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명이라도 억울한 사람 없어야’
전과자(前科者)가 공직감찰(?)
이렇게 마냥 일이 좋아서 물, 불을 가리지 않고 서울, 부천, 수원, 인천 등지를 왔다갔다 하다 보니 1년이라는 시간이 금방 지나가게 되었다.
그러던 91년 4월 어느 날. 국무총리실 제4조정관실이라는 곳에서 한분이 전화를 주셨는데 필자가 그쪽으로 파견발령이 날 것이라고 말해주었다.
여기가 바로 공직자에 대한 사정(司正)업무, 즉 공직기강을 담당하는 곳인데 국세청에서 필자를 추천했다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빨리 와서 조정관실 최고 책임자에게 신고를 하라는 것이다.
그래서 국세청 여기저기를 알아보니 다른 말 하지 말고 빨리 가서 열심히 근무하겠다고만 말씀드리라는 것이었다.
하지만 필자가 생각하기에는 내 자신이 별로 깨끗치 못한데 그런 곳에 가서 다른 공직자를 감찰한다는 것은 도저히 이야기가 안 된다고 생각했다.
‘똥 묻은 개가 겨 묻은 개 나무랄 수 있겠는가?’ 또 ‘내 눈 속에는 나무 토막이 깊이 박혀 있는 데도 남의 눈 속에 있는 작은 티눈을 내가 빼주겠다고 할 수 있겠는가?’라는 성경말씀도 생각나서 몹시 주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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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근 천안함재단 이사장은 우리사회의 봉사가 필요한 곳이라면 어디든 달려가 ‘나눔과 섬김’ 실천에 앞장서고 있다.<사진은 2007년12월27일 기름유출사건 당시 태안봉사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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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나 자신을 살펴보니 전혀 그런 곳에 갈 그릇이 못되었다.
1년전, 자동차 운전 면허를 따기 위해 두달동안 주민등록을 위장전입한 사실도 있었고,
또 몇년전부터 서울 변두리에서 상가건물 지하를 빌려 개척교회를 담임하고 있는 목사인 매제(여동생 남편)와 함께 교회를 세울 목적으로 강화도에 있는 온천 개발 예정지에 있는 임야 1천평을 공동으로 매입한 것이라든지
(필자의 지분은 곧바로 매제에게 넘겼으나, 매제는 온천이 개발되지 아니하여 별 이익도 없이 어렵게 매각 처분했지만…)
당초 의도는 옳았지만 결과적으로 올바르지 못했던 나의 이런 행동들과 무엇보다 내 양심에 비추어 보니 도저히 그곳에 갈 용기가 나지 않았다.
그래서 윗분들과 상의해 보니 국세청 본청에서는 이미 파견근무 발령이 났다고 해서 어쩔 수가 없었다.
할 수 없이 맡고 있던 업무를 법인세 1과장에게 인계해 주고 청와대 부근에 있는 국무총리실 제4조정관실에 출근신고를 했다.
거기에는 이미 검찰청과 경찰청을 비롯한 각 부처에서 파견된 감찰요원들이 몇개 팀으로 나누어져 있었으며, 당시 내가 소속된 팀의 팀장은 지금 천안시장으로 재직 중인 구본영 과장이었다.
그 곳에서 우리 팀에 주어진 업무는 주로 공직자들의 비리 첩보 수집과 공직 비리가 취약한 부처에 대한 현장 감찰이었다.
또 출장을 마치고 돌아오면 출장 보고서도 작성해야 하는 등 하루도 제대로 쉴 수 없는 복잡한 일정이었다.
그러면서 무엇보다 나 자신도 깨끗하게 살아야 하니 늘 긴장된 생활이었다.
다행히 필자는 근무하는 동안 ‘국세청 대표선수’라는 마음을 갖고 사심 없이 열심히 일했더니 당초 1년간의 파견근무가 2년이 넘도록 연장근무하게 되었으며 그 대가로 92년 10월 ‘근정포장’ 이라는 큰 선물도 받게 되었다.
그러면서 필자는 나름대로의 두가지 근무 원칙을 마음에 품고 있었다.
그 하나는 내가 맡고 있는 일로 단 1명이라도 억울하게 희생되는 공직자가 있어서는 안되겠다는 것이다.
거듭 이야기하지만 나 자신도 깨끗치 못한데 나보다 더 깨끗한 사람을 잘못되게 해서는 안 된다는 원칙이며,
둘째는 말도 안 되는 이야기로만 들릴지 몰라도 내가 몸담고 있는 국세청 직원들은 적극 보호해야겠다는 것이다.
별 것 아닌 것을 가지고 세무공무원이라 해서 무리하게 희생시킨다는 것은 내 자신이 용납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혹 다른 부처에서 파견된 감찰요원들이 국세청 직원들에 대한 비리자료를 수집한다는 정보가 들리면 내가 직접 해명해 주기도 하고 아니면 나에게 넘겨 달라고 했다.
그리고 넘겨 받은 자료는 즉시 해당 지방청장에게 인계해서 자체에서 조용히 해결해 달라고 말씀드렸다.
그렇게 해야만 나중에 파견근무를 마치고 떳떳한 마음으로 원대복귀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나의 이런 기특한(?) 마음을 아셨던지 당시 추경석 국세청장께서는 간혹 나를 조용히 불러 따뜻하게 격려해 주셔서 더욱 힘이 났었다.
그 분 역시 누구 못지 않게 국세청 조직을 사랑하신 분이셨다.
나중에는 국세청장을 연임하신 후 건설부 장관을 끝으로 공직을 명예롭게 마감하셨는데 몇년전까지 국세청 출신 모임인 국세동우회장을 오랫동안 맡으시다가 지금도 후배들의 훌륭한 멘토로서 항상 우리들 곁에 계시는 든든한 분이시다.
“존경하는 추경석 장관님! 부디 오래오래 건강하게… 그리고 늘 감사 드립니다.”
-매주 水·金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