청소년 몇명을 도와주게 되었으니 모두가 마음 착한 세금쟁이로 변하고 있었다.

 

나중에 이 아름다운 소식을 보고받으신 서울지방국세청장께서도 자신도 이 모임에 동참하고 싶다고 하셨다. 또 국세청장께도 보고드렸더니 역시 아름다운 미담사례라고 크게 칭찬해 주셨다.

 

집안의 보스(?)가 안 계신다고 손놓고 있을 것이 아니라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해 이런 좋은 이벤트를 만들어서 스스로 운영해 보았더니 조사요원들이 자발적으로 더 열심히 일하는 원동력이 되었다.

 

참고로 연말에 가서 한해 업무를 결산해 보았더니 연초 우리에게 주어진 목표치보다 무려 150% 이상의 좋은 실적도 올리게 되었고 당초 우려했던 조사요원들의 근무 기강문제도 아무런 잡음 없이 한해를 마감할 수 있었다.

 

또 더 고마운 것은 몇개월간의 감사원 특감에서도 한건의 지적도 받지 않았다.

 

그러면서 필자는 가끔 권 국장 댁으로 찾아가서 이런 내용들을 보고드렸고, 매우 만족해 하시면서 필자에게 진심으로 미안해 하셨다.

 

그 후 권 국장께서는 수원에 있는 국세공무원교육원장으로 영전하셨다가 얼마후 그만 우리들을 남겨두고 세상을 떠나셨다.

 

 “국장님예! 제가 약속 잘 지켰지예. 그만하면 잘 했지예. 근데 그때 진짜 힘들었거든예.”

 

<계속>-매주 水·金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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