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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독하기 2025.06.20.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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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범죄? 묻지마 폭행?' 결론 짓는데 4일 걸린 경찰

출근길 도심 한복판에서 30대 청각장애 여성이 뒤에서 불쑥 나타난 괴한에게 얼굴을 수차례 맞은 사건이 발생했다. 경찰이 성폭행을 노린 범죄인지, 묻지마 폭행인지 결론을 내리는 데만 4일이 걸렸다.

8일 광주경찰청 등에 따르면 지난 2월28일 오전 6시30분께 광주 서구 한 고등학교 앞 길가에서 출근 중이던 A(38·여)씨가 괴한의 주먹에 얼굴을 수차례 맞아 쓰러졌다. A씨의 비명에 놀란 괴한은 그대로 달아났다.

사건은 발생 지역 관할인 광주 서부경찰서 형사과로 처음 접수됐다.

그런데 A씨의 언니가 조사 과정에서 "새벽 시간대 여자를 뒤에서 덮친 의도는 성폭행하기 위한 것"이라고 주장하면서 애매한 상황이 벌어졌다. 폭행 사건은 형사과 담당이지만 성범죄는 여성청소년과 담당이기 때문이다.

더욱이 장애인이나 어린 아이와 관련된 성범죄는 경찰서 여성청소년과가 아닌 광주경찰청 소속 성폭력특별수사대가 전담하고 있다. 결국 청각장애를 앓고 있는 A씨의 사건은 서부경찰서에서 광주경찰청으로 넘겨졌다.

사건이 접수된 지 반 나절 만에 본격적인 조사가 시작됐다. 광주경찰청 원스톱지원센터에서 당시 상황을 파악하기 위한 2차례 조사가 이뤄졌으며 동시에 A씨가 괴한에게 맞은 지역 인근 폐쇄회로(CC)TV의 분석이 시작됐다.

그러나 A씨가 수화를 못해 의사소통이 쉽지 않은 데다 괴한에게 맞은 모습이 찍힌 CCTV도 없어 수사는 제자리를 맴돌았다.

지난 3일 광주경찰청은 "성범죄와 연관성이 없다"며 사건을 서부경찰서 형사과로 다시 내려 보냈다. "주위가 이미 밝은 아침 시간대 큰 도로변 길가에서 성폭행을 목적으로 범행이 이뤄졌다고 보기 힘들다"는 게 이유였다.

처음 성폭행을 주장했던 A씨의 언니도 조사 과정에서 생각을 바꾼 것으로 알려졌다. 사건 접수 4일 만에 묻지마 폭행으로 결론 난 것이다. 피해자 입장에서는 담당 수사관이 또 다시 바뀐 셈이 됐다. 담당 부서가 몇 차례 바뀌는 사이 그만큼 시간도 흘러 주변 CCTV 분석을 통한 수사에도 적지 않은 어려움이 예상되고 있다.

경찰 한 관계자는 "형사과에서 담당하던 성범죄를 여성청소년과에서 맡게 된 뒤부터 이런 사례가 종종 일어나고 있다"며 "성범죄가 다른 강력 범죄와 연결되는 경우가 많아 난감할 때가 있다"고 말했다.

이어 "정해진 업무 분장에 따라 일을 처리하는 것이 피해자는 물론 사건 담당자들까지 힘들게 하고 있다"며 "민원인이나 피해자를 중심에 둔 고민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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