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상초유 강도 높은 불성실사업자 조사
한편 신고후 사후교정은 엄격하게 시행하기로 했다.
종전의 지역담당제 대신에 종목별 세원관리팀을 가동해 과세정보를 수집·분석하게 하여 과소신고 혐의가 명백한 경우에는 1차적으로 제시된 근거에 의해 수정신고를 유도하도록 했다.
2차로 수정신고에 불응하거나 상습적인 탈루혐의가 있는 불성실사업자에 대하여는 외형 뿐만 아니라 손익까지 포함하는 통합조사를 실시하되, 고질적인 탈루 혐의자에 대하여는 조세범으로 고발한다는 강력한 방침을 세웠다.
규모가 큰 법인사업자 등에 대해서는 지방청 직세국과 간세국에서 직접 조사하도록 했고 지방청에서 일선 세무서 조사분에 대한 중간보고를 받도록 했다.
당시 전체 사업자의 0.09%에 해당하는 2천81명이 특별조사를 받았다.
95년 2월 중순부터 3월 중순까지 1개월 이상 조사를 했는데 이렇게 대대적인 세무조사는 세정사상 처음 있는 일이었다.
지방마다 그 지역에서는 규모가 있는 사업자들이 조사대상이 되다 보니 지역구 국회의원들을 통해 집권당인 민자당과 청와대 민정비서실 등으로부터 불만 섞인 항의가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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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부가가치세 신고가 자율신고제로 전환 된 후 ‘자율’을 효과적으로 견인하기 위해서는 불성실 신고자에 대한 철저한 사후 검증 관리가 필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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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조세범칙 처리규모를 가급적 최소화하는 방향으로 조절하면서 불성실 사업자 특별조사를 마무리했다.
부가가치세 행정을 자율신고체제로 전환하는 대신 엄정한 사후 교정시스템을 구축해 일벌백계로 운영하는 방향 그 자체는 세정이 지향해야 할 올바른 목표임에는 틀림이 없었다.
그러나 조세마찰을 예상하고 단계적으로 업종별 조사대상을 확대해 나갈 것임을 예고하면서 물의를 최소화하는 방향으로 업무를 추진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있었다.
당시 나의 업무로 노트에는 이런 글귀가 메모 되어 있다.
‘일을 계획할 때는 강유(剛柔)를 겸하고, 경중(輕重)을 저울질하고, 대소(大小)를 분간하고, 원근(遠近)을 잘 측정하고, 다소(多少)를 헤아려야 한다. 이러한 계책을 계수(計數)라고 한다’<管子 제6편7>
이 조사기간 중 어느 날 저녁시간이었다. 내 사무실 테이블에서 전화벨이 울렸다.
수화기를 받아 들자마자 상대방은 격앙된 목소리로 ‘이 개XX야, 니가 과장이냐, 종업원 봉급 줄 돈이 없어 하루 종일 뛰어 다니다 회사에 들어 오니 세무조사라고? 야, 이 개XX야’하는 것이었다.
나도 순간 질세라 ‘당신이 뭔데 욕지꺼리냐’며 맞대응했다. 그후 지금까지 이 일이 너무나 마음에 걸려 있다. 그때 왜 참고 그를 위로해 주지 못했던가 못내 통회하며 용서를 빌 뿐이다.
국세청 개청후 처음 시도한 신고후 사후교정 수단의 일환으로서 실시했던 불성실사업자 특별조사업무를 계획하고 진행관리를 하고 여기저기서 조세마찰음이 들릴 때 순발력 있게 대안을 제시 하는 등 나를 성심껏 보필해 준 송광조(宋光朝) 사무관(후에 서울지방청장 역임)의 노고를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95년4월27일 추경석 청장께서 내 자리로 직접 전화해 부이사관(3급)승진을 통보해 줬다.
행정사무관(5급)으로 공직을 시작한지 22년만에, 그리고 서기관(4급)으로 승진한 뒤 11년만에 군대로 말하면 별을 달게 된 것이다.
그 해 5월8일 대통령의 공식 발령장을 받았을 때 온갖 감회가 무량했다. 5월31일 추 청장은 수송동 청사부근 ‘중원(中苑)’에서 나를 포함한 부이사관 승진자(봉태열, 황수웅, 이영우 등)에게 일부러 축하 만찬자리를 만들어 격려해 주셨다.
<계속>-매주 月·木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