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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국세

[연재]'나는 평생 세금쟁이'(17)

흰 봉투 화장실서 몰래 열어봤더니…

 화장실에서 몰래 뜯어본 흰 봉투

 

74년 여름으로 기억한다. 광화문세무서로 옮긴지 몇개월 후 난생 처음으로 관내에 있는 대형 언론사에 대한 소득세 실지조사팀에 참여하게 되었다.

당시 그 언론사는 조직이 법인이 아닌 개인사업체였다. 물론 영업세는 면세업종이지만 소득세는 납세대상이었다. 조사팀은 필자를 포함해 3인이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지금 생각해 보면 이해가 되지 않을 것이다. 당시 그 언론사는 우리나라에서 한두번째를 다투는 큰 언론사였으며 오너 또한 당시 경제부총리까지 지내셨던 분이셨음을 감안하면….

어쨌든 필자는 아는 세법 지식을 총동원해서 실지조사에 임했다. 젊은 세금쟁이여서 그런지 몰라도 세법을 나름대로 많이 보고, 조사 비법도 많이 공부했던 것으로 기억된다.

조사업무를 열심히 하고 있던 어느 날 그 언론사로부터 연락이 왔었다. 당시 그 언론사에서는 2~3년 전부터 ‘봉황대기 전국고교 야구대회’라는 이름으로 고등학교 학생 야구경기를 개최해 왔는데 해가 갈수록 인기를 더해가고 있었다. 경리를 담당하시던 국장께서 언론사 회장님께서 우리 조사팀원들과 함께 결승전 경기를 관람하고 싶다고 하신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세무서 직속상관에게 보고를 드렸더니 흔쾌히 승락해 주셨다.

드디어 결승전 당일 지정된 시간에 언론사에서 제공한 검은색 지프차로 동대문야구장에 도착했다. 안내자가 포수 바로 뒤에 있는 VIP좌석으로 우리를 안내해 주었다.

그 때 필자는 영광스럽게도 그 언론사 회장님 바로 옆자리에 앉게 되었다. 큰 아버지 같은 모습에 성격도 매우 급해 보였다. 난생 처음으로 그렇게 지체 높으신 분 옆에 앉아보기는 처음이었다.

또 그 분께서는 경기 도중에 필자를 포함한 조사팀 우리 일행들에게 시원한 코카콜라 1병씩도 건네주셨다.

지금 기억하기로 그때 그 결승전은 대구상고와 제일동포와의 경기었는데 대구상고가 큰 스코어 차이로 승리한 것으로 기억된다.
지금도 잊을 수가 없는 일이었다. .          

 

 

 

 

조용근 천안함재단 이사장은 나눔과 섬김을 실천하고 역경을 이겨내는 마음자세와 행동이 어떤 것인지 솔직하게 풀어내 대기업, 경찰서와 공기업 등 각계각층에서 강사 초빙 요청이 쇄도하는 등 세무공무원 후배들을 위한 ‘멘토강사’로 각광을 받고 있다.<조용근 이사장(우측 첫번째)이 2011년6월15일 몽골국회에서 민간인으로는 최초로 한국의 국가 발전과 양국 협력방안에 대해 연설하고 있다>

 


그렇다고 우리 조사팀은 이를 핑계삼아 세무조사를 느슨하게 한 것도 아니었다.

그 때 그 언론사의 희망은 곧 닥쳐올 추석 명절을 대비해 이미 신문 용지를 사올 때 미리 세금을 물은 영업세를 환급 받은 그 돈으로 기자들을 비롯한 사내직원들에게 추석 보너스를 주어야 한다고 하며 빨리 세무조사를 마쳐 주었으면 좋겠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결국 그 영업세는 환급되지 못했고 오히려 세금을 더 내야 하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얼마 후 추석 명절이 가까운 어느 날, 경리담당 국장께서 세무서로 방문하셔서 조사팀 각각에게 은밀히 봉투 한 개씩을 주고 가셨다.

물론 다른 사람이 보지 않게 몰래 주시고 가셨지만 나는 몹시 긴장되었다. 아주 얇은 흰 봉투를 하루종일 양복 주머니에 넣고 다녔으니….

몹시 궁금했다.

나는 얇은 봉투이다 보니 아마도 수표 한장에 제법 큰 액수이겠지라고 짐작하고 있었다.
필자는 오래 참을 수가 없어서 몰래 화장실로 갔다. 용변을 보는 척 하면서 쭈구려 앉아서 살포시 흰 봉투를 열어보았다.

그런데 깜짝 놀랬다.

그 안에는 수표도 현금도 아닌 설탕 한포대짜리 상품권 1매였다.
한편으로 실망도 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그 동안 필자의 기대감에 대해 웃지 않을 수가 없었다.
나중에 경리국장의 이야기를 듣고 나서야 그 분은 역시 훌륭한 분이시구나! 하고 느끼게 되었다.

평소에는 당시 제법 인기가 있고 값나가는 방석집에 가는 것도 아무런 부담없이 허락하시던 그분께서 유달리 현찰에는 인색하시다는 말씀이었다.

훗날 필자는 40년 가까운 세금쟁이 생활을 하면서 유독 그 언론사와 몇번의 큰 인연이 있었다.
지난 1998년 서울지방국세청 재산세 조사과장 때는 갑작스런 교통사고로 돌아가신 그 분의 아들에 대한 상속세 조사업무를 직접 처리했으며 또 지난 2001년 전국 23개 중앙 언론사에 대한 특별 세무조사때는 국세청 공보업무를 총괄 담당하고 있으면서 유독 그 언론사에 대해서는 각별한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화장실에서 쪼그려 앉아 몰래 뜯어본 흰 봉투안에 들어 있던 설탕 1포대…

나에게 귀한 선물을 주시고 하늘나라에 가 계시는 그 분께 다시 한번 고개가 숙여진다.

 

<계속>-매주 水·金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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