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겸손이 무례-
No는 No다
한번은 대학원에서 무슨 일로 리셉션이 있어 집사람과 같이 참석하게 되었다. 간단히 포도주 등 음료와 과일, 과자 등을 한 접시 담아들고는 이리저리 다니며, 이 사람 저 사람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사교하는 시간이었다.
집사람을 데리고 나하고 관련 있는 교수와 교직원 등을 소개하며 담소를 즐기던 중, 어느 한 교수가 집사람더러 영어를 참 잘 하신다. 칭찬을 하였다
비록 말은 영어로 하여도 집사람 사고는 여전히 한국식이라, 겸양지덕으로 대답하기를 "아니예요 별로 잘 못해요”라 했고, 이를 들은 그 교수 얼굴이 일순간 당황해지는 것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이런 경우는 한국인이 미국인들 하고 이야기하다 보면 흔히 겪게 되는 전형적인 사례인데, 양자간 문화 차이에서 오는 오해이다.
우리야 남들한테 칭찬을 받으면 “아녜요 저야 별로 한 일이 없어요”혹은 “아녜요 저는 영어 잘 못해요”라고 겸손의 표현을 사용하고, 또 사용해야 한다.
“예, 제가 다 했지요 뭐”혹은 “예, 저 영어 잘해요”라고 대답했다간 “찌아식, 되바라지긴”혹은 "홍! 제깟게 해봤자 얼마나 잘한다고 건방지게 스리”라는 즉각적인 반발을 유도하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사고방식을 그대로 미국인에게 옮겨 놓으면, 미국인들의 반응은 “뭣이라고라고라, 지가 영어도 잘 못하는데 내가 지를 칭찬한 것이라고? 그럼 내 판단이 틀렸단 말이여? 찜 ! 쪼까 불쾌하구먼.”뭐 대충 이런 식의 내면적인 반응을 보이게 된다.
이런 경우 집사람은 의당 “어머, 그래요? 감사합니다”라고 대답함으로써 칭찬한 미국인의 판단이 옳았음을 인정해 주어야한다. 그리고는 “아휴, 그래도 아직 영어는 어려워요 더 배워야하겠죠”라 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대화의 흐름이 되는 것이다.
미국인의 No는 말 그대로 No이다. No의 No는 Yes가 되지만 우리처럼 안돼요 하면서도 되는 그런 경우는 이해를 못한다. 그런 면에서 한국인은 형이상학적이고 고차원적이고 복잡한 반면, 미국인은 저차원적이고 단순한 아메바적 사고방식이다.
물론 미국에서도 No가 Yes가 되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그런 경우는 그 일을 담당하는 사람보다 높은 직급의 사람이, 즉 보다 재량을 더 가진 사람이 하위직급 사람의 결정을 판단하고는 Yes라 하게 되는 것이지, No라 한 그 사람이 이런 저런 과정(?)을 겪다 보니 No가 Yes로 되는 그런 경우는 없다고 봐야 한다.
다시 한국에 와서 살면서 우리가 너무나 당연시하는 문화, 즉 일단 “안되겠는데요”라고 해 놓고는 이리저리 노력하면 되는 그런 문화에 다시 적응하는데 힘이 든다.
어디 어디 전화해 봤더니만 안 된다고 그러더라면 “이런 순진하고 맹한 친구 보았나”하는 식이다. 한국인이 그런데 하물며 미국인이 우리나라에 와 무슨 일을 해볼 려다 이런 반응을 겪는다면 어떻게 느낄지 불문가지일 게다.
투명성이 없는 것이다. 한 걸음 더 나아가 부패로 연결하여 이해하게 될 것이다.