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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독하기 2025.06.20.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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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세훈 구속' 김상환 부장판사 "사건 진행하며 깊은 고독 느껴"

원세훈 전 국가정보원장의 공직선거법 및 국정원법 위반 혐의를 모두 인정해 징역 3년의 실형을 선고하고 법정구속시킨 김상환(49·사법연수원 20기) 서울고법 부장판사는 9일 판결문을 읽기에 앞서 "한 사람의 죄와 벌을 다루는 그 어떤 형사재판도 담당 법관에게 끝없는 숙고와 고민을 요구한다"며 재판장으로서 깊은 고뇌의 일단을 드러냈다.

김 부장판사는 이어 "독립된 재판부는 알 수 없는 깊은 고독을 느끼기도 한다. 이 재판을 진행하면서도 예외는 아니었다"며 "헌법과 법률이 무엇인지 생각하고, 기록에 나타난 증거가 의미하는 것이 무엇인지 정성을 다해 탐구하려고 진지한 노력을 다했다"고 말했다.

실제로 김 부장판사는 지난 주 판결문 초고를 작성한 뒤 지인에게 "법관은 판결로 말하는 것이다. 법에 따라 판결하면 되는 것"이라는 말을 거듭 강조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 부장판사는 특히 이날 1심과 달리 원 전 원장의 정보기관 선거개입에 대해 강한 경고와 우려를 동시에 나타냈다.

김 부장판사는 "정보기관의 선거개입은 그 어떤 명분으로도 정당화되거나 합리화될 수 없는 문제"라며 "국정원이 솔직한 반성과 깊은 성찰의 결과로 만든 거울 앞에서 이 사건 사이버활동의 적법성을, 그리고 그것이 합리적인 국민에게 어떻게 이해될 것인지 진지하게 따져봤는지 극히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아울러 "정보기관 관련법 어디에도 (정보기관이) 선거에 개입할 명분을 주고 있지 않으며, 어떤 측면에서도 용인될 수 없고, 선거 과정과 무관하면 무관할수록 정보기관에 대한 신뢰가 생길 것"이라며 "어떠한 국가기관도 법치 영역에서 자유로울 수 없고, 안보환경이 급변해 이에 대응할 절박한 필요성이 있다고 하더라도 법의 체계에서 그 활동이 허용될 수 없다면 국회의 동의를 확보하는 것이 우선"이라고 강조했다.

김 부장판사는 "재판 과정에서 (원 전 원장과 함께 기소된) 이종명 전 국정원 3차장이 '군은 전쟁을 준비하는 기관이지만 국정원은 현재 전쟁을 수행하고 있다'는 취지로 말한 것에 대해 강한 울림을 간직하고 있고, 전적으로 공감했다"면서도 "국정원이 현재 국가를 위해 중차대하면서도 때로는 생명의 위협까지 따르는 임무를 하고 있다는 것을 외면하는 게 아니다. 특정 사이버활동이 관련 업무에 위반된다는 점을 명백히 지적함으로써 헌신과 노력이 본연의 임무 수행에만 집중되도록 해 더 든든한 신뢰를 얻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김 부장판사는 2시간 가까이 판결문을 읽으면서 논어의 '위정'편을 인용해 눈길을 끌기도 했다.

그는 "논어의 위정편에서 공자는 '나와 다른 생각에 대해 공격한다면 이것은 손해가 될 뿐'이라고 했다"며 "나와 다른 쪽에 서 있다는 이유만으로 상대방을 공격하고 배척한다면 결국 자신에게 해로운 결과를 가져올 것이라는 의미이고, 이는 다른 것에 대한 공격과 강요가 결국 심각한 갈등과 분쟁을 가져올 수 있다는 경고를 의미한다"고 강조했다.

대전 출신인 김 부장판사는 대전 보문고와 서울대 사법학과를 졸업하고 1988년 제30회 사법시험에 합격해 법조인의 길에 들어섰다.

부산지법 판사로 첫 임용된 그는 헌법재판소 파견 근무 및 대법원 재판연구관 겸임 시절을 제외하면 지금까지 일선 법원에서 재판 업무만을 담당하면서 '강골 판사'로 알려져 왔다.

그는 박근혜 대통령 5촌간 살인사건 의혹을 보도해 허위사실을 공표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주진우 시사인 기자와 김어준 딴지일보 총수의 항소심 재판을 맡아 이들에게 1심과 같이 모두 무죄를 선고한 바 있다.

또 SK그룹 총수 형제의 횡령 사건에 공범으로 가담한 혐의로 구속 기소된 김원홍 전 SK해운 고문에 대한 항소심을 맡아 1심보다 1년 높은 징역 4년6월을 선고하기도 했다.

지난해 10월에는 아내의 외도를 의심해 아내를 목 졸라 살해하고 하수구에 시신을 유기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오모씨에 대해 징역 13년을 선고한 1심을 깨고 징역 18년의 중형을 선고했다.

당시 김 부장판사는 법정에 출석한 유가족에게 "고귀한 생명이 돌아올 수 없는 곳으로 떠나갔다"며 "재판부의 결정이 유가족에게 위로가 되지 않을 수도 있지만, 진심으로 슬픔을 이해하고 마음을 다해 애도한다"고 밝혀 잔잔한 감동을 주기도 했다.

김 부장판사는 선거사건 전담 재판부인 서울고법 형사6부에서 지난해 11월부터 김성수(47·24기) 판사, 윤정근(46·26기) 판사와 함께 원 전 원장에 대한 항소심 재판을 진행해 왔다. 한 차례의 공판준비기일과 여덟 차례의 공판기일을 열어 석 달 동안 심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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