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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독하기 2025.06.21. (토)

내국세

[연재]'나는 평생 세금쟁이'(21)

3년간의 혹독한 담금질 ‘큰 선물’

‘돌대가리 세금쟁이’에게 주어진 큰 선물

 

 

 

 

 

 

 

죄송한 이야기지만 필자는 능력도 학력도 당당하게 내놓을 것 없는 부족한 사람인데 내 스스로 생각해도 어디 가나 일 복 하나는 타고난 사람 같은 기분이 든다.

 

필자는 46년 ‘개띠’해에 태어났다. 어릴 때 어머니께서는 나에게 이런 격려를 자주 해주셨다.
“너는 개띠라서 부지런하게 살아갈 거다. 그러니 그저 건강하게 몸을 잘 관리해서 개처럼 마냥 뛰어 다니거라.”

 

그래서 그런지 몰라도 국세청으로 전입되자마자 나하고는 전혀 관계가 없을 것 같았던 부동산 투기업무를 직접 맡게 되었다.

 

 

 

그런데 불행히도 당시는 관련 법령이 제대로 정비돼 있지 않아 그때그때마다 행정지침을 만들어서 다스리는 땜질식 집행을 해 나가다 보니 몹시 힘이 들고 고달팠다. 낮에는 현장에서, 밤에는 밤늦도록 사무실에서 행정조치 마련 등 밤낮이 없을 정도였다.
또 틈틈히 관련기관에 보내야 할 보고서 작성과 국회 답변자료 작성 등 닥치는 대로 일을 하다 보니 식사하고 화장실 가는 시간 외에는 잠시라도 자리를 비울 수 없었다. 불안해 하시는 윗분들이 자주 찾게 되니까….

 

 

 

버스로 퇴근해서 밤 10시 가까이 돼서야 집에 오면 내일 해야 할 서류도 챙겨 봐야 했다.
그 다음날 정한 시간에 출근하여 상사가 출근하시면 바로 보고해야 하는 등 그야말로 눈코 뜰 새가 없었다.

 

 

 

 

조용근 이사장은 지난달 18일 저녁 엠베서더 서울호텔에서 한국기독교총연합회가 주관하는 ‘자랑스런 사회봉사인 상’을 수상했다. 이번 수상은 지난 4년간 천안함재단을 안정적으로 운영하고 천안함선체 견학투어, 해상안보 체험프로그램 등을 개발해 국민의 안보의식을 고취하였으며, 무엇보다도 재단의 재정운영 상황을 자체 홈페이지에 실시간으로 공개해 유리알처럼 투명하게 성금관리를 한 공로가 인정됐다.

 


그 당시는 야간통행 금지(밤 12시부터 새벽 4시까지)가 있었던 관계로 아무리 늦어도 밤 10시경에는 집으로 가야 할 형편이었다.

 

지금처럼 지하철이 제대로 연결되어 있지 않아 몹시도 피곤했다.

 

어떤 때는 버스 안에서 졸다가 내려야 할 정류장을 훨씬 지나 다시 되돌아오는 경우도 있었다.

 

이런 필자의 상황을 아셨던지 소득세 과장께서 78년 9월 직원들 진급때 국세청장께 말씀드려 7급 승진한지 3년3개월 밖에 되지 아니한 나에게 특별승진까지 시켜 주셨다.

 

 

 

세금쟁이로 입문한지 13년3개월만인 것으로 기억된다. 그것도 3년간의 군대 휴직기간을 빼면 실지 근무경력 10년만인 셈이다.

 

그 때 필자는 느꼈다. 진급에도 절대 공짜가 없다. 반드시 대가를 치뤄야 한다는 것을….

 

이렇게 몸을 내던져 일할 수 있었던 것은 다름 아닌 내 좌우명인 “절대로 안 된다고 하지 말자. 예! 열심히 해보겠습니다. 최선을 다해 보겠습니다”라는 긍정적 사고가 내 마음판에 깊이 자리잡고 있었기 때문이 아닌가 한다.

 

그런데 당시 모시고 있던 소득세 과장께서는 필자에게 특별히 ‘돌대가리’라는 말씀을 많이 하셨다. 물론 당신께서는 만만하다고 생각되는 직계 부하(?)에게만 하셨지만….

 

 

 

어떤 때는 업무를 지시하시면서도 당신 책상 앞에 한시간 이상씩을 마냥 세워두시면서 “야! 이 돌대가리야. 그렇게 머리가 안 돌아가나? 자, 이렇게 해와!” 하루에도 몇번씩 이런 말을 듣고 일을 했었다.

 

삼촌 같기도 하고, 큰 형님 같은 그 어른께서 그렇게 말씀하셨을 때 처음에는 가슴이 답답하고 불쾌했지만 희안하게도 한두시간 지나고 나니 금새 그런 기분이 사라졌다. 또 그분께서도 언제 그런 말했느냐? 하고 곧 잊어버렸다.

 

어쨌든 그분은 주어진 일에는 욕심이 많으신 분이라 일할 때는 정말 무섭고 혹독하게 나를 훈련시키셨다.

 

그런 과정을 자주 겪어가면서 다행인 것은 나 또한 업무능력이 점점 향상되어 가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또 “내가 능력이 부족해서 그렇지”라고 긍정적으로 생각하니 금방 평상심으로 돌아가 자연스럽게 일을 할 수 있게 되어 참으로 다행이었다.

 

그 때부터 나는 내가 맡고 있는 분야에서 보다 적극적인 사고를 가지고 윗분을 모셔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다.

 

또 내가 맡고 있는 업무 내용이 언론에 조금이라도 나면 즉시 사실을 확인하고 또 그 내용을 윗분에게 보고드리고 후속조치도 함께 취했다.

 

그렇게 일사분란하게 그 분과 함께 3년동안을 그런 식으로 계속해 왔었다.

 

그분 밑에서의 3년 동안의 혹독한 훈련을 통해 나는 공직 생활을 하면서 참모들이 기관장을 어떻게 모셔야 하는지를 내 나름대로 몸에 익히게 되었으니 얼마나 고맙고 감사한지 모른다. 지금도 그 때를 잊지 않고 있다.

 

3년 동안의  그런 인연으로 그 분과 헤어진 후에도 그 분은 필자를 진심으로 아껴주셨다. 어떤 때는 가족들의 안부까지 물어봐 주시고….

 

지금은 하늘나라에 가 계시는 그 분에게“감사합니다. 지금의 제가 있도록 혹독하게 훈련시켜 주신 김갑열 청장님! 부디 하늘나라에서 편히 쉬십시오. 사랑하고 존경합니다”라고 말씀드리고 싶다.
-매주 水·金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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