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급 세금쟁이, 우연히 국세청장과 함께 목욕(?)
필자가 본청으로 전입된지 6년 가량 되었을 즈음에 당시 군부(軍部)에서는 제5공화국 건립을 위해 소위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줄여서 ‘국보위’ 라 했다)를 조직하고 국정쇄신 30대 과제를 제시했다.
또 구체적인 작업을 위해 재무위원회 등 국정 분야별로 소위원회를 구성하여 운영하였는데, 국세청 업무 소관인 재무위원회 간사위원실로부터 세무행정에 밝은 실무자 한 명을 파견해 달라는 요청이 왔다.
그 때 특별히 필자를 지명하여 요청한 것이다.
영문도 모른 채 당시 종로구 삼청동에 있는 국보위 재무위원회 간사위원실로 갔다.
그 때 그 방에는 오혁주(작고) 당시 부산지방국세청 간세국장께서 이미 파견근무를 하고 계셨다. 나중에 알았지만 오혁주 국장께서 간사위원에게 나를 추천하여 지명하신 것이었다.
참으로 묘한 인연이었다.
지난 68년 5월, 대구에서 서울 동대문세무서 조사과로 전입되었을 때 처음 만났으며, 그 후 중부세무서 개인세과장으로도 모셨다.
무엇보다 필자의 이름으로 공무원 아파트를 분양받아서 잠시나마 그 아파트에서 함께 거주한 적도 있었는데, 어언 십여년이 흘러 이렇게 국보위에서 같은 팀이 되어 함께 근무하게 될 줄이야…,
그때 우리 팀에 주어진 작업은 ‘조세행정 개혁방안 마련’이었다.
그래서 몇달간에 걸쳐 각종 불합리한 조세제도와 아울러 비효율적인 세무행정에 대한 혁신책을 함께 마련하라는 것이었다.
한마디로 세금정책과 관련한 모든 실천 가능한 개혁방안을 마련해서 보고하라는 지시였다.
담당 실무자였던 필자는 당시 국세청으로부터 많은 자료 협조도 받았으며, 또 내 나름대로 그동안 겪었던 각종 불합리한 사례들을 토대로 하여 기업인과 심지어 뜻있는 세무사들도 많이 만났다.
또 효율적인 업무 추진을 위해 국보위 사무실보다는 별도의 사무실을 임차하여 밤낮으로 그 곳에서 일했다.
무엇보다 집에 가서도 내 머리 속에는 온통 조세행정에 대한 개혁방안만이 가득 차 있었다.
그러다 보니 밤잠을 설칠 때가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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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근 천안함재단 이사장은 6.25 전쟁때 유년 시절을 보내며 가난의 무서움과 나눔의 소중함을 실감했다. 그는 이후 지속적인 봉사를 통해 '나눔전도사'라는 별칭을 얻었다.<사진은 2007년 8월, 마태목장 회원들과 함께한 소망의 집 봉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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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던 어느 토요일 오후에 며칠간 밤샘근무를 한 탓에 몸이 너무 피곤해 지쳐 있었을 때 당시 간사위원과 오혁주 국장께서 어디 가서 좀 쉬었다 오라고 말씀하셨다.
그래서 평소 친하게 지내던 세무서 친구와 함께 강남구 신사동에 있는 Y호텔 사우나탕에 들어가 모처럼 홀가분한 기분으로 목욕을 하고 있는데 갑자기 당시 국세청장께서 발가벗은 몸으로 목욕탕 안으로 들어오시는 것이 아닌가.
얼마나 놀랬던지….
그 친구는 그만 겁을 먹고 현장을 피해 버렸고 목욕탕 안에는 그분과 나 단 둘만 마주보고 있었다.
그때 국세청장께서는 나를 보시면서 “제가 최근에 압구정동에 있는 아파트로 이사를 왔습니다” 라고 말씀하시는 것이 아닌가?
그때 나는 정말 당황했다.
왜냐하면 지난 몇개월 동안 가끔 국세청장실로 가서 국보위에 파견된 우리 팀에서 추진하고 있는 업무에 대한 중간 진행사항을 보고드리곤 했었는데 국세청장께서는 내가 젊어서인지 몰라도 그만 국세청 출입기자로 착각하신 것 같았다.
더 늦기 전에 내 신상을 밝히는 것이 좋을 것 같았다.
“저는 직세국 소득세과에 근무하고 있는 6급 조용근입니다. 제가 몇개월 전부터 오혁주 국장님과 함께 국보위에 파견나가 있는데 며칠간 계속 밤샘근무 때문에 너무 지쳐 있으니 윗분들께서 잠깐 쉬다 오라고 해서 지금 목욕 중에 있습니다. 저는 본청으로 들어온 지 6년이 되었습니다만, 비록 몸은 피곤하지만 즐겁게 일하고 있습니다. 아마도 본청 근무가 체질에 맞는 것 같습니다”라고 말씀을 드렸다.
그랬더니 그분의 인상이 금새 달라지셨다.
내가 본청에서 근무하고 있는 당신의 직계 부하라는 말에….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그날 국세청에서는 국세청장으로서 매우 화가 난 사건이 하나 있었다.
서울시내 세무서 개인세과에 오래 근무하던 어떤 직원이 본청으로 인사발령이 나자 그만 사표를 냈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날 오전에 갑자기 직원 조회 겸 정신교육을 하신 후 곧바로 피곤한 몸을 이끌고 목욕탕으로 오신 것이란다.
그런데 엉뚱하게도(?) 나 같은 별난 직원을 만났으니…
그 사건 이후에도 나는 가끔 오혁주 국장을 모시고 국세청장실에 들릴 기회가 있었다.
그때 국세청장께서는 나에게 “어이, 조용근 주사! 우리 앞으로 목욕탕에서 만나면 서로 아는 체 하지 말자”라고 농담까지도 해 주셨다.
참고로 그 분께서 국세청장으로 취임하시면서 곧바로 비서실 직원들에게 앞으로 사무관 이하는 절대로 국세청장실에 출입시키지 말라고 하셨는데 이 사건 이후에 필자만은 예외로 하셨단다.
심지어 어떤 때는 양도소득세를 비롯한 상속세, 증여세 민원이 들어오면 나를 직접 부르시기도 하셨다.
왜냐하면 그분도 나처럼 말단 출신이셨다고 했다.
학벌도 없이 도청에서 심부름만 하는 사환(급사)로 출발하셔서 나중에는 경상북도 도지사를 지내시다가 또 국세청장으로 영전해 오신 정말 입지전적인 인물이셨다.
오랜 세월이 지난 후 가끔 전직 국세청 공무원 모임인 ‘국세동우회’에서 주관하는 신년하례식때 특별히 그분께서 참석하실 때는 주최 측에서 일부러 필자로 하여금 옆에 앉게 하여 그 분의 말동무라도 해 드리라고까지 배려해 주었다.
왜냐 하면 그 분께서는 그 때까지도 내 이름만은 꼭 기억해 주셨기 때문에….
“어이 조용근, 자네 잘 지내고 있나? 자네가 세무사회장이 되었다면서…”
환하게 웃으시던 그 모습,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나는 평생 세금쟁이로서 꼭 한 분의 ‘멘토님’ 으로 모시고 싶은 분이 있다면 다름 아닌 김수학 국세청장님이다.
나중에는 건설부장관도 하시고 토지개발공사사장, 새마을운동 중앙회장을 거쳐 말년에는 고향 경주에서 명예면장(?)까지도 하셨으니….
“몇년전에 90여세로 하늘 나라로 가신 나의 영원한 김수학 멘토님! 진심으로 뵙고 싶습니다. 그때 그 목욕탕에서…”
그러나 이제는…
-매주 水·金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