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 투기업무의 원조(?)가 되다
필자가 배치받은 국세청 소득세과 재산세계는 계장(사무관) 밑에 직원이 모두 3명이었다.
차석은 상속세, 증여세 그리고 주식이동조사업무를 또 한분은 양도소득세 법령업무 그리고 필자는 관련통계업무와 일반 서무였다. 아울러 나이가 제일 어렸기 때문에 각종 행사에 동원되는 일은 내가 도맡게 되었다.
그런데 얼마 되지 않아 그 다음 년도 직원들 정기 인사이동 때는 차석을 비롯한 또 한분의 선임 두분 모두가 일선 세무서로 전출하게 되었다.
그러다 보니 나 혼자 남아서 상속, 증여, 그리고 양도소득세 관련업무를 도맡아 보게 되었다.
왜냐하면 새로 전입된 직원들 역시 일선 세무서에서 법인세 분야만을 전공하던 분들이라 당분간은 필자 혼자서 북치고 장구쳐야만 했다. 그렇다고 나 또한 실무 경험이 별로 없는 터에….
어쨌든 나에게는 일복이 터진 것이었다.
몸으로 때우는 것은 좋은데 일선 세무서에서 걸려오는 법령해석에 대한 답변을 해줄 때는 겁이 나기도 했다.
그래서 궁여지책으로 짧은 기간내 아예 세법 규정을 암기해 버렸다. 본청에서 모른다고 할 수 없는 노릇이었기 때문에….
그런데도 가끔 법령을 해석해 달라 할 때는 몹시 괴로웠다. 그럴 때는 시치미 뚝 떼고 그냥 외우고 있던 법조문 자체만을 일러 주기도 했다.
그렇게라도 가능했던 것은 내가 머리가 좋아서가 아니고 양도소득세와 상속, 증여세 관련 세법 조문이 다른 세법에 비하여 분량이 적은 편이었기 때문이었다.
또 퇴근 후에도 지난 5년간의 예규집과 질의 응답집을 집으로 가져가서 계속 훑어보았다. 그렇게 한달동안 주야로 공부도 하고, 그래도 의문이 나면 상급기관인 재무부 세제실에 문의하는 등 나름대로 몸부림쳤다.
그러는 과정에서도 가끔 황당한 경우도 있었다. 상속세법에서 가장 많이 등장하는 용어 중 ‘피상속인’과 ‘상속인’에 대한 확실한 개념 정립이 되어 있지 않아 ‘피상속인’을 상속받는 사람 즉 유자녀로, ‘상속인’을 상속해 주는 사람 즉 돌아가신 분으로 사실과 정반대로 해석해 줄 때도 있었다.
왜냐하면 민법에 관한 지식도 없이 그냥 상식적으로 해석해 볼 때는 그 말이 맞는 것 같아서 그렇게 해석해 준 경우도 있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웃음이 절로 난다.
그런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모질게 학습한 결과 몇달 사이 제산제세 관련업무에 어느 정도 자신이 생기니까 국세공무원교육원 등에서 강의 요청이 와도 자신있게 나갈 수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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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근 천안함재단 이사장은 76년 9월 7급에서 시작하여 12년이 지난 88년 7월 일선세무서 과장으로 자리를 옮길 때까지 재산세제 업무(특히 양도소득세)와 투기억제업무만을 담당했었다. 그래서 당시 붙여진 별칭이 ‘부동산 투기 업무 원조’이다. <사진은 87년 KBS ‘무엇이든 물어보세요’ 프로에 출연한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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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와중에 필자를 더욱 못살게 한 것은 77년경부터 서울을 비롯한 대도시 개발지역 등에서 부동산 투기 바람이 거세게 몰아쳤다.
그런데 불행히도 국세청에서는 부동산 투기업무만을 전담하는 부서가 없었다. 어쩔 수 없이 양도소득세를 담당하고 있는 필자 혼자서 담당할 수 밖에 없었다.
지금이야 우리나라 실물 경제를 좌지우지하고 또 온 국민들에게 초미의 관심사가 된 부동산 분야지만 당시는 전혀 생각지도 못한 분야였으며 또한 이 업무를 전담할 정부 차원의 종합적인 총괄부서와 전문가도 없었다.
당시 여의도에 있는 목화아파트를 위시해서 강남구 도곡동에 있는 개나리아파트, 반포아파트 등 서울 강남 요지에 있었던 고급 아파트가 신규로 분양됨에 따라 투기 바람을 타면서 아파트 값이 천정부지로 치솟게 되었다. 청약률이 최소 100 대 1이 넘어 이를 틈탄 미등기 전매업자와 부동산 중개업자들이 세금 없이 큰 돈을 버는 사태가 속출했다.
그 와중에 필자는 누구를 원망할 수도 없이 혼자서만 처리해야 했다. 낮에는 해당 지방청과 세무서 직원들을 동원 시켜가면서 현장 단속을 하고 밤에는 사무실로 돌아와 다음날 해야 할 일을 챙기게 되었으니….
드디어 1978년 1월, 서울 강남에 있는 4개 아파트지구와 개발 붐이 크게 일어나고 있는 전국 158개동을 부동산 투기 지역으로 지정고시해 이 지역에서 부동산을 거래하는 경우에는 실지거래금액을 조사하여 양도소득세를 무겁게 매기게 되었다.
이를 시작으로 본격적으로 부동산 투기가 예상되는 지역을 선정해 확대 고시하고 미등기전매업자와 부동산 중개업자들을 색출, 단속해 나갔다.
필자는 그 때부터 한자리에서 이 업무만을 계속해 나가게 되었다.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에는 매년 연초가 되면 사무관 이상 간부들에 대한 인사 이동을 단행하게 되는데 내가 모시고 있던 직속 상관들이 1년만 되면 예외 없이 교체되곤 하니 자연히 나는 붙박이가 될 수 밖에 없었다.
특히 모시던 국장들이 바뀔 때마다 나는 그분들의 명령에 따라 빠져나갈 수가 없는 처지가 되어버린 것이었다. 무엇보다 국회나 청와대 같은 데서 그간의 투기억제 실적과 앞으로의 대응방안을 마련해 보고하라는데 그동안의 역사를 아는 사람이 나밖에 없었으니…,
이렇게 한해 두해를 거쳐 가다 보니 자연히 한 자리에서 12년간이나 그 자리를 지키게 되었다.
76년 9월, 7급에서 시작하여 6급을 거쳐 5급 사무관으로 승진하여 2년간을 더 근무하다가 12년이 지난 88년 7월 일선 세무서 과장으로 자리를 옮길 때까지 이 재산세제 업무(특히 양도소득세)와 투기억제 업무만을 담당했었다. 그때 주위에서는 나에게 ‘부동산 투기 업무 원조’라는 별칭을 달아 주었다.
참고로 그때부터 국세청에서는 부동산 투기 억제업무의 중요성을 깊이 인식하고 지난 84년 2월에 재산세과로, 89년경 드디어 재산세국으로 조직을 확대 개편한 것으로 기억한다.
-매주 水·金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