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환과 돈 주앙-
이름 소개도 국제적 감각으로
미국인들과 대화를 하자면 우선 서로 통성명을 하게 되는데,이것부터 쉽지가 않다. 영어를 사용할 때 돌아가는 입모양과 한국어를 쓸 때 돌아가는 입모양이 원천적으로 다르기 때문이다. 우리가 우리식 표기법으로 한글 이름을 영문으로 써 놓으면 웬만큼 한국인을 자주 접하는 미국인이 아니라면 그 이름을 제대로 발음 못하기가 쉽다.
예를 들어 ‘허’의 경우 Heo라고 표기하는 것이 우리식 표기법이지만 미국인들이 이 표기를 보고 ‘허’라고 발음하기를 기대하기란 어렵다. ‘헤오’라 발음하기 쉬워 미국 살면서 애꿎게 족보만 바꾸게 된다. 그래서 역으로 ‘허’라는 발음을 해주면서 영어로 어떻게 표기하면 되겠느냐 했더니 그중 가까운 표기법으로 Huh라 써 주긴 하는데, 사실 이 단어는 남에게 뭔가를 다그치거나 그~어~래 ? 하는 조의 의성어로 쓰이고 있어 약간은 망설여졌다.
사실 친한 미국 친구들이 나를 놀린다고 Huh를 미스터 허 ~ 어라 하기도 했다.
그래도 여기까지는 쉬운 편이다. 이름으로 들어가 ‘명환’을MyungHwan이라고 표기해 두면 우선 미국 사람들 ‘며’라는 발음을 잘 하지를 못한다. myu나 흑은 ‘화’를 표기하는 hw로 시작하는 단어를 영어사전에서 찾을 수가 없다. 그 말은 곧 미국인들은 그런 발음은 잘 하지를 못한다는 말이다.
그러다 보니 성에서 이름까지 서로 통성명 단계에서부터 어려움을 겪게 되는 것이다. 가뜩이나 짧은 영어에 이름조차 제대로 불리게 못하니 정말 미국인을 만날 자신감이 사그라지기 일쑤다.
그러나 중국인 친구들을 보면 이들은 잘도 적응해 나간다. 근본적으로 중국어와 영어의 발음구조가 비슷하기도 할 뿐더러,이친구들은 이름을 아예 영어식으로 바꿔 버리기 때문이다.
사실 우리가 영어로 표기해 놓은 Xu라는 중국인 이름을 어떻게 발음하는 것이 제대로 되는 것인지 알기란 쉽지 않다.
민족 자존을 드높이는 것도 좋지만 온통 미국인들과 부대끼며 일상을 살아가야 하는 이국 생활에, 한국인의 족보 깊은 이름을 바꿀 수는 없다고 고집을 하면 하는 만치 생활은 고달파지게 된다.
그들이 평소 잘 쓰지 않는 발음의 조합인 ‘명환’을 그들더러 수시로 불러 달라는 것이 여러모로 나한테 불리하여 궁리를 꽤나 했다.
차라리 나도 중국인처럼 이름 자체를 Bill 이라는 식 등으로 아예 바꾸어 버릴까? 그나마 족보까지 바꾸는 것은 아니니 조상님께 욕되는 건 아니지 않는가??? 실제로 그런 이름도 여러가지를 찾아보았지만 막상 용기는 나지 않았다.
궁리 궁리 끝에 ‘환’이라는 발음이 스페인 계통에서 Juan으로 표기하면서, 아울러 희대의 난봉꾼 ‘돈 환’덕분에 널리 알려져 있음에 착안하여,Hwan이라고 표기하면서 발음은 Juan이라고 가르쳐 주니 기억도 잘 하고 불러 주기도 잘 해 어려움을 많이 덜 수 있었다.
국제화시대라면서 서로 각국의 것을 고집 한다면, 웬 희한한(?) 인도 친구, 태국 친구, 쿠웨이트 친구, 나이지리아 친구 이름 등을 원음대로 불러야 되기에 그 어려움이 어느 정도일지 이해가 될 게다.
십중팔구는 아마 그 친구들 이름은 절대로 부르지 않으면서 이야기해 가기 쉬울거고, 이름 부르는데 그런 장애를 느끼고 있다면 친해지는 것은 애시당초 튼 셈이다. 그들도 우리와 똑같이 생각할 게다.
한국인이 이름을 소개할 때는 이름을 전부 한번쯤은 발음해주되, 이름 끝 자의 발음으로 불러 달라고 하는 것(first name) 이 적격일 듯하다.
‘수’Soo, ‘진’Jin, ‘우’Woo하는 식으로 하면, 이건 완전한 미국식 이름 소개법이라 미국인들한테도 낯익어 아마 반가이 대할 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