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을 빙자해 미혼 여성들을 상대로 수억원대의 돈을 가로챈 서울 강남의 유명 어학원 강사가 경찰에 붙잡혔다.
20일 서울 송파경찰서에 따르면 28세의 임모씨는 지난해 8월12일 모바일 소개팅 애플리케이션을 통해 K(26·여)씨를 처음 알게 됐다.
K씨는 미국 명문대를 졸업한 강남의 유명 어학원 강사라고 밝힌 임씨의 말을 철썩같이 믿었다. 임씨가 카카오톡으로 언론 인터뷰 기사와 잡지 표지모델 이력을 사진으로 상세히 찍어 보내줬던 탓이다.
K씨는 나흘 뒤 임씨와 첫 만남을 가졌고, 연인으로 발전했다.
그러나 사귄 지 얼마 안돼 임씨는 K씨에게 결혼을 약속하며 "위례 신도시 분양아파트를 사들여 재분양해 결혼 자금을 마련하자"고 제안했다.
여윳돈이 없던 K씨는 대부업체 대출을 6차례나 받아 임씨에게 대출금 전액을 고스란히 건네줬다. 1금융권 마이너스통장까지 개설하기도 했다.
K씨는 이때까지 미국 영주권자여서 대출을 받을 수 없다는 임씨의 거짓말을 곧이곧대로 믿었다.
임씨의 사기는 계속됐다. "채권 투자로 큰 돈을 벌 수 있다더라"고 K씨를 꾀어낸 후 채권업자를 알선해주고선 대출을 받게끔 유도했다. 이렇게 K씨가 임씨에게 갖다 바친 액수만 2억700만원에 달한다.
하지만 K씨는 같은 해 10월30일께 임씨로부터 갑작스런 결별 통보를 받게 됐다. 억울한 K씨는 임씨에게 결별 이유를 따져 물었고, 임씨가 한 달 전 다른 여성과 결혼해 스위스로 신혼여행까지 다녀 온 사실을 알게 됐다.
당시 임씨는 '업무상 해외출장'이라며 신용카드 4장으로 빌려가 1700만원을 사용한 터라 K씨의 충격은 더 컸다. 임씨가 필요하다던 업무 추진비용이 신혼여행 경비였던 셈이다.
K씨는 임씨가 자신의 대출 한도액과 신용카드 현금서비스 한도액이 초과해 더이상 돈을 융통할 수 없게되자 결별을 요구했음을 뒤늦게 알아차린 후 경찰에 신고했다.
경찰 조사 결과, 2013년 7월 영어교육 사업을 벌이다 2억원이 넘는 빚을 지게 진 임씨는 K씨에게 계획적으로 접근한 뒤 돈을 가로챈 것으로 드러났다.
K씨 외에 또다른 여성 1명에게도 같은 수법으로 5100만원을 뜯어낸 정황도 포착했다.
임씨는 2009년부터 같은 죄로 3번의 실형을 선고받은 전력이 있었다. 2012년 5월께 출소한 뒤 2년8개월만에 다시 철창 신세를 지게 된 것이다.
임씨는 경찰 조사에서 "연인 관계였으나, 결혼하자고 얘기한 적이 없다. 돈도 투자 명목으로 받았을 뿐"이라며 범행을 부인했다.
장광호 송파서 경제범죄수사과장은 "동종 전과가 있는 임씨는 아무런 죄 의식 없이 혼인을 빙자해 미혼여성을 상대로 농락하며 돈을 편취해오고도 반성의 기미가 전혀 없다"고 말했다.
경찰은 임씨를 사기 혐의로 구속하는 한편 임씨로부터 사기당한 여성이 더 있을 것으로 보고 여죄를 추궁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