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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독하기 2025.06.20. (금)

내국세

[연재]"이건춘 국세청장, 국세청은 구조조정 없다"

-격동기 국세청 30년, 담담히 꺼내본 일기장-(45)

 관내 산업현장을 시찰하다

 


광주청 관내 산업활동은 타 지역에 비하여 원래부터 그 기초가 빈약했다.

 

 

 

전북지역에는 전주에 전주제지, 코카콜라호남식품 정도였고 군산에는 이전에 번창하던 합판, 주류산업이 쇠퇴하면서 이렇다 할 산업이 없었고, 이리에는 쌍방울과 태창메리야스, 광전자 정도였다.

 

 

 

전남지역에는 광주에 기아자동차, 목포에 삼호조선, 여수에 호남정유, 광양에 광양제철소 등이 주된 기업이었는데 IMF환란을 당해 모든 기업들이 엄청난 규모로 구조조정을 하는 바람에 지역경제가 말이 아니었다.

 

나는 몇군데 큰 기업들을 방문해 현장을 시찰하고 상황을 파악했다.

 

 

 

목포 삼호조선은 8천명의 종업원을 4천명으로 감축해 운영하고 있었다. 기아자동차는 현대자동차가 인수해 처음으로 주인있는 회사가 된 덕분에 어려움 가운데서도 재기의 희망이 보였다. 특히 새로 온 공장장이 새벽부터 지게차를 타고 공장 구석구석을 돌며 그동안 기계장치와 그 주변에 덕지덕지 쌓인 먼지를 안방처럼 말끔히 청소하는 일만 한달 이상을 계속 함으로써 과거 거친 노조원들의 근무기강을 바로잡고 있었다.

 

여천공단의 호남석유와 광양제철은 IMF환란 가운데 어려움은 있었으나 그나마 큰 구조조정 없이 가동되고 있었다. 광양제철은 소재지는 광주청 관내였지만 부가가치세나 법인세, 근로소득세까지도 본사 소재지인 포항세무서에 내고 있었기 때문에 순천, 광양지방에 인구 유입으로 인한 지방경제 활성화에는 다소 도움이 있었으나 세금면에 있어서는 플러스효과를 기대할 수 없었다.

 

산업활동의 침체로 기업들은 유동성 위기에 몰리게 되었고 심지어 호남정유 같은 기업도 납기연장을 신청할 정도였다. 상황이 이러하다 보니 지방청 세수목표 달성이 어려웠지만 이는 본청에서도 양해사항으로 넘어갈 수밖에 없었다.

 

 

 

 

 

 

 

 

’97년에 몰아닥친 외환위기는 국회 국정감사패턴까지 바꿔 놓았다. ’98년 개최된 국세청에 대한 국정감사는 각 지방청장들이 본청에 모여 한꺼번에 받았다. 안 좋은 경제상황을 감안, 각 지방청은 ‘경제살리기에 몰두하라’는 배려였다. 사진은 98년 9월 서울 수송동 국세청사 11층에서 개최된 국세청에 대한 국회 국정감사에서 본청간부들과 지방국세청장들이 모여 답변을 숙의 하고 있는 모습. 우측으로부터 김성호 경인청장, 배양일 대전청장, 황재성 서울청장, 장 춘 광주청장, 황수웅 대구청장, 곽진업 부산청장 등이 장 춘 광주청장을 둘러싸고 답변 내용을 협의하고 있다. 좌측으로 국세청 주요간부들 모습도 보인다. <세정신문DB>


98년 광주청 현지 국정감사를 생략하다

 

 

 

98년 9월 정기국회가 열리면서 정례적으로 실시하는 국정감사철이 됐다. 예년 같으면 국회재경위원회 위원들이 두 반으로 나눠 지방까지 내려와서 지방국세청을 감사했다. 지방의 세정현장을 살펴본다는 취지에서 의미있는 활동이었지만 98년과 같은 어려운 지역경제 실정을 감안한다면 한해쯤 지방에 내려오는 것을 생략해도 좋을 것으로 생각됐다.

 

나는 국회재경위원회 여당 간사인 박정훈 의원과 야당 간사인 나오연 의원과 만나 이 일을 상의하고 최종적으로 김동욱 위원장을 설득해 서울에서 본청과 함께 감사를 받기로 하였다. 다른 지역의 지방청장과 함께 공조해 성사된 일이었지만 이 일은 당시 경제난에 처한 지방의 민심을 헤아려 볼 때 결론적으로 잘 된 일이었다.

 

 

 

어려운 지역경제 감안 현지 국감 생략하다

 

 

 

술잔 돌리는 술자리의 곤혹스러움

 

 

 

광주청에 청장으로 재직하는 동안 여러가지 명칭의 모임이 많았다. 지역 출신 국회의원들과의 모임, 시도단위 기관장 모임, 상공회의소 임원 모임, 언론․시민단체 초청모임, 학교동문 모임 등 공사모임이 잇달아 있었다. 그럴 때마다 나에게 가장 곤혹스런 일은 술 문제였다.

 

나는 체질적으로 술이 맞지 않아 술을 거의 못하는데 독한 술잔을 차례로 돌려가며 마시게 할 때는 자리를 슬쩍 뜨는 제스처로 피하기도 했지만 강권에 못 이겨 억지로 마시고는 후유증으로 시달릴 때가 너무 많았다. 이런 연유로 내가 주재하는 회식자리에서는 강제로 술을 권하거나 잔을 돌리는 일은 가급적 하지 않았다. 자기 주량대로만 마시는 술 문화, 회식문화가 어느 때쯤 정착될까 싶다. 

 

98년5월3일 목요일 이건춘 국세청장께서 광주청을 순시했다. 이 청장은 직원들과 과장, 서장 등을 지명해 가며 자유로운 의견진술의 기회를 주고 귀를 기울여 듣고 답변을 주고받았다.

 

이 청장은 광주청의 체납정리 실적이 양호하다고 칭찬하고 ‘국세청은 구조조정은 없다. 최근 봉급수준이 삭감되었으나 주변의 어려운자를 생각하고 참아내자. 위대한 대통령을 배출시킨 광주청 직원들은 자긍심 갖고 선도자 역할을 해달라’는 말씀을 남겼다.

 

<계속>-매주 月·木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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