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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독하기 2025.06.20. (금)

내국세

[연재]'나는 평생 세금쟁이'(27)

3수끝에 낙이 오다

삼수(三修)끝에 사무관 승진

 


85년 신년 초, 아버지의 장례를 마무리하고 다시 평상으로 돌아왔다. 출근해 보니 모시고 있던 국장과 과장께서는 나를 보고 위로의 말씀을 해주셨다.

 

“자네 정말 억울하게 됐네. 그래서 국세청장께 억울한 사연을 말씀드렸더니 당장 총무처에 1명을 더 뽑겠다고 해보라 하셔서 협의를 했으나 총무처 입장은 사정은 딱하지만 일단 합격자 발표가 난 뒤라 곤란하다고 하네.”

 

그러시면서 “불원간 사무관을 더 뽑을 예정이라네. 그 때를 대비하라”고 하셨다.

 

그런 위로를 받았는 데도 한두달 가량은 손에 잡히는 것이 없었다. 만사가 괴로웠다.

 

그렇다고 지금 어떻게 할 수 있겠는가? 하루 빨리 괴로움을 잊는 것이 상책이다.

 

다행히도 당시 나에게 주어진 업무가 워낙 많아 하루 이틀 일에 파묻히다 보니 자연스럽게 그런 고통의 순간들을 이겨낼 수가 있었다.

 

참고로 그때가 본청에 들어온 지 어언 8년이 지났다. 그동안 내가 생각해도 정말 많은 일을 한 것이다.

 

그 중 하나가 양도소득세 업무절차를 완전히 바꾼 일이다.

 

과거에는 부동산 등기자료를 수집해서 이를 세무공무원이 수동으로 과세자료전으로 만들어서 주소지 세무서로 보내고 또 주소지 세무서에서 그 자료에 의해 수동으로 양도소득세를 결정고지하는 원시적인 업무절차를 거치다 보니 많은 부작용이 있었다.

 

보다 손쉽게 자동화해 볼 수 없을까 하고 많은 궁리를 했다.

 

그래서 이 모든 업무 시스템을 전산으로 바꾸어 보면 어떨까 해서 윗분들에게 말씀드리고 전산실 요원들과 합력하여 T/F팀을 구성했다.

 

몇개월간의 고된 작업 끝에 드디어 81년 2월부터는 등기소로부터 부동산 등기 자료를 수집하여 바로 전산실로 보내어 거기서 양도소득세 고지서를 직접 납세자에게 보내는 완전한 전산화 시스템을 만들게 된 것이다.

 

참으로 편리했다. 세무행정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시켰다고 자부한다.

 

무엇보다 그동안 수동으로 작업하는 과정에서 감사원 감사를 비롯한 각종 감사에서 많은 지적을 받았었는데….

 

그 때 필자와 함께 작업팀에서 많은 고생을 한 세금쟁이는 다름 아닌 2년전 대구지방국세청장을 끝으로 명예퇴임한 권기룡 청장이었다.

 

 

 

 

'나눔과 섬김으로 감동을 주자'를 주제로 사회 각계각층에 수많은 특강을 해 온 조용근 천안함재단 이사장. 그는 소외계층의 고통에 귀 기울이고 이들을 사랑으로 보듬어 줄 것을 강조해 왔다.<2011년 3월, 서울시 서초구 거주 중증장애인에게 음성자동인식기를 전달하고 있다>

 


이렇게 모든 업무절차가 전산화됨에 따라 관련 업무규정인 ‘재산제세조사 사무처리규정’을 전면 개편하여 재산제세 종사직원들에게 교육시키는 등 필자가 감당해야 할 일들이 너무나도 많았었다.

 

매일매일을 그런 복잡한 업무에 파묻혀 지내다 보니 금새 6개월이 흘렀다.

 

그 시점 어느 날 또다시 사무관 시험이 있다는 소식이 들린 것이다.
이번에는 그런 실수를 범하지 말아야지 하고 틈틈이 시험 준비를 했다.

 

드디어 85년 중반에 두번째 시험을 치뤘다.

 

그런데 이게 웬 일인가? 첫번째 시험처럼 또 0.03이 모자라 불합격됐다는 것이었다.
이번에도 첫번째와 마찬가지로 필기점수(80%)는 합격하고, 내신성적(20%)에서 떨어졌다는 것이었다.

 

왜 이런 똑같은 현상이 두번씩이나 나에게 오는 것일까? 그때 주위에서 비통해 있던 나에게 이런 말을 해주었다.

 

“자네! 삼재(三災) 중(中)에 있네”

 

나는 그 뜻을 잘 몰랐다.

 

지난해 첫번째 시험에 떨어지고, 뒤이어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이번에 또 떨어지고…. 진짜 삼재(三災)일까? 그때부터 나 자신이 얼마나 초라해 보이던지….
마냥 죽고 싶은 심정이었다.

 

 

 

먼저는 아내를 볼 면목이 없었다. 그리고 가족들, 또 무엇보다 주위 직원 동료, 선배 심지어 상사들에게까지 얼굴을 들 수가 없었다.

 

그때 필자는 심한 자괴감에 빠졌었다. 사무실에 출근하는 것조차 싫었다. 일도 손에 잡히지 않았다. 하루종일 멍하게 정신 나간 사람처럼 행동했다.

 

그 때 나는 ‘세무공무원 생활을 그만두고 세무사 개업이라도 할까?’라는 생각도 했다.

 

 

 

할 수 없이 아내와 상의를 했다.
그 때 아내는 늘 불안한 세무공무원 가족으로 사는 것보다 차라리 편안하고 자유로운 민간인 신분으로 살자고 제의해 왔다.

 

그래서 깊이 고민하고 있던 중 어느 날 모시고 있던 조중형 직세국장께서 필자를 불러 따뜻한 위로의 한마디를 해주셨다.

 

“조용근씨, 마음고생이 심하지? 나도 그 심정 이해하네. 그러니 딱 한번만 더 기회를 줄 테니 최선을 다해보게, 마지막 삼세판이네”

 

뜻밖의 말씀이었다. 국장실을 나온 나는 화장실에 가서 대성통곡을 했다. 그 따뜻한 말씀 한마디에 그만 울음이 나왔던 것이다.

 

그 후 마음을 가다듬고 낮아질 대로 낮아진 내 모습을 보면서 하루하루를 지내고 있는데, 몇개월 후 또다시 사무관을 뽑는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두번째 시험 후 약 6개월이 지난 시점이었다. 희한한 일이었다. 왜 이렇게 전에 없이 시험을 자주 보게 되는지….

 

그래서 그 때부터 나는 집으로 퇴근하지 않고 사무실 인근 여관에 방 한 칸을 빌려 시험 준비를 했다. 그리고 이것이 마지막이라고 생각하고 최선을 다했다.

 

그 후 시험을 마치고 초조한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던 어느 날 퇴근하여 집에 도착해 보니 온 식구들이 기뻐하며 ‘합격’이라며 환호했다.

 

나와 함께 응시했던 같은 또래 동료가 기쁜 소식을 조금 전에 전화로 전해 준 것이었다.

 

나중에 알게 되었지만 나는 몇 번째 등수 안에 들어가는 꽤나 높은 점수로 합격했다.

 

그 때 내 머리에는 그동안 나에게 일어났던 일들이 주마등처럼 지나가는 것이었다.
무엇보다 아버지께 마지막까지 효도해 드리지 못했던 점, 또 동료 후배들에게 볼 면목이 없어 괴로워했던 일 등이 스쳐가는 것이었다.

 

또 필자는 나름대로의 큰 깨달음이 있었다.

 

이것은 내가 믿고 있는 하나님께서 최근 1~2년 사이에 일어난 일련의 괴로운 일들을 통해 철저하게 나를 훈련시켜 가면서 더욱 낮아지라는 교훈을 주신 것이라는 신앙적 확신이 들었다.

 

이튿날 출근해서 국장과 과장 그리고 모시고 있던 간부들에게 그동안 마음 써주셔서 감사하다고 큰절을 했다.

 

그리고 그동안 누구보다 필자를 격려해 주셨던 지창수 국세청 차장께 인사를 드렸더니 진정 어린 격려를 해 주셨다.

 

“조용근 사무관은 다른 사람들보다 1~2년 늦게 합격했지만 그 사람들보다 더 빨리 승진할 수 있을 것이네. 아무 걱정하지 말고 맡은 일이나 열심히 하게.”

 

그때 필자에게는 세금쟁이 전(全)인생에서 가장 큰 고통의 순간들이였다.

 

그때 필자의 나이 40세였으며, 세금쟁이 20년째였다.

 

 -매주 水·金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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