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몬태나의 여자-
여자는 꽃이 아니다
미국의 몬태나(Montana)주는 알래스카(Alaska), 텍사스(Texas), 캘리포니아(California) 에 이어 미국에서 네 번째로 큰 주로 우리나라의 근 4배 규모이다. 동서로 885Km나 된다. 그렇지만 인구는 무지하게 적어 1990년 센서스로는 80만 명에 조금 못 미친다.
캐나다(Canada)와 국경을 면한 이 주는 미국 대륙의 서부와 중부의 중간쯤에 위치해있어, 주의 반 이상이 록키산맥 등 산악지대로 뒤덮여 있다. 몬태나라는 이름도 산악지역(mountainous region)에서 따 온 것이라 한다.
통상 미국에서 몬태나 출신이라면 무지하게 깡촌 출신으로 보는데, 둘러보니 진짜로 깡촌이었다.
이 주의 북쪽에 있는 빙하국립공원(Glacier National Park)을 구경하고 89번 도로를 따라 남쪽으로 달려갈 때 일이다. 이 길은 고속도로가 아니고 그저 편도 1차선의 포장된 시골길인데, 얼마나 교통량이 없는가 하면, 뒷자리에 타고 있던 두 꼬마 애들이 하도 심심하다 보니 맞은 편에서 차가 오면 괜히 신나 떠들면서 그 숫자를 셀만큼 한산하다.
더욱이나 한심한 것이 시골길을 달리다 보면, 길가로 두더지나 새들이 곧잘 보이는데, 도로에서 종종 걸음으로 모이를 찾아 헤매는 새가 차가 쌩쌩 달려오는데도 겁이라고는 없이 쫑쫑쫑 길을 지나간다.
운전하던 내가 되레 놀라 그 녀석을 치지 않으려고 차를 이리저리 움직여야 되는 판국이다. 세상에 ! 무슨 새가 차를 보고 놀라지도 않냐?
한마디로 차 무서운 줄을 모른다는 게다. 그런데 웃기는 것은 그게 한두 마리만 그러는 게 아니니 그 깡촌 정도가 어느 정도인지 가히 짐작이 갈 것이다.
이 주의 수도는 헬레나(Helena)라는 인구 2만 명이 약간 넘는 도시에 있다. 우리 식으로 이해하자면 도청소재지가 읍 단위에 있는 것이다
내무공무원 티를 미국에서도 굳이 낸다고 부득부득 주정부 청사를 들어가 이리저리 구경을 해 보는데, 어느 회의장을 보니 온통 여자들만 소복히 앉아서 회의를 하고 있었다.
무슨 일인지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하여튼 청문회(hearing)를 하고 있다는데 높다란 의장석 하며, 증인석, 의원석 등 온통 자리란 자리는 여자들로만 빼곡히 차 있었다.
남자라고는 어리숙하니 구경하는 나 뿐인데, 웬 동양남자가 자기들 회의하는 것을 보는가 싶어 수많은 여인네들이 신기한 듯 도로 날 한 번씩 쳐다본다. 어색하니 씨익 웃고는 회의장을 지나쳤다.
그 때,몬태나 여자! 참으로 대~단하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었다. 면적으로 따지자면 우리나라보다 훨씬 큰 주인데, 그주의 최고 기구인 주정부 청사 회의장을 온통 여자들만 차고 앉아 정무를 논하고 있는 것이다.
드넓은 몬태나주를 다니다 보면, 길가에 ‘ㄷ’자를 엎어 놓은 꼴로 대문이랍시고 만들어 놓고는, 이마빡에다 ‘홍길동’목장(Ranch)이라 써 놓았는데, 여기서부터 울퉁불퉁 비포장 길을 따라 한참을 들어가야 까마득히 저 멀리 주인장 집 한 채가 보인다.
‘홍길동’목장을 지나 또 한참을 길 따라 달리다 보면, 이번에는 ‘김말순’목장이라는 문패와 대문이 보이고, 그 대문에서 또 한참을 들어간 곳에 주인장 집 한 채가 보이는 것이다. 이런 경우도 이웃이라고 이사 오면 떡 돌려야 할까?
사정이 이렇다 보니 각 가정에서는 남자든 여자든 각자가 주어진 일을 처리해 내야하고, 자기 몫을 다 못하면 다른 가족에게 초과부담의 일로 떨어지게 되니, 여자라고 남정네 뒤편에서 그저 온전히 지낼 형편이 못된다.
서부영화에서 아낙네도 상황이 급하면 소매를 걷어붙이고 장총을 잡고는 총을 쏴대는 장면이 곧잘 나오는 것이 바로 그런 연유에 기인하는 그네들의 한 생활상이기 때문이다.
주정부 청사든 어디든 여자도 남자와 똑같이 자기들 주장을 펴고 논하고, 주정부 업무에 반영시키는 것이고, 이는 새삼스레 이야기 거리가 되지 않을 정도로 지극히 당연한 일이라는 것이다.
여성우대 정책을 굳이 누가 전담하고 주도해야 여성이 우대받는 우리는, 몬태나 여자들과 비교해 볼 때, 유교윤리 이전에 우리나라의 자연환경으로부터 기인된 바 큰 게 아닌가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