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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독하기 2025.06.20. (금)

내국세

[연재]격동기 국세청 30년, 담담히 꺼내본 일기장(35)

성실납세 토대 주제 박사학위 논문 구상

하프타임, 나의 공직 안식년

 

 

 

양재동 일동제약빌딩의 몇개층에 세들어 있는 한국조세연구원은 재경부 산하 국책연구원으로 주로 경제학과 조세법을 전공한 석․박사들이 연구원으로 포진돼 있었고 당시 원장은 종전 한국외국어대학 교수인 최광(崔洸) 교수(후에 보건복지부 장관 역임)가 맡고 있었다. 최 원장은 연구원을 연구원답게 발전시키려고 매사 빈틈없이 열정을 쏟고 있었다.

 

파견국장들은 재무부, 국세청, 관세청, 내무부 등 국세와 지방세를 담당하는 정부 부처에서 파견된 국장들로 이뤄져 있었으며 조그마한 칸막이 독방을 배정받아 쓰고 있었다.

 

이들 국장들은 특별히 해야 할 일이 없어서 각자 자유롭게 자기 시간을 쓰고 있었다.
대개는 아침에 출근하면 어느 한 국장방에 모여 티타임을 갖고 세상 돌아가는 한담 등으로 오전을 보내고 점심도 함께 모여 먹은 다음 오후 스케줄은 각자 자기 좋은 대로 보냈다.

 

 

 

나는 이 기회가 내 공직생활에서 유일하게 주어진 하프타임(half time)으로 생각하고 모처럼 맞은 안식년답게 심신의 휴식을 취하면서 학습의 재충전 기회로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1992년9월15일 개원한 한국조세연구원은 한국조세제도 발전의 싱크탱크역할을 부여받았다. 따라서 국세청에서도 유능한 인재들이 조세연구원에 파견돼 조세제도 연구에 힘으 보탰다. 당시 장춘 씨를 비롯 이목상·이재홍·이재광·배양일씨 등이 국세청에서 파견됐다. 사진은 개원때 한국조세연구원 간판을 걸고 있는 모습. 좌로부터 차병권 서울대 교수, 이용만 재무부 장관, 정영의 초대 한국조세연구원장, 김용진 재무부 세제실장. <세정신문DB> 

 


 박사학위 논문제목을 정하다

 

 

 

나는 지난 3년간 현직에 있으면서 동국대 일반대학원 박사과정(행정학 전공)을 이수했기 때문에 조세연구원 파견기간에 박사학위 논문을 끝내야겠다고 결심하였다.

 

처음부터 이렇게 내가 나의 시간을 계획해 나를 구속시키지 않으면 누군가에게 또는 무엇인가에 끌려 다니면서 귀한 시간을 소진해 버리고 뒤에 가서는 후회하게 되리라고 생각됐다.

 

내가 매일 오전 국장들 티타임에 빠진 것에 대해 점점 썰렁한 분위기가 감지됐으나 나는 전혀 개의하지 않았다.

 

파견 국장들을 공동으로 돌봐주는 여직원이 있었는데 내가 쓴 논문 초안을 워드프로세서로 재정리하는 일을 잘 도와주었다.

 

나는 학위논문이란 그 논문을 통해서 관련 학문의 이론적 발전에 기여하든지, 아니면 그 논문을 통해서 현실문제를 해결하는 실천적인 정책대안을 제시하든지, 이 두가지 중 어느 한 가지를 목표로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나는 국가의 공직자로서 당연히 우리 행정 현실문제 중에서 해결해야 할 과제를 선택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생각했다.

 

나는 한국개발연구원(KDI) 송대희(宋大熙) 박사(나의 행시 동기, 후에 한국조세연구원장 역임) 등을 찾아다니며 참고되는 의견을 청취하고 논문 제목을 모색했다.

 

드디어 나는 어떻게 하면 정부가 과세의 기초가 되는 정보자료를 체계적으로 수집해 과세에 활용할 수 있겠는가 하는 것을 연구제목으로 정했다.

 

‘기초과세자료 산출체계 확립에 관한 연구’가 바로 논문 제목이 되었다. 

 

내가 논문 제목을 이렇게 정한 배경은 미국 유학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미국 국세청의 조세행정목표는 어떻게 하면 자발적인 성실신고의 수준을 제고 할 것인가(how to increase the degree of voluntary compliance)에 있었다.

 

다시 말하면 납세자들이 스스로 정직하게 신고하도록 한다는 것이었다.

 

 

 

실제 상황에서 정직신고비율은 90% 수준에 이른다고 했다. 이렇게 높은 정직신고비율에 대하여 사람들은 흔히 미국 국민은 정직하기 때문이라고 대답했다.

 

그러나 80년 유학시절 내가 경험한 바로는 미국에서도 의사 등을 비롯해서 수많은 탈세사건이 끊임없이 보도되고 있었다. 이것은 탈세가 가능한 영역에서는 어느 곳에서나 탈세를 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고 있었다.

 

따라서 미국에서 정직신고 비율이 높다는 것은 미국 국민이 도덕적으로 매우 정직하기 때문에 정직한 신고를 한다는 뜻이 아니고 정직하게 신고하지 않으면 적발될 수밖에 없는 사회적 시스템 때문에 정직하게 신고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미국 납세자들이 정직하게 신고할 수밖에 없도록 만든 제도적 장치가 무엇일까?

 

그것이 바로 제3자 정보보고제도(TPIRS: Third Party Information Reforting System)라는 것이었다.

 

어떤 사람의 소득이 되는 돈을 지급하는 자는 지급정보를 일정서식에 담아 일정기한까지  미 국세청에 보고하는 제도가 바로 이것인데 그 대표적인 것이 우리나라 세제에도 도입돼 있는 근로소득세 원천징수제도가 바로 제3자정보보고제도의 전형적인 예라 할 수 있다.

 

그런데 미국에서는 지급자 정보보고제도가 우리나라에 비해 훨씬 광범위하게 설계돼 있어서 미 국세청은 매년 4월 소득세 신고 이전에 어떤 특정납세자의 소득관련정보를 전산실에서 집계, 파악하고 있기 때문에 납세자는 정직한 신고를 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우리나라의 경우도 미국의 제3자 정보보고제도와 같이 어떻게 하면 과세기초가 되는 정보자료를 체계적으로 산출, 수집해 이를 과세에 활용할 수 있을까 하는 고민 끝에 앞에서 말한 제목으로 연구주제를 정했다.

 

<계속>-매주 月·木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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