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네! 제대로 한 건 했네”
이 참에 부족한 세금쟁이지만 사랑하는 후배들에게 자랑할 것이 한 두 가지 있어 지금 지면을 빌어 고백하고자 한다.
당시 국보위 파견근무 중에 일어났던 일이다. 지금도 그런 경향이 있지만 신군부 실세들이 집권하고 있던 그 당시에도 세금쟁이에 대한 인식은 퍽이나 부정적이었다.
당시 파견지에서 내가 모시고 있는 국보위 재무위원회 간사위원께서는 비록 영관급 장교였지만 핵심 실세였다.
특별한 지휘보고 없이도 당시 국보위 위원장에게 직보(直報)가 가능할 정도였으니….
그런데 그 분께서 자기의 초급 장교 시절때 일을 가끔 언급하셨다. 친한 친구가 같은 지방에서 세무공무원으로 근무하고 있었는데 그 친구의 아들 돌잔치에 초대받아 간 적이 있었단다.
그 때 친구 집에 가보니 상다리가 부러질 정도로 지나치게 음식이 많이 차려진 것을 보고 “역시 세무공무원의 생활은 다르구나” 하고 느꼈다는 것이다.
그 때부터 그런 선입견이 그 분 머리 속에 깊이 박혀 있었는지는 몰라도 세무공무원에 대해서 굉장히 부정적이었다.
게다가 당시 국보위의 많은 위원들도 자기 생각과 같다는 것이란다.
그래서 사정기관을 총동원해서라도 세무공직자 정화 차원에서 서울시내 몇 개 세무서를 집중감찰을 해야겠다는 것이었다.
그 말을 들은 필자는 당황했다. 어떻게든 빨리 이 일을 수습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먼저 이 분을 설득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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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근 천안함재단 이사장은 국내뿐만 아니라 국외에서도 나눔과 봉사를 실시하며 우리나라의 위상을 높이고 있다.<2008년 7월, 북경에서 중국쓰촨성 지진피해 복구 성금을 전달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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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 사무실에 그 분과 단 둘이 있을 때 조용히 말씀드렸다.
필자가 그동안 겪어왔던 세무공무원으로서의 애환과 또 어느 조직이든 일부 몰지각한 공무원은 존재한다는 것과 무엇보다 이런 부조리 문제를 땜질하는 방법으로 물리적 제재를 가하는 것보다는 근본적인 예방장치가 필요하다고까지 말씀드렸다.
그러면서 그동안 내가 겪었던 일선 세무공무원으로서의 고충들을 털어놓았다.
세금을 거두어 들이는데 세무공무원 개인적인 재정 부담이 많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출장비나 소모품비를 비롯해서 심지어 체납세금 징수를 위해 지방자치단체에 재산 조회를 하게 되는데 답변 문서를 빨리 받기 위해서 비공식적으로 비용이 들어가는데 이런 것들까지도 세무공무원이 개인적으로 부담해서야 되겠느냐?
지금이야 전산시스템이 잘 구축되어 있어 그런 문제는 없지만….
그리고 지방국세청장이나 세무서장은 물론이고 간부나 직원들이 지방으로 발령받으면 다른 부처와는 달리 국가에서 운영하는 관사나 사택도 없으니 부득이 자기 부담으로 거소를 마련해야 한다는 이야기도 아울러 말씀드렸다.
그러면서 “얼마간의 말미를 저에게 주시면 제도 개선방안을 마련해 별도로 보고드리겠다”고 했더니 그분도 일응 수긍을 하시는 것 같았다.
또 때맞춰 국세청으로 달려가서 국보위의 이런 분위기를 말씀드렸다.
그리고 내 나름대로 몇몇 일선 동료 선배들의 도움을 받아 현실적으로 일선 세무공무원들이 직접 부담하고 있는 경비관련 보고서도 직접 만들어 그 분에게 사실대로 보고드렸다.
보고를 받으신 그 분도 꽤나 놀라는 표정이었다.
그러면서 당시 국세청의 오랜 숙원사업이었던 지방청장과 세무서장 관사 확보에 소요되는 예산 지원(지금 기억으로는 25억원인 것으로 추정)건에 대해서도 보고드렸다.
그랬더니 그 분께서 이 문제를 해결해주면 세수를 얼마나 늘릴 수 있겠느냐고 말씀하셨다.
“아마도 10배 이상은 늘어날 것입니다”라고 자신있게 말씀드렸다.
다행히 그 분은 재무위원회 간사위원으로 오시기 전에 예산부처를 담당했던 소관위원회 간사위원으로 계셨다고 하시면서 필자가 보는 앞에서 바로 경제기획원 고위 관료에게 전화를 하시는 것이었다.
그 때 전화 상대방의 음성이 수화기 밖으로 또렷이 들렸다.
“예. 간사님! 적극 검토해 보겠습니다.”
그때 나는 이것이 꿈인가 생시인가 할 정도로 놀랐다.
그 후 그 분의 적극적인 관심과 지원으로 오늘날 지방국세청장이나 세무서장 관사를 비롯한 간부들의 숙소 확보 문제가 해결된 것으로 알고 있다.
그 때 필자는 “역시 화끈한 분이시네, 또 오직 나라만을 위해 일하시는 훌륭한 분이시네. 만약에 그자리에 민간인 공직자가 계셨다면 어땠을까?” 생각했다.
그 때부터 필자는 그렇게 시원하게 일사천리로 국세청의 오랜 숙원사업을 단칼에 해결해 주신 신군부정권에 개인적으로 박수를 보내기도 했었다.
또 필자는 그런 과정을 거치면서 또다른 진리 하나를 깨우쳤다.
모름지기 공직자는 내가 어느 계급(직책)에 있었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비록 직급은 낮더라도 어떤 일을 했느냐가 중요하다는 것을…,
그리고 그때 더 놀란 것은 그 분께서 계획하셨던 몇개 세무서 집중 감찰문제도 없던 것으로 했다.
물론 당시 국세청에서도 조직적으로 그 위기를 잘 대처했었지만 나도 담당 실무자로서 내 역할을 잘 했었다는 자부심을 가졌었다.
나는 지금도 잊지 않고 있다. 그때 그 절박한 상황들과 또 해결되는 과정들을….
그 후 이런 일련의 상황들을 종합해서 김수학 당시 국세청장께 보고드렸더니
“조용근! 자네가 제대로 한 건 했네”
몇달후 국보위 파견근무를 마무리하고 국세청으로 원대복귀하니 당시 6급 세금쟁이로서는 생각할 수 없는 대통령 표창과 함께 보름간의 미주지역 선진세정 견학을 위한 해외출장 기회까지도 배려해 주셨다.
아마도 이렇게 파격적으로 격려해 주신 것은 그동안 내가 제대로 한건 한 것에 대한 보답이라고 생각했다.
“진심으로 고맙습니다. 국보위에서 오로지 국가를 위해 밤낮으로 헌신하셨던 오관치 간사위원님! 지금도 잘 계시지요? 꼭 한번 찾아 뵙고 큰절 올리겠습니다.”
-매주 水·金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