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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국세

[연재]'나는 평생 세금쟁이'(19)

전화위복…놀란 가슴 쓸어내리다

내 사전에도 전화위복이 있네

 

 

 

76년 9월 하순, 필자는 드디어 30세 나이에 국세청 직세국 소득세과 최말단으로 본청에 입성하게 되었다. 필자의 생각으로는 ‘일선 세무서에서 좀더 실력을 닦은 다음에 들어가야 하는데 너무 일찍 들어가는 것은 아닌가?’ 싶었다.

 

또 ‘그토록 법인세 일선 실무를 꼭 하고 싶었는데, 이제 모든 것이 물거품이 되나’ 하고 생각하니 갑자기 힘이 빠지는 것 같았다.

 

당시 본청 소득세과장께서는 국세청에서 너무나도 유명한 분이셨다. 무엇보다 당신이 맡은 업무에는 일 욕심이 많으신 분 같았다.
그 분을 처음 뵙는 순간 ‘과연 내가 여기에서 잘 견뎌낼 수 있을까?’ 걱정이 태산이었다.
그러면서도 ‘내 나이 이제 갓 30살인데 죽는 셈치고 시키는 대로 열심히 해보자!’ 라고 마음의 각오를 단단히 했다.

 

참고로 당시 분위기로는 대부분의 직원들이 승진 목적이 아니면 본청을 지망하지 않고 오히려 매우 꺼려했던 것으로 기억된다.
심지어 서울시내 개인세과 어떤 직원은 본청으로 발령나자 그만 사표를 낸 사례도 있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이유야 어찌됐든 공직자로서의 올바른 처세는 아니라고 생각되었다.

 

연말이 가까운 9월 하순경이면 일선 세무서에서는 세수 확보에 비상이 걸려 있었는데, 본청 소득세과장께서는 직원 2명이 부족하다 하여 서울청에서 한명, 그리고 중부청에서 한명을 지명하여 수시발령을 낸 것인데 나는 서울청 대표(?)인 셈이었다.

 

그래서 해당 세무서장들의 불평을 들은 당시 서울청장과 중부청장께서는 크게 불만을 표시했던 것으로 기억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2명 중 한 명은 소득2계로, 필자는 재산세계로 배치받았다.
그러면서 소득세과장께서는 욕을 먹으면서까지 자네들을 발령냈으니 아무 불평하지 말고 열심히 일하라고 하셨다.

그 분께서는 6‧25전쟁때 38선 이북 두만강 부근인 중강진까지 북진한 해병대 출신으로서, 큰 키에 성격도 대단하셨다.

 

보직신고때 그 분 앞에 서 있으니 나도 모르게 겁이 났다.
“제가 맡은 분야가 어딥니까?”하고 여쭸더니 재산세계로 가서 양도소득세를 담당하라고 하셨다.
“제가 이제껏 한번도 해보지 않았던 업무이지만 열심히 노력해 보겠습니다.”
“알고 있으니 불평하지 말고 시키는 대로 열심히 해”라고 엄하게 말씀하셨다.

 

 
필자는 아무 말도 못하고 재산세계장(배정현 사무관, 작고)에게 가서 신고를 하니 그 분께서 조용하게 말씀해 주셨다.
“자네를 추천한 사람이 다름 아닌 자네 고등학교 선배라네. 그리고 나 또한 자네 선배라네. 열심히 해봐”라고 격려해 주셨다.

 

그 말씀을 듣는 순간 마음이 퍽 안정되었다. 이후 아침마다 수유리에서 태평로에 있는 국세청으로 출근하는 내 마음에는 왠지 모르게 자신감이 생기는 것 같았다..          

 

 

 

 

해군용사 46명의 목숨을 앗아간 천안함 피격사건이 발생한지 만 4년이 지났다. 조용근 천안함재단 이사장은 순국한 장병 뿐 아니라 전우를 잃은 아픔을 딛고 사회에 적응해 나가야 하는 생존 장병을 위한 다양한 프로그램도 마련하고 있다.<2013년12월23일 고속정장병 격려 모습>

 

그 즈음에 필자가 지난 몇개월간 근무하던 마포세무서에서는 엄청난 큰 사건이 터졌다.

 

 

내가 소속되어 있던 법인세과 직원들이 어떤 교과서 제작회사 금품수수 관련 대형 비리사건에 연류됐다. 잦은 술 접대에 금품도 제공받았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사고 기간이 바로 내가 개인세과로 차출된 그 몇달간에 이루어진 것이란다.
이로 인해 법인세 과장을 비롯한 법인2계 모든 직원들이 검찰에 송치되었다.

 

다행히도 그때 유일하게 살아남은 사람이 바로 개인세과로 차출된 필자와 팀원 단 2명뿐이었다.

 

어느 날 본청 소득세과장께서 특별히 나를 부르시며 “자네 정말 운 좋은 친구네, 마포세무서 법인세과에서 개인세과로 차출된 것과 또 본청으로 발령받은 것 모두가 자네 보기에는 섭섭한 것 같이 생각되겠지만 오히려 전화위복(轉禍爲福)이네. 이 사람아! 그러니 더욱 열심히 해봐”라고 말씀하셨다.

 

이때 필자는 아무 말도 못하고 거듭 고맙다고 절했다.

 

그리고 “비록 일선 세무서에서 양도소득세 실무를 한번도 접해보지 못했지만 최선을 다해보겠습니다”라고 거듭 말씀을 드렸다.
그 당시 나는 두 마리의 토끼를 잡지 못했던 것이 얼마나 다행이었는지 모른다. 지금도 그 때 일을 잊을 수 없다.

 

또 그 이후부터 필자는 인사이동을 할 때는 내가 어디로 가고 싶다고 무리하게 인사청탁은 해보지 않았다.
오히려 ‘그냥 물 흐르는 대로 따라가자’ 하는 것이 하나의 철칙이 되어 버렸다. 그렇게 지내고 보니 나중에는 그것이 나에게 크게 유익했던 것 같았다.

 

또 이런 경험들을 사랑하는 후배들에게 자주 들려주곤 한다.
“내 인생살이에도 전화위복(轉禍爲福)이 가끔 있었다네.” 

 

 

 

-매주 水·金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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