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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독하기 2025.06.20. (금)

내국세

[연재]'나는 평생 세금쟁이'(30)

토초세(土超稅)인지? 초토세(超土稅)인지?

토초세(土超稅)인지? 초토세(超土稅)인지?

 

 

 

 

 

필자가 부천세무서에서 근무한 지 1년여 정도 지났을 즈음에 당시 국세청 재산세과장으로부터 호출이 왔다.

 

“조 사무관! 당분간 본청에서 나와 함께 같이 근무해야 할 것 같네.”

 

내용인즉 당시 나라안 곳곳에서 부동산 투기 열풍이 거세게 불고 있어, 자칫 나라의 존립이 흔들릴 정도가 되어 이를 안보(安保) 차원에서 다스려야 한다는 것이 정부 당국의 강력한 의지이며 그 실천 방안으로 ‘토지 공개념(公槪念)’ 관련 법안들을 만들어 강력하게 시행할 것이라는 말씀을 하셨다.

 

그 중 우리 국세청 소관이 될 ‘토지초과이득세법’이 곧 제정되어 90년부터 시행될 예정이니 관련행정 조치사항들을 빨리 마련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를 위해 국세청 재산세과 내(內)에 별도의 ‘토지초과이득세 시행준비단’을 구성하게 되었는데 필자가 실무팀장으로 내정되었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필자는 본청을 떠나온 지 불과 1년여밖에 되지 않았는데 또다시 본청 근무를 하라고 하니 가슴이 답답했다.

 

 

 

무엇보다 법률도 확정되지 않은 상태에서 향후 3년동안 국세청이 추진해야 할 업무 로드맵(Road_Map)을 만들어 보라니….

 

참으로 황당한 말씀이었다.

 

 

 

그러면서 필자에게 건네 주시는 서류는 재무부(세제실)에서 만든 ‘토지초과이득세 법률(안)’ 초안과 함께 파견근무할 10여명의 직원 명단이었다.

 

 

 

눈앞이 캄캄했다.

 

그렇다고 “저는 할 수 없습니다” 라고 말할 수도 없었다.

 

“네! 최선을 다해 보겠습니다. 언제부터 출근하면 되겠습니까?”

 

“다음주 월요일 출근하게. 그리고 지금 조 사무관이 맡고 있는 업무는 당분간 부가세 1과장에게 인계해 놓고….”

 

그날 밤 퇴근한 필자는 잠이 오지 않았다.

 

 

 

 

 

 

조용근 천안함재단 이사장은 나누는 삶의 기쁨과 긍정의 힘에 대해 인생과 직장의 선배로서 풍부한 경험담을 설파, 후배 국세공무원들에게 귀감이 되고 있다.<사진은 2010년 종로세무서 특강모습>


그 다음주부터 국세청 재산세과로 출근했다.

 

10명 가까운 직원들과 함께 재산세과 사무실 한쪽 모퉁이에 칸막이를 치고 업무를 시작했다.

 

처음으로 대면한 직원들에게 시행준비단의 성격과 해야 할 일들을 이야기해 주었다.

 

“지금 우리에게 주어진 것은 토지초과이득세 관련 법률 초안뿐이네. 그렇다고 국회에서 이 초안대로 확정된다는 보장도 없다네. 이런 상황에서 우리는 지금부터 무(無)에서 유(有)를 만들어 내야 하네.”

 

참고로 당시 ‘토지초과이득세’ 초안 내용을 간단하게 요약해 보면 나대지(裸垈地)같은 실제로 쓰이지 않는 개인 또는 법인 소유 토지 등에 대해서 매 3년마다 (지가가 급등한 경우에는 1년마다) 땅값을 평가해서 땅값이 전국 평균 땅값 상승율보다 더 많이 올라간 경우에는 지가(地價) 상승분의 일정분(30%~50%)을 토지초과이득세로 매기겠다는 것이다. 그것도 토지가 팔리지 않는 상태에서….

 

겉으로 보면 일견 수긍이 갈 것 같지만 이를 집행해 나가야 할 국세청으로서는 엄청난 행정력을 쏟아 부어야 하는 것이다.

 

 

 

먼저는 세금을 매겨야 할 대상이 되는 비업무용 토지(쉽게 이야기하면 ‘노는 땅’)의 범위는 법령으로 정하겠지만 실제로 과세집행이 잘 되려면 합리적으로 기준이 제시돼야 하고 둘째로 매년 땅값이 어느 정도 올랐는지도 정확하게 평가해야 하는데 전국에 있는 수천만필지의 토지마다 잘 매겨질 수 있을까?

 

 

 

그 무엇보다 이 과세제도는 우리나라에서 한번도 시행해 본 적도 없고 외국에서도 없었다.

 

 

 

다만 필자가 알기로는 유일하게 영국에서 노동당 집권 때인 지난 64년경부터 5년간 토지개발세(D.L.T : Develop Land Tax) 제도를 시행해 보았는데 토지평가의 어려움 등으로 69년도에 폐지된 세금제도라는 것만 어렴풋이 알고 있을 뿐이다.

 

그 때부터 필자는 주어진 환경에 최선을 다하기 위해 다른 직원보다 빨리 출근하여 그날 직원들에게 맡길 일들을 미리 챙겨 일을 배분해 주는 등 일사불란하게 추진해야 할 처지에 놓인 것이다.

 

 

 

잠시도 여유를 가질 수 없는 상황이었다.

 

 

 

무엇보다 우리 팀과 업무파트너 관계에 있는 재무부 세제실과는 유기적인 협조와 정보 교환이 시급했다. 참고로 당시 재무부 담당과장은 김진표 재산세제과장으로 필자와는 과거부터 친분이 있는 터라 일하기가 편했다.

 

 

 

필자도 누차 강조했지만 제무부에서도 신설된 토지초과이득세의 핵심은 무엇보다 집행에 어려움이 없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수시로 만나 ‘도상(圖上) 연습’도 해 보았다. 그러기 위해서는 토지 종류별로 샘플을 선정해 일일이 현장을 다녀봐야 하는 것이었다.

 

그 때 비록 5~6개월의 짧은 기간이었지만 단위당 업무량을 따지면 아마도 내 생애에 있어 가장 많은 일을 하지 않았나 생각한다.

 

 

 

아무런 참고 자료도 없이 오로지 12년 동안 체험한 실무 경험을 바탕으로 여기에 과거 내무부 시절에 잠깐 시행되었던 ‘토지과다보유세’ 자료 등을 참고해서 향후 90년부터 3년간 국세청에서 추진해야 할 일정(로드맵)을 정성껏 만들어 국세청장을 거쳐 청와대 등에 보고했다.

 

 

 

또 틈만 나면 부동산 투기업무의 총괄부처인 건설부(토지국) 회의에도 참석하여 관련 정보를 수집하는 등 정말 눈코 뜰새 없을 정도였다.

 

 

 

여기에다 퇴근 후가 되면 정부 각 부처 조직업무를 전담하는 총무처 조직국 간부들과 토지초과 이득세 시행에 따른 국세청 인력 보강과 본청, 서울청 및 중부청 등에 재산세국을 신설해야 하는 조직보강 문제를 놓고 밤새 머리를 맞대기도 했다.

 

이런 바쁜 상황에서도 직속상관 이건춘 과장과는 호흡이 잘 맞아서인지 몰라도 비록 몸은 피곤했지만 정신적 스트레스는 받지 않아 참으로 편안하게 일을 할 수 있었다.

 

훗날 국세청장과 건설부장관을 거쳐 지금은 국세청 출신 모임인 국세동우회장으로 계신 그 분께 다시 한번 고개 숙여 감사드린다.

 

그리고 당시 업무 파트너였던 김진표 과장 그 분과는 그 일을 계기로 지금까지 더욱 각별한 사이로 잘 지내고 있으며, 훗날 경제부총리와 교육부 총리를 거쳐 야당의 원내대표까지 지내신 그 분의 탁월한 경륜과 훌륭한 인품에 대해 지금도 무한한 신뢰를 보내고 있다.

 

아무튼 토지초과이득세(토초세)인지? 초과토지이득세(초토세)인지? 어느 말이 맞는지는 모르겠지만 그 때도 내 평생에서 결코 잊지 못할 순간들이었다.

 

 

 

그 후 말도 많고 탈도 많던 그 토지초과이득세법은 실현되지 아니한 이익에 대한 과세라는 문제로 94년경 헌법불합치 판정으로 98년에 폐지된 것으로 알고 있다.
-매주 水·金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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